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작 평론]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는 주변부를 말하다
"아버지의 복수는 끝이 없어라", 강태진, 카카오웹툰
박인하 (만화평론가) 2021.11.12

한국만화는 주로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1990년대 이전에는 도시 골목이 중심 무대였다. 만화 속 아이들은 방-집-골목-학교를 오가며 함께 놀았고, 이런 만화를 명랑만화라고 불렀다. 1990년대 이후에는 학교가 중심 무대가 되었다. 주인공들은 학교 안팎에서 싸우기도 하고 때론 사랑에 빠진다. 학원물 전성시대였다. 21세기 웹툰은 이전 시대와 비교해 다양한 공간에서 이야기가 벌어지지만, 많은 독자들이 구독하는 플랫폼 상위권 작품의 중심 무대는 학교, 게임 세계가 대부분이다. 도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는 비천함이 생략되거나 삭제된다. 명랑만화에서의 ‘시골’은 방학 때마다 놀러 가는 노스탤지어의 공간이다. 웹툰에서는 주인공의 고생이 구체화되기도 하지만 회기, 빙의, 환생을 위한 사전 설정으로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이다. 패싸움을 일삼는 일진이 등장하지만 밑바닥 인생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되레 값비싼 브랜드를 걸치고 바이크를 타며 ‘플렉스’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처럼 중심에 있거나, 중심이 되는 이야기 안에서는 주변부의 악다구니치는 인간 군상을 만나기 어렵다. 


주변부에서 더 바깥쪽으로

<아버지의 복수는 끝이 없어라>는 주변에서 시작한다. 1화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 맹도훈이 교대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아내 미영은 마트 시식코너에서 일한다. 도훈은 재작년쯤 노래방을 열었지만 처음 반짝하다 개업 2주년 만에 망한 적이 있다. 열여섯 살 때부터 중국집 배달 일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을 털어 넣은 곳이었다. 그 뒤 또 죽어라 일해 1억을 모았지만, 오랜 친구이자 아내의 옛 애인 오정식에게 속아서 부동산 사기를 당하고 그마저 날리고 만다. 남편에게 1억이 있는 줄 아는 미영은 휴일에 프랜차이즈 박람회에 가 보자고 하지만 도훈에게는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땅속으로 숨어버릴까.” 하던 도훈에게 전화가 온다. 할머니 정귀녀가 사는 동네의 이장님이었다. 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졌으니 “병원에 가던지… 아니면 뭐 집으로 모시고 가던지….”라고 말한다. 도훈은 그날 저녁 아내에게 짜증을 내며 말한다. “엄마 죽고 아빠 집 나간 손자새끼 친척집에 갖다 버린 할머니도 할머니야? 자식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야?” 그러다 “근데…혹시 뭐 좀 있지 않을까? 물려받을 만한 거. 땅이라든지… 아님 적금통장… ?” 하는 아내의 말에 “대박인데…?”라고 답한다.  

주변부에서 더 바깥쪽으로 몰려나던 도훈과 아내는 기대를 품고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여덟아홉 살 때 강제로 떠밀리듯 떠난 곳이라 기억에도 없는 고향이었지만, 할머니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들은 소리는 또렷했다. 동네에 들어서는 레저타운 덕분에 “촌사람들 지금 노났다.”

도훈은 할머니를 치매병원에 입원시키고 다시 돌아온 고향집에서 지하실에 갇힌 채 쇠사슬에 묶여 있는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젊은 시절의 아버지 영춘이 친구들인 덕수, 희도와 함께 찍은 사진을 근거로 갇혀 있던 남자를 아버지라고 믿는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억, 고향에서 부동산을 하는 희도의 증언과 입을 꾹 다문 지하실의 남자를 연결 고리 삼아 도훈은 조금씩 자신의 추리를 완성해 간다. 하지만 독자들은 매 화 이야기를 따라가며 도훈의 추리가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된다. 

 

한국 가부장 사회의 짙은 그림자


플랫폼에서는 이 작품의 카테고리를 ‘공포/스릴러’로 분류했지만 막상 독자는 공포나 스릴러의 긴장감을 느끼기 어렵다. 퍼즐 조각을 맞춰 가듯 새로운 비밀이 밝혀질 때는 미스터리 구조를 활용하는데, 아버지의 복수를 향해 달려가는 스릴러인 동시에 평범해 보이지만 다양한 결의 악한을 보여주는 피카레스크 극이기 때문이다. 온갖 군상이 얽혀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30년 전 그 동리에 살았던 사내들이 하나같이 비대해진 자아를 내세워 자기 욕망을 합리화하는 모양새를 보게 된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원초적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사회의 밑바닥에 닿는다. 거기에는 여자가 있다. 도훈의 할머니이자 영춘의 어머니인 정귀녀와 도훈의 어머니이자 영춘의 아내인 송명자는 뻔뻔한 사내들과 달리 가부장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바둥거린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한 남자를 30년 동안 가두는 범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른 정귀녀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다가 소 한 마리 값에 팔려 온 송명자의 배후에는 한국 가부장 사회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을 붙잡고 있는 과거의 망령이자 우리의 밑바닥인 셈이다. 작가 강태진이 전작 <조국과 민족>에서부터 탐구해 오던 주제가 <아버지의 복수는 끝이 없어라>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갈데없는 외나무다리에서 저 아래 밑바닥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스릴보다 부조리

30년의 시공간을 움직이고, 수도권의 주변부와 경상도의 농촌 공간을 오가는 작품의 특성상 시공간이 모두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아버지의 복수는 끝이 없어라>는 꼼꼼하게 그 세부를 완성한다. 인물들이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투리는 기본이고, 시대와 지역에 맞춘 공간이 재현된다. 아파트 단지 없이 다세대 주택만 있는 도훈의 동네나, 30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은 영춘의 집은 그간 웹툰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주변 공간이다. 어디 그뿐일까. 노래방과 호프집이 있는 변두리 상가, 품바거사가 기거하는 컨테이너 법당, 등산로 주변 운동시설 같은 주변부를 잡아내는 작가의 공간 해석력이 탁월하다. 클로즈업 샷을 최대한 억제하여 다양한 사건과 인물을 마치 관찰하듯 보여준다. 그로 인해 당연히 스릴감은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스릴보다 부조리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선택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누가 범인인지 궁금하게 하면서 진실과 거짓에 집중되던 관심의 초점이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자 다시 복수에 맞춰진다. 그리고 최종회를 한 화 남긴 65화에 이르러 도훈이 할머니에게 던진, 어머니인 송명자에 대한 질문을 통해 덜컥 그 밑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왜 아무도… (어머니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아요?” 


박인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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