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직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 NFT와 메타버스
선생님께 보낸, 누구와도 나누기 어려웠던 여섯개의 편지들
김태권 (디지털리 유얼스 편집장) 2021.10.29

△ <마블의 아버지 스탠 리 회고록> 표지 (출처: 영진닷컴)

1 - 마블의 아버지, 스탠 리가 오래전에 그렸던 미래


선생님께


지금 내 앞에는 <마블의 아버지 : 스탠 리 회고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만화책으로 나온 스탠 리의 전기네요. 선생님은 아마 읽어보셨을 테지만 저는 지금에야 읽었습니다. 중간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군요. 미국 코믹스 시장이 흥하고 망한 일에 대해 이 책은 이렇게 설명해요.



이 대목의 그림이 재미있어요. 만화책 독자가 코믹스 한두 권을 들고 자기 방에 들어오더니, 다음 컷에는 코믹스가 가득 찬 상자를 들고 들어와요. 세번째 컷에는 상자 여러 개를 카트에 싣고 들어오고, 마지막 컷에는 책 상자를 잔뜩 얹은 지게차를 방으로 몰고 들어옵니다. 물론 정말로 방 안에 중장비 차가 들어오지는 않았을 테고, 어디까지나 만화적 표현이지요(이래서 만화를 사랑합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기면 무시무시한 내용이 나와요.


"책 수집가들은 지금이 바로 모아둔 코믹스로 대박을 칠 순간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동네 코믹 북 가게로 향했는데...

 특별하고 한정된 판본들만 거래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오래된 코믹스가 귀한 이유는 말 그대로 희귀하기 때문이야."


다음 장면의 배경은 호수. 책 상자가 물 위에 둥둥 떠 있고 지게차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열 받은 수집가들은 코믹스에 완전히 관심을 끊었고, 코믹스 소매상들도 문을 닫았지. 출판사들도 큰 타격을 입었어."


물론 코믹스 시장에 대한 설명치고는 단순하죠. 같은 내용이 스탠 리의 전기 <더 마블 맨 : 스탠 리, 상상력의 힘>에는 무미건조하고 복잡하게 설명이 나옵니다. 실제로는 경기 변화 같은 변수도 많았죠. 무엇보다도 화가 난다고 지게차를 호수에 던져넣지도 않았을 테고요.  그럼에도, 중장비차가 가라앉는 그림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네요. 


"무엇무엇이 인기다" 소문이 나면 언론에도 보도되고, 수집가들은 당장 이 "무엇무엇"을 손에 넣지 못하면 난리가 날 것처럼 굴죠. 그러다가 유행이 사그라들면 "무엇무엇"을 찾는 사람이 뚝 끊기고, 열풍이 불어닥치기 전에 사고 팔던 것보다 거래량이 더 줄어들고, 시장은 '겨울'이 됩니다. 


첫머리에 엉뚱한 말씀이 길었네요. 추운 날씨에 건강하신지부터 물었어야 하는데요. 스탠 리의 만화 회고록에 대해서는 편지 마지막에 다시 말씀드리도록 하죠.



2 - 네이버웹툰의 인공지능 채색과 기술


선생님, 오랜만이면서 오랜만이 아니네요. 우리가 만난 것은 추석 즈음이었지요. 그런데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추석 무렵 우리는 '대담'을 했어요. 주제는 "만화의 미래, NFT와 메타버스". 마침 미국의 DC코믹스가 자기네 만화로 NFT를 발행하기 시작했고, 또 한국에서도 이종범 작가님의 <닥터 프로스트>가 오랜 웹툰 연재를 완결하고 NFT가 나오던 때였습니다. 대담을 마치고도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NFT와 메타버스와 인공지능 때문에 세상은(또 만화계는) 어떻게 달라질까"가 주제였지요. 




며칠 전 네이버에서 인공지능 채색을 선보였습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시도는 있었는데, 이번 네이버의 결과물은 생각보다 뛰어난 솜씨를 뽐내더군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어떤 만화가는 제작 비용이 줄어들어 기뻐하겠지요. 반면 어떤 만화가는 연재 시즌 아닐 때 일 받아서 하던 채색이나 대사 일자리가 줄어들어 낙심할 테고요.


그래도 이 변화는 전혀 새로운 방향은 아닙니다. 옛날에는 연재 원고를 한 편 완성하기 위해 많은 일손이 필요했지요. 그런데 전자 편집이 보급되고 종이만화가 웹툰이 되며 필요한 사람의 수는 계속 줄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 때면 기존의 일자리가 주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도 늘어나리란 말을 자주 들어요. 하지만 옛날 일자리를 잃은 바로 그 사람이 새 일자리를 얻기는 어렵겠지요.


한편 예상하지 못한 변화의 방향도 있습니다. NFT와 메타버스에 대한 변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날 나눈 대화를 생각합니다. 


3 - 생각보다 빠른, NFT와 메타버스


예상과 다른 첫번째는, 인터넷 세상의 기존의 강자들이 NFT와 메타버스 시장에 뛰어드는 속도였어요. 그 덩치 큰 회사들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줄은 몰랐네요.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지요. "NFT는 디지털 수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세계의 수집품처럼 방안에 세워놓거나 만지작거릴 수는 없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다 받아본 외국 그래픽 노블을 언박싱하는 그런 종류의 기쁨을 디지털 수집품이 줄 수 있을까?  글쎄다. 디지털 수집품이 소장하는 사람에게 현실의 수집품처럼 큰 만족을 줄 것 같지는 않다."


내 대답은 이랬습니다. "맞는 말씀이다. 그런데 소장하는 기쁨 말고도 자랑하는 즐거움이 있다. NFT는 인터넷을 통해 세계 어디에나 자연스럽게 자랑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자랑질할 공간'이 부족하다. 메타버스가 성장하면 NFT를 자랑하기 좋은 공간이 열리지 않을까."


그런데 몇 주 지나지 않아 NFT 생태계가 확 달라질 소식이 들려왔지요. 먼저 세상을 바꾼 것은 트위터였습니다. 트위터는 프로필 사진에 NFT 인증 기능을 조만간 추가하겠다고 발표했어요.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복제해 온 이미지가 아니라, 돈을 주고 산 NFT라는 사실을 프로필에 표시해주겠다는 이야기였죠.


△ 트위터에서 공개한 'NFT 인증' 프로필 공간 COLLECTIBLE

그림을 사고 파는 산업에 제법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아요. 트위터의 프로필 사진을 골라 올리는 일이란 이전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세상 사람들아, 보아라. 내 그림 보는 안목과 취향이 이렇다." 앞으로는 여기에 새로운 의미가 덧붙습니다. "그리고 또 보아라. 내가 이렇게 비싼 NFT아트를 살 정도로 재력이 있다."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돈 많이 가진 사람들이 명품 옷 자랑하고 람보르기니 자랑하는 일이 온라인에서도 일어난다는 뜻"이라며 미리 흉을 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네요. 미술의 역사를 따져보아도 미술 작품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한 시대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예술가가 지원을 많이 받아 전체 예술판이 더 빨리 발전하기도 하고요. 남의 부러움을 사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트위터의 발 빠른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의 NFT를 자랑하기에 적절한 공간"으로 메타버스 공간이 성장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메타버스 기술이 발전하고 메타버스 이용자가 늘어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전세계 사람들이 이용하는 트위터에서 내 NFT를 뽐낼 수 있지요. 


그렇다고 메타버스와 NFT가 함께 발전할 가능성이 사라졌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닙니다. 며칠 전 페이스북이 회사 이름을 '메타'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어요. 메타버스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 봐요. 어떤 사람들은 "페이스북(이제는 '메타') 같은 회사가 주도하는 플랫폼 메타버스 말고, 오픈 메타버스 공간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해요. 어느 쪽이건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듯 합니다. 자기가 수집한 NFT를 메타버스 공간에서 자랑하고 싶어할 사람도 많아질 것이고, 메타버스 공간의 아이템을 NFT로 거래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질 거에요. 


만화와 관련한 NFT 역시 자기의 안목과 취향(그리고 경제력)을 드러내 보여주는 아이템이 될 터이고요.



4 - NFT 커뮤니티의 발전 속도가 놀랍다


예상과 다른 두번째 변화는 NFT 커뮤니티의 발전 속도입니다. 추석 무렵만 해도 NFT 아트가 대중에게 처음 알려지는 수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NFT 커뮤니티가 이렇게 빨리 활발해지리라고는 나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NFT 아트의 수집가 커뮤니티란 무엇일까요. 간단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 타임의 NFT 콜렉션. 1분만에 매진됐다.

NFT 아트 가운데 시리즈로 나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특히 제너레이티브 아트(생성 예술)는 기계 창작을 도입해, 비슷비슷하면서도 다 다른 그림 수천 장이 하나의 시리즈를 이루기도 해요.  시리즈 전체를 놓고 보면 그림이 서로 비슷해 같은 시리즈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거니와, 낱장을 뜯어보면 또 서로 다르기 때문에 모든 작품이 고유성을 가집니다. 이러한 시리즈 작품을 가진 사람들끼리 커뮤니티를 이루는 경우가 많아요. 이 경우 NFT 아트 작품은 멤버십 클럽의 회원권 같은 기능을 합니다. 


잠시만 더 살펴볼까요. NFT 아트 수집가 커뮤니티의 회원은 색다른 특징이 있어요. 비싼 NFT 아트를 구입할 정도니 돈 많은 사람이라는 점은 확실해요. 그런데 그러면서도 스스로 기득권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죠. 금융자본과 정부 등 기존의 기득권층에 의해 '가상자산'을 옹호하는 신진세력이 탄압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주장에 공감하는지 아닌지는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려나 이 사람들은 기존의 부유층과 무척 달라요. 안목과 취향도 다르고요.


만화계에는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팔리던 그림만 팔리던 기존 미술 시장에 새로운 취향을 가진 수집가 집단이 등장했다는 뜻이니까요. NFT 아트 시장에서 팝아트 계열의 작품이 제법 인기를 누린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5 - '투자 자산'으로서의 예술은, 미래가 있을까


다만 걱정이 되는 점도 있어요. 투자 자산으로서의 NFT 아트에 지나친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느는 것 같아요. 이 점이 나는 불안합니다. 


얼마 전 이런 취지의 글을 보았습니다. "이 시리즈의 NFT 아트 작품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나중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왠지 예뻐보입니다." 전후맥락을 보니, NFT 아트 수집가의 커뮤니티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분이 '회원권처럼 거래되니 재판매 때 큰돈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재판매는 자주 일어나지 않아요. NFT 아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술작품은 자주 사고 팔리는 물건이라 보기 힘들어요. "NFT도 결국 가상자산"이라며 코인처럼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 사지도 팔지도 못한 채 계속 들고 있어야 할 수도 있어요. 이른바 "물린다"는 표현을 쓰지요. 현수막으로 "신도시 2억 3채"  홍보하는 부동산처럼요.


'작전'을 펴기 쉽다는 점 역시 부동산과 NFT 아트가 닮은 점입니다. 인기 시리즈의 NFT 아트를 자기들끼리 값을 올리며 사고 팔다가  최근 들통 난 일이 있어요. 커뮤니티 사람들 몇이 짜고 "으쌰으쌰" 자전거래로 값을 올리는 경우가,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자주 있을 거에요. 


이러다가 시장이 싸늘하게 식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NFT 아트 시장도 메타버스 시장도 머지 않아 '조정 국면'을 겪게 될 거에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봄날이 오겠지만, 겨울이 꽤 오래 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죠.


실생활에서 예술 작품을 사려 할 때 듣는 이야기가 NFT 아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 같아요. "자기가 보고 좋은 작품을 사야 한다. 그래야 안 팔려도 볼 때마다 화가 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선생님이나 나나 당장 비싼 작품을 살 돈이 없으니, 아직은 다른 사람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네요.



6 - 그래서, 만화는 NFT에 어떤 기회를 줄 수 있을까?


NFT 아트는 만화계에 어떤 기회를 제공할까요? 


만화인 누구나  큰돈을 벌게 되지는 않겠지요. 실리콘 밸리 쪽에서는 지금의 블록체인 상황을 "골드 러쉬"라고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황금광 시대. 보통은 일확천금한 사람만 떠올리지만, 나는 김유정의 소설 <금 따는 콩밭>을 생각합니다. 노다지를 캘 줄 알고 멀쩡하던 콩밭을 뒤집어 엎었는데 황금은 나오지 않고 소작료조차 내기 어렵게 되자 다들 미쳐가며 멱살잡이를 벌이는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금을 캐지 못한다고 모두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닙니다. 황금을 캐는 것보다 황금을 캐러 온 사람들에게 새로운 패션인 청바지를 파는 쪽이 남는 장사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지금 시대의 '청바지'는 무엇일까요?  나는 요즘 이런 상상을 펼쳐 보곤 합니다.


편지 첫머리에서 미국 코믹스 시장 이야기를 초든 것은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만화를 주제로 삼은 NFT 아트 역시 투기 목적으로 사모았다가 손해를 보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그런 와중에도 스탠 리처럼 자기 몸값을 높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자기 만화에 관한 NFT 상품을 팔아 큰돈을 버는 작가도 나올 것이고요. 


앞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보며 선생님과 나누게 될 이야기들도 기대됩니다.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


쌀쌀해진 겨울의 문턱에서, 김태권 드림



글쓴이 소개

김태권 : 만화가이자 NFT 아트 매거진 '디지털리 유어스'의 편집장이다. 이세돌 9단과 이종범 만화가의 NFT 작품 기획과 판매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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