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프랑스에서 만화공부하기 1
한수경 2000.09.01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 유학을 오를제...가 아니라, 늙은 몸을 이끌고 비행기에서 내려 프랑스 살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뭔가 엄청난 운명이 나를 기다리는 듯한 호연지기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2년이 흘러 흘러...남은 거라곤 굵어진 팔뚝(시장 보기가 너무 힘드므로), 그렇잖아도 깡패같던 심성이 손대면 펑하고 터질듯한 가기 일보직전 상태라고나 할까...뭐, 사실 너무 과장한 말이긴 하지만, 결코 모두가 거짓말이라곤 절대 할 수 없는 유학생활의 일면이다(단 필자가 4살박이 아이와 남편에 시달리는 몸이란걸 전제한다면 이보단 좀 더 긍정적일수도^^, 현명한 독자들이 가려 들으시길)

물론 이것이 모두가 아니므로 여기서 살아가겠지만, 혹 <유학> 이라는 꿈을 꾸시는 분들이 있다면 혹여나 참고가 될까 하여 필자가 아는 한에서 만화이론을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주절거려볼까 한다.


tintin-Herg 의 캐릭터 TINTIN

일단은 프랑스 교육시스템에 대해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프랑스의 고등교육은 크게 그랑 애꼴, 국립대학교, 국, 사립 애꼴로 나눌 수 있다. 그랑 애꼴은 이른바 모든 똑똑한 프랑스 친구들이 모이는 엘리트 대학교이고(외국인이 입학하긴 하늘에 별따기라고 한다), 국립대학교는 지역별로 파리 1대학에서 13(더 있다고 하지만 일단 접해본 것이 이정도 밖에...), 리용에서 리용1-3대학 이런 식으로 모두 균등화되어 있다. 학교간 차이가 있다면 일단 각 학교마다 유명한 과나 단과대가 있고, 같은 과가 존재하는 경우라면 학교마다 성향이 다르다는 것 정도. 예컨대 철학과는 1, 4, 8, 13대학 정도가 있는데(물론 파리 지역에서만), 8대학은 들뢰즈가 있던 곳으로 현대철학이 강세, 그리고 전통적으로 좌파경향, 4대학은 근대철학, 전통적인 우파, 이런식으로 나눠져 있다. 5대학은 극우파로 유명하다. 유색인종들(물론 우리나라 사람도 포함해서)에 대한 정신적 차별(물질적 차별은 처벌받으므로)만이 아니라 폭행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그랑 애꼴을 제외한 모든 대학교는 사실 수준이 비슷하다.(즉, 소르본-4대학을 다닌다고 자랑스러워 할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 1년 등록금은 우리나라 돈으로 한 15만원 정도? 즉 학비는 거의 없는편. 우리가 생각하는 석, 박사과정은 대학교에서만 정식으로 밟을 수 있다. 반면 애꼴은 5년제로, 실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애꼴에 등록을 하는 편이다. 국립애꼴(영화학교, 장식미술 학교...)은 입학하기가 무척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나이제한도 대충 25세 근처로 정해져 있는 편이다(예술계의 그랑 애꼴이라고나 할까) 그외의 사립애꼴들이 있지만 등록금이 엄청 비쌀뿐 아니라, 발급되는 학위 자체가 프랑스 내에서도 잘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쨋건 이론을 공부하기 위한 방법은 대학교에 등록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면 어학과정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는 것이, 불어를 못하면 사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국에서 많이 준비할수록 프랑스에서 시간이 단축되며, 단지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의지가 자주 꺽이거나 상처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불어를 못해서 교수랑 의사소통이 잘 안되면 논문쓰기가 힘들어진다.(불어공부 많이 하고 옵시다!!)

일단 프랑스 대학교 안에도 만화 이론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과의 명칭에 따라서 학문간(특히 인문학 사이엔)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편이다. 프랑스에서 만화에 관한 논문이 가장 많이 나온 과는 어딜까? 박사논문이 60개 가량이 나왔는데, 의외로 철학과가 가장 많고, 그다음은 문학과, 사회학과, 심리학과, 사회학과 등등 다양하게 포진해있는 편이다. 즉 주제가 지도교수에게 인상깊다면 어떤 과라도 문제없이 진학할 수 있다. 사실 과정에 등록하는 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은 편이다(하지만, 적당한 시간내에 논문을 끝내지 못하면 ?겨나는 수가...)



Complete Adventures in 1
Volume TINTIN"의 한페이지


그러나 수업과정이 낮을수록(즉 박사보다는 석사가, 석사보다는 학사과정이 더) 어렵다고들 한다. 어떤 의미냐면, 학사과정은 교양과목(철학, 역사 등등)이 엄청 많은데, 그것을 1년안에 프랑스 친구들처럼 다 통과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 학사과정부터 시작한 사람이 처음엔 오래 걸리지만 만약 박사논문까지 쓴다면 훨씬 더 빨리 끝내는 경우도 생긴다. 왜냐하면, 논문을 쓴다는 것이 "단지 불어로 내 생각을 쓰면 된다", 즉 "언어만 바꾸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는 생각의 형태를 지배한다! 따라서 언어를 바꾼다는 것은 생각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므로, 생각의 형태를 바꾸기 위해선 역시 학사과정부터 하는게 훨씬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요즘은 한국에서 받은 학위가 잘 인정되지 않는 편이다. 즉 서류심사를 거칠때 한국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면, 다시 학사 3학년(이게 끝이긴 하다. 4년째는 석사과정이니까)으로 받아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석사과정을 마쳤다면 석서과정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 프랑스의 학기는 9월부터 시작해서 다음해 6-7월에 끝난다. 그러므로 6월이나 또는 9월에 자신에 관한 모든 서류를 준비하고, 그리고 석사과정부터는 자신의 지도교수를 찾아야 하므로(교수들을 잘 모르면 조교실로 그냥 보내면 된다) 논문주제를 1-4페이지 정도로(학교마다 요구하는 것이 틀리므로) 써서 지도교수가 될 사람에게 보내야 한다. 서류심사가 끝나면 정해진 지도교수와 만나서 주제에 관해 이야길 해야 한다. 주제가 인상적이지만 석사논문으론 다루기 어렵다든지, 왜 여기에 관심있느냐 라든지..그리고 지도교수를 할 수 없다는 거절의 편지가 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의 거절 원인의 대부분은 "당신의 주제가 너무 광범하거나 진부함"이다. 이쯤 되면 다들 쇼크를 받는데, 여기가 바로 우리나라 논문과의 차이점이 확 벌어지는 것이다. 주제의 범위가 좁고 제한될수록 더 선호받는다. 즉 "에르제의 만화의 특성" 보다는 "에르제의 <달위에서 걷다> 라는 작품에서, 크기가 큰 칸의 의미들" 같은 것이 더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달위에서 걷다" ("On a march sur la Lune")표지

지금껏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왔다면, 방향전환을 한번? 프랑스의 학생들은 친절한 편. 특히 여학생은 남학생에게 남학생은 여학생에게 친절하므로 필기노트를 빌리는덴 아무런 문제가 없다.(아니, 대체 이걸 위로의 말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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