칼럼
다양한 개성에 눈길이 멈추는 작가들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 줄 작가들
성인수 (SideB) 2021.10.29



만화는 서사와 그래픽, 연출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어우러질 때 큰 감동을 준다. 그중에서도 그래픽은 독자에게 직관성 있는 호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중요한데, 오늘은 이 지점에서 희소성 있는 그래픽과 그것을 연출로 잘 표현해서 그 작업을 지속적으로 팔로잉하면 좋을 것 같은 작가 3명을 소개하려 한다.


최성민 : 비슷한 작가를 찾기 힘든 세계관

최성민 작가는 ‘우주 사우나'와 '쾅 코믹스'를 통한 단편 만화를 시작으로 ‘고래가 그랬어'에서 <출동 샤바라!>를 연재하며 점점 자신만의 만화 세계를 넓혀왔다. 특히 2020년 발표한 <완벽한 순간을 위한 여행>과 <퓨러파잉F>를 통해 그동안 자신의 만화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래픽 실험을 해왔던 지점들이 잘 정리되어 한 단계 도약한 모습을 보여주며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굉장히 ‘핫'한 작가로 주목받았다. 



그 중 <퓨러파잉F>는 요즘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디지털 톤 텍스처의 활용과 작가의 창작 세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퓨러파잉F>는 심각하게 오염된 미래에 살아가는 주인공 ‘무능력자' 주리가 ‘퓨러파잉F’라는 대기정화 프로젝트의 적합자로 선발되어, 부여받은 초능력에 이 프로젝트로 참여하면 엄청난 대가를 주겠다는 제안과 함께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SF 작품이다. 디지털로 진행되는 만화 작업에서 망점 간격이 실제 인쇄되어 나오는 것과 많이 달라 쓰기 어렵거나 정해져 있는 규격만 사용하는데 최성민 작가는 이 작품에서 다양한 톤&무드를 만들어 작품 내에서 실험하며 재밌는 SF 작품을 만들어냈다. 또한 어릴 적부터 우리가 봐왔던 만화'책' 느낌에 친근감을 느끼거나 혹은 웹툰으로 만화를 시작한 세대 모두에게 각자의 느낌으로 매력을 주는 그림의 선은 언제봐도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에 언더그라운드 시장에서 2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 독자까지 최성민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층의 폭도 넓은 편이다.


SF 장르인 <퓨러파잉F>와 달리 최성민 작가의 멋진 그래픽과 함께 조합을 이루는 대부분의 만화는 개인의 일상에서 건져 올린 발견을 담는다. <완벽한 순간을 위한 여행>의 경우 사소하게 있었던 대화와 하나의 사건, 본인에게 닥쳐온 이슈를 고민하고 고민하다 환상, 망상이라 부를 수 있는 세계에 자주 빠지는 주인공 ‘남지'를 앞세운다. 그리고 우디 앨렌의 영화에서나 볼법한 창작자 자신과 주인공이 만화 안과 밖을 서로 오가며 그 재미를 더한다. 이런 기조는 2020년 Daum 웹툰과 진행한 <독립만화 특별전: 독립에서 독립하기>에 발표한 <2090 카운슬링>에서도 이어진다. 약간 근미래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 작품은 주인공 이슬이가 친구의 부추김에 넘어가 성격 성형시술을 하는 과정에서 과거 자신의 기억들과 조우하며 제거할 성격을 선택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2090 카운슬링>. 이 작품에서도 최성민 작가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혹과 고민을 주인공의 나레이션을 바탕으로 풀어내며, 작가 나름이 생각해 본 결론으로 도달한다. 이런 점이 최성민 작가의 작품 속 큰 매력 포인트이다. 어디선가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이야기에 더해진 SF 상상력 혹은 개인의 판타지와 상상이 약간 산만하게 오가며 독자에게 주는 재미. 보고 있으면 그런 재미에 나도 모르게 피식- 피식- 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최근엔 딜리헙에 연재 중인 ONLINE QUANG COMIC에서 <소행성 이야기>, <정신의 외출> 등의 단편을 발표했고 또 지난 9월에는 PRNT에서 진행한 최성민 작가의 개인전 <비스듬히 엎드린 새벽에>을, 10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하고싶은 만화전'에선 <아, 모르겠다.>라는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엔 뮤지션 어피스오브(APIECEOF), 뮤지션 김예림(LIMKIM)과 함께 협업한 40페이지의 단편 만화 도 발표했다. 마지막으로 만화는 아니지만 이런 최성민 작가의 그래픽의 성취와 정리를 넘어 한 단계 올라선 느낌을 보고 싶다면 뮤지션 해파리의 뮤직비디오 <반너머 Beyond a Life of &$!#%>를 꼭 보길 추천하고 싶다. 만화책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바지 : 언더그라운드 시장에서 여성 역사 만화를

모노켈 출판사의 대표로 활동하며 만화 작업을 하는 바지 작가는 <태풍!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작품으로 2019년 데뷔했다. 사진 기술이 없거나 보편화 되지 않았을 당시의 법정 기록, 사건 기록에 그려졌을 법한 삽화에 작가의 세련미를 더하여 옮긴 듯한 그래픽은, 그 시대를 독자가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한국 만화에선 그동안 보기 힘들었고, 존재했다고 해도 오래가기 힘들었던 개성을 품은 작품들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역시 고증에 관한 작가의 노력 때문이다. 합정에 위치한 전시공간에서 진행한 전시 ‘정신과 시간의 만화방 2호점, SideB’에 <카마릴라 재판>이라는 단편을 출품하며 진행했던 당시 토크쇼 자료를 살펴보면, 본인은 과거의 사건을 만화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만화를 기획하기 때문에 관련 학술 자료나 관련 단체에 문의해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기록이 있다. 덕분에 실제 작업이 끝난 후 해외의 관련 단체에서 작업한 만화를 보내주길 요청하기는 일도 있었고 ‘정신과 시간의 만화방 2호점, SideB’ 전시를 진행하던 당시 시카고에서 한국을 방문했다 전시에 온 미학과 교수는 비매품이긴 하지만 바지 작가의 <카마릴라 재판>을 콕 집어 작품이 매우 독특하고 참고 자료도 잘 정리되어 있어 교수의 입장으로 감동해 꼭 소장하고 싶다며 부탁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바지 작가의 작품은 호감이 생겨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싶을 때 역사만화답게 자료정리가 잘 되어 있다는 점에서 풍성한 생각의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가장 단순한 예로 Daum웹툰 ‘독립만화특별전'에 출품되었던 <미몽:꿈의 여로>의 경우 작품 말미에 ‘이 단편은 1936년 영화 <미몽:죽음의 자장가>를 재구성하여, 정희의 꿈을 상상하며 그린 만화입니다.’라는 문구 하나로 관련 영화를 찾아보면 각 자가 가진 방식대로 두 작품을 비교하고 상상하는 재미가 또 있다. (오래된 고전영화라 유튜브에서도 검색이 가능하다!) 당시 영화 속에서 여성을 그리는 모습, 그리고 연기의 방향성, 그리고 당시에 그 작품을 통해 목표했던 감독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도 해석이 가능한 요즘의 분위기 등을 비교해볼 수 있는데, 이는 가장 쉬운 예시로 다른 단편 작품들을 찾아보면 논문이나 사료들에 관한 정보들도 작품 뒤에 모두 기재되어 있어 원한다면 이런 재미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최근 참여하고 있는 ‘하고싶은 만화전'에서 발표한 <평등:1907년 슈튜투가르트>에선 그동안의 페이지 형식의 만화가 아닌 웹과 모바일에서 감상하는 스크롤 방식의 만화로도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기존의 출판만화에서 선보였던 독특한 종이 질감 위에 어우러진 그림의 느낌을 잘 살리면서도 웹과 모바일 연출에서 독자를 위해 작업되어야 할 말품성과 텍스트의 정리도 대사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역사만화 인데도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또한 11월부터 진행되는 언리미트에디션에서 얼마 전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 신작 단편 <젊음과 광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섬 : 음침하지 않은 어두움과 차분함

섬 작가는 그래픽노블 매거진 ‘한타스(HANTAS)’의 멤버로 2015년부터 매 호에 참여했다. 그중 1호, 2호, 5호에선 단편 <붕어빵>, <그 여름 날>, , <서쪽숲의 오두막>을 발표했고 매 호 한타스의 프리퀄(비하인드 스토리정도로 생각하시면 된다) 만화를 선보였다. 그리고 개인 작품으로는 <산보>와 <이해로부터>가 있고, ‘정신과 시간의 만화방 2호점, SideB’ 전시를 통해 발표한 <흑백 꿈>과 ‘하고싶은 만화전'을 통해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발표했다.



손으로 직접 그리는 작화와 디지털 작화, 그리고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여러 가지 실험을 했던 섬 작가의 작품 속엔 묘한 차분함이 느껴지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음침하거나 칙칙하진 않지만 어두운 분위기를 이어나가며 소소한 연인의 이야기와 일상의 우연에서 소재를 찾아 러프하게 이어 나가는 나레이션은 보는 즐거움도 있다. 특히 한타스 1호와 2호의 실험을 거치며 어느 정도 1차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선보인 단편 <산보>는 앞서 설명한 섬 작가만의 분위기가 돋보이는 그런 작품이다. 단편 <산보>는 발걸음이 닿는 대로 밤 산책하며 알지 못했던 골목과 오래된 건물, 자판기, 슬픈 표정의 자동차, 집 앞의 고양이들을 만나는 만화다. 어떻게 보면 만화라는 극화에서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또 놀라울 정도의 평범함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만화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사나 그래픽, 연출에 있어 굉장한 자극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요즘의 분위기와는 달리 ‘힐링'이라는 단어와는 다른 어떤 차분함이 독자의 마음속에 깃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함을 가진다.



이런 <산보> 이후 발표한 ‘한타스 매거진 5호'에 수록된 <서쪽 숲의 오두막>과 <이해로부터>는 작가의 다듬어진 분위기가 일관적으로 펼쳐지며 자신의 개성으로 체화된 어두움과 그 속의 소소함을 지속적으로 잘 보여준다. <서쪽 숲의 오두막>은 학생인 주인공이 실질적으로 무관심한 부모와 숨가뿐 학원 돌림을 피해 도착한 서쪽 숲에서 한 사내를 만나 그 어떤 질문도, 비교도 없는 공기 속 친구가 되며 일어나는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그러다 마음 둘 곳 없이 지쳤던 주인공의 마음이 유일하게 정착하고 쉬던 ‘서쪽 숲'과 ‘사내' 마저 타인의 재단으로 빼앗기며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야 할 시기에 자신의 거의 모든 선택권을 빼앗긴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렇게 타인의 욕망과 욕구의 꼭두각시로 성장한 어른이 되어서도 그 ‘서쪽 숲'을 찾을 수밖에 없는 주변의 환경, 그리고 그 안식처마저 이제는 아파트 재개발로 사라질 통보를 받은 후에 올려다본 하늘마저도 작가는 차분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산보>에 이은 <서쪽 숲의 오두막>이 이런 섬 작가의 차분한 응시가 독자가 섬 작가에게 기대하는 매력 포인트가 되었다면 작년에 발표한 <이해로부터>는 이런 분위기 위에 작가의 손으로 그린 작화가 남녀 간의 감정을 고민을 더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린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필두로 한 연인의 만남과 이해받지 못하는 기분,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듯한 오해 등을 지나 온전히 같지 않아도 어렵지만, 함께 노력하는 연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결론적으로 섬 작가의 작품은 이 작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음침하지 않은 어두움’을 분위기로, 그때그때 마다 작가가 살면서 고민했고 떠올랐던 질문을 작품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인상을 깊게 받는다. 섬 작가의 작품은 그런 관점을 두고 팔로잉해나간다면 앞으로도 작품과 다채로운 교감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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