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리중심가에서 열리는 앙키 빌랄(Enki Bilal) 전시회(4월 14일까지)를 둘러보고
한상정 2001.04.01


2001년 4월 14일까지

1월에 한번 전시를 보러갔다가(1월 20일부터 시작했음), 1시간여를 기다리다 그냥 돌아온 경험이 있는 나로썬(음...거기서 1시간 반이라는 초인적 인내를 발휘했었지...^^아는 사람은 알리라) 여전히 그리도 사람이 많을라나...하면서 그래도 일요일에 짤랑짤랑 걸어나갔다. 이 얼마만에 가벼운 외출! 이젠 가방에 노트북에 도시락까지 들고 퐁피두를 왔다갔다 하다가, 하루 맘먹고 에이, 그래도 보고 써야지...하면서 말이다.(복받을지니...이 건전한 자세!) 그래도 30분여를 기다렸고, 의외로 들어가서는...1시간여에 보는 것을 끝냈다. 영화까지 볼려고 했지만, 왠 일본어로 자막처리를 한 것이 돌아가고 있음...담에 비데오로 어디선가 빌려보리라 했더니 의외로 시간이 줄어든것이리라.

올초에 이미 한국판으로 번역이 되어 그의 작품을 접해본 독자들이 꽤 있어서 알겠지만, 처음에 그의 책을 접하면, 누구나 아! 하고 감탄을 한다. 그 엄청난 그래픽. 손으로 여러 가지 재료를 다양하게(아마도 아크릴에서 색연필, 또 다른 묘한 연필류의 재료를 사용하는 듯) 써서 만들어진 그의 만화책은 그 묘한 에로티즘과 감수성으로 독자들을 흡입한다. 책으로 봐도 그러했지만(한국에선 얼마나 잘 인쇄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쨋건 전시는 원판이 주였으니까...직접 그의 오리지널을 대할땐, 아! 역시 죽이는구만...이라고 생각했다. 뎃생을 해 본 사람들은 알리라. "잘 그린다"는 것을 넘어 "개성있게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를...

1951년생. 이제는 어느덧 50줄에 접어든 프랑스 만화계의 상징적 인물중의 하나이다. 유고슬라비아 출신, 61년에 프랑스로 와서, 71년부터 만화계에 발을 드밀었다. 초기의 작품들은 뫼뷔우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보이나, 점차 자신의 그래픽을 살리기 시작해서 프랑스에서 <새로운 그래픽적인 만화>를 개척한 장본인이다. 10여권에 이르는 작품들이 있고, 2개의 영화를 찍었으며, 알랭 르네의 영화의 일부 데코라시용을 하기도 했고, 일러스트를 하기도 하는 등 그의 활동영역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98년의 <괴물의 졸음(Le Sommeil du monstre)> 이후로는 현재까지 만화책으로 나온 작품은 없고, 최근에 나온 작품이래야 작년의 <석관(石棺: Le Sarcophage)>도 전통적인 만화의 형식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만화책의 반정도 되는 작은 사이즈의 책에 오른쪽 페이지 전면에 한 컷씩 그의 작품이 실리고 왼쪽엔 시나리오 작가의 텍스트가 들어가는 형식이다. 왜 그럴까나....나중에 한번 생각해보자.


이번 전시회는 88년, 92년에 이어서 세 번째로 열리는 전시회로, 300평방미터에 이르는 면적에 150개의 이미지가 전시되었다. 이 이미지들엔 그의 만화 오리지널판들, 그의 회회작품들, 심지어 그가 디자인한 시계, 전시에 관련된 준비작업들, 그의 작품과정을 찍은 짧은 다큐멘터리, 2개의 필름과 그 편집물 등이 폭넓게 준비되어서 그의 전체 기량들을 남김없이 보여주는 듯 했다. 그의 작품을 판화로 찍어낸 것, 즉 그의 사인과 몇판째 찍었다는 사인이 들어간 작품들은 거의 1000프랑, 즉 요즘으로 치면 한 18만원 정도? 그냥 인쇄한 작품들은 한 2절지 정도 크기에 300프랑 전후니까 한 5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뭐 여유가 된다면 하나 사서 걸고도 싶었지만, 어디 왠 여유? 게다가 우리집같은 쓰레기통에 왠 우아한 포스터?! 눈물을 머금고 까진 아니고, 사실은 별로 아쉽진 않았다. 거참...묘한 현상이로고...사실 이런 묘한 기분은 전시작품을 둘러보고 30분 뒤 정도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전시의 처음이 그의 오리지널 작품들, 만화책을 위해서 한 것 치고는 크기가 좀 커서 아직까지 약간 정체불명인데, 한 30-50센티미터 정도의 크기니까, 만화책 앞표지도 아니고...뭐 어쨋건 그것들을 둘러보고 나니까, 오리지널 만화 페이지들은 왠지 보기가 싫어졌다. 답답하다고나 할까...몇작품정도는 20호 정도되는 크기에 회화처럼 그려진 것도 있었는데, 뭐 볼만했다. 볼만?! 글쎄...거참 애매했다. 나는 혼자서 왜 그가 최근에 만화책을 생산해내지 못하는지 짱구를 굴려보기 시작했다. 음...그 스스로도 약간의 침체기를 느낀다고 말했지....꼭 그때문은 아닐지라도, 사실 전시된 대부분의 작품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하다. 즉 내가 느낀 감정은 정확히 말하면 "지루하다"였다. 그는 "만화가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 글쎄...애매모호. 그는 훌륭한 일러스트인가? 그건 확실하다. 물론 그 영역이 정확히 제한되어 있다고 해도, 그가 어떤 특정 분위기, 그러니까 약간의 공상과학과 에로틱과 허무함과 뭐...딱히 블레이드 러너까지 안가더라도, 그런 분위기를 살려내는 데는 천부적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이외의 작품에도 그의 그래픽이 어울리는가...라고 물으면 대답은 "아니다" 이다. 그렇다면 그는 "화가"일수 있는가? 물론 아니다. 그는 좋은 영화감독인가? 그의 두 작품 모두는 비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만화와 영화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나는 영역이라면, 일러스트와 영화역시 마찬가지이다. 내가 볼땐 만화가 공간적인 예술이라면 영화는 시간적인 예술이다.(이런 의미에서 만화와 만화영화를 비슷한 영역으로 묶는 입장에 대해선 단호히 반대한다. 만화영화는 영화에 더 가까운 영역이다) 내게 있어서 만화의 묘미란 칸과 칸 사이의 흐름을 얼마나 잘 구성하는가에 달려있는 것이지, 한 칸 한 칸을 일러스트처럼 완벽하게 아름답게 채워내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연결된 회화>나 <일러스트 시리즈>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래서 그의 독립된 작품들을 보다가 만화의 오리지널판을 보면 답답하다고 느끼는 것이리라. 최근엔 그는 주로 시나리오작가들과 같이 작업을 한다.
그것이 그를 더 일러스트 작가에 가깝게 만들어버렸을까? 어쨋건 그에겐 새로운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그가 일러스트 작가로 변신하든지, 아니면 <그래픽 소설>작가로 전환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만화가로 계속 존재하고 싶다면 뭔가 획기적인 전환이 그에게 요구될 것이다....아. 이 창작자들의 고충. 똑같은 것을 생산해내는 것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길....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싫어하진 않는다. 그가 지금껏 생산한 작품들은 나름의 의의를 분명 가지고 있고, 어쨋건 그리 아름다운 화면을 산출시킬 수 있는 그의 손과 직업정신을 사랑한다. 게다가 그는 개인적으로 지나가다가 만나서 알아보면 심지어 오렌지쥬스까지 사줄 정도로 친절하다지 않는가...나는 새세기의 그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참조; 그의 전시 사이트;

www.enkibilalandeuxmille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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