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야자키-뫼뷔우스 전시회(Exposition Miyazaki ? Moebius) 에 다녀와서
한상정 2005.01.01

상상을 해보자. 만약 우리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1942- )와 뫼뷔우스(본명 쟝 지로(Jean Giraud) : 1938-) 두 사람을 함께 묶어서 전시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미야자키는 보충설명이 필요 없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고, 뫼뷔우스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만화가이자 아티스트로,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는 <잉칼> 시리즈를 비롯 <블루베리> 라는 서부만화의 저자이자, <시간의 지배자> 라는 애니에이션, <듄> 이나 <아비스> , <트론> 등의 영화의 그래픽 작업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던 프랑스가 동시대에 가장 자랑하는 작가들 중의 한 명이다.


[그림: 뫼비우스 자화]


[그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그림: 천공의 성 라퓨타]

아주 기본적으로, 일단은 각 작가의 세계를 잘 보여주면서도 두 작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여주면 더 좋을 테고, 음, 만약 두 사람이 함께 만나서 서로에 대한 평가를 한 것이 있다면 그 것 역시 좋은 자료로 쓰일 테이고, 작가들의 뎃생들과 그림들, 필름들이 재료로 사용될테고…라는 대략의 틀거리를 잡는다면, 그렇다면 전시 오픈은 언제가 좋을까? 아무래도 미야자키 감독의 신작이 프랑스에 개봉하는 즈음이 좋겠지? 등등의 상상을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리고, 이 전시는 이러한 우리의 기본적인 상상을 절대 초월하지 않는 무난한 전시였다. 이 전시가 기획된 것은 2002년 뫼뷔우스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였다고 한다. 그러니 2005년 1월 15일을 개봉으로 잡고 있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을 앞두고 이 전시로 일거에 시선을 끈다는 건 뭐 절대 나쁜 생각은 아니었던 듯. 적어도 프랑스에선, 미야자키 감독을 몰라도 뫼뷔우스를 모른다는 건 좀 예외적인 상황일 테니 말이다.



[그림: 전시포스터]

전시 개막식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자면, 뫼뷔우스가 처음으로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을 접한 것은 연도는 정확히 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미국의 로스 앤젤레스에 거주할 당시라고 한다. 그 즈음 아들은 이른바 일본 망가의 팬이었는데, 반에서 불법 복제한 일본 애니메이션 테이프들이 돌고 있었고, 그는 아들이 어느날 가져온 테이프 중에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필름을 몇 번이나 본 이후, 차례로 그의 작품들을 모두 찾아보고,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한다(심지어 그의 손녀딸 이름이 나우시카 라는 것을 보면, 이 작품에 대한 대를 이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뫼뷔우스가 일본을 처음으로 방문해서 이 감독을 만났을 때, 감독 역시 뫼뷔우스의 작품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역시 그 세계에 관한 경외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서로가 무척이나 놀라워했다니, 어떻게 보면 그 사실이 더 놀랍기도 하다. 뫼뷔우스 스스로의 언급에 따르자면, 자신이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에서 발견한 것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정신적 성찰”이고, 자신 역시 이런 부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불행히도 아마도 일본의 오래된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고려되는 이런 심도 깊은 정신주의적 접근에는 따라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자, 그렇다면 이 전시의 테마는 당연히 <인간과 자연> 이라는 두 작가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중심으로 풀어질 것이라고 유추가 가능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전시가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초적인 부분들을 모두 섭렵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실지로 전시가 어떠했나를 둘러보는 것 뿐.


[그림: 전시외관]

입춘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추운 날씨, 그것도 토요일 아침 개관시간인 10시에 맞춰서, 루브르 박물관이 세느강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위치에 세워져 있는 <파리 화폐 박물관> , 전시장소로 갔다. 20분 전엔 도착했지만, 그래도 이미 도착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전시는 역시 열심히 준비되어야 하는 것 같다. 전시의 중앙 홀(궁전의 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에 아예 달팽이 모양의 그다지 크지 않은 전시공간이 따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건 그럴 수 밖에 없게 보였다. 굉장히 고전적인 건물로, 천장이 높고 장식이 많아서, 시선이 산만해 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달팽이처럼 생긴 전시관에는 두 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양 쪽으로 나누어 반은 미야자키, 반은 뫼뷔우스, 그리고 두 분리공간이 만나게 되는 가운데에는 두 작가가 서로에게 바친 그림들이 몇 점 전시되어 있었다. 통로가 거의 일 미터 정도의 넓이도 안 되는 바람에 옆 사람과 부대끼는 것은 필수(10번이나 부딪힌 것은 내가 덩치가 크기 때문이 절대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달팽이 공간 속을 지나가면서 작은 크기의 작품들을 유리를 통해 봐야 할 때는 진땀이 흘렀다. 사람이 이 보다 더 많다면 도대체 어떻게 보라고 해놓은 것인지 일단 투덜대기 시작했고, 게다가 전시작품 바로 옆에 캡션을 달지 않아서 아래쪽에 붙여놓은 캡션이랑 일일이 비교해야 하는 피곤함에 심지어는 잘 알아보기 힘든 배열에 이르자, 투덜거림은 극에 달했다. 달팽이로부터의 탈출은 필연적, 다시 한번 들어가느니 성을 갈겠다라고 과감한 혹평.


[그림: 문제의 달팽이 외관]

달팽이의 외관엔 전시 개막식에 미야자키와 뫼뷔우스가 함께 인터뷰한 필름과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원령공주> 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필름이 설치된 화면을 통해 지속적으로 상영되고 있었고, 입구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작은 유리로 된 공간에 차례로, <대지> , <하늘> , <캐릭터> , <회화적인 기본감각> 등의 테마로 분리해서 두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모아놓은 곳이 준비되어 있다. 복도의 맨 끝에는 미야자키의 여러 필름들과, 뫼뷔우스의 만화작품이나 영화필름들에서 뽑아낸 비슷한 미장센들을 편집해서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림: 달팽이외관과 필름상영]

출입구 옆에선 이 전시 도록과 포스터나 엽서, 그리고 동전박물관이 하는 전시인 만큼 두 작가들의 작품을 각기 찍어낸 동전들이 각기 2유로씩에 판매되고 있었다. 어찌나 무섭게 카메라 촬영을 금지시키는지, 그 와중에 전시장의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해 몰래 사진을 찍다가 달아나고 들키고…등등의 약간의 민첩함을 발휘하기도 했다. 뭐, 여하간 전체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그냥 그럭저럭한 전시였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 물론, 평소에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오리지널 그림들을 유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잘 알고 있다면, 우와, 이렇게나 많은 그림들을 가져 오다니…하는 것에 놀랄 수 있고, 그 자체로 돈이 많이 들었겠다 라는 걱정까지 해 주면 좁다란 달팽이 공간도 이해할 순 있지만, 사실 전시형식 자체로는 불합격이다. 그래도 그럭저럭한 전시라는 평가를 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지로 눈을 즐겁게 하는 훌륭한 작품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 받지 않을 만한 기회를 가지기만 하면 말이다.


[그림: 기념동전]

개인적으로는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은, 너무 많이 또는 자주 봐서 그런지 그다지 눈길이 가지 않았고, 게다가 무슨 애니메이션의 포스터나 셀의 한 조각을 가져와서 붙여놓는다는 것에 그다지 취향이 없다 보니 대부분은 그냥 끄덕끄덕 거리면서 지나갔다. 뫼뷔우스의 작품들이야 원체 모르는 것도 많다 보니, 아, 이 사람이 이런 것도 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 오리지널 화에 붙어있는 수많은 지우개 자국, 칼로 오려서 다시 붙여놓은 흔적…등을 보면서 이건 또 색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참으로 잘 그리는 구나 라는 느낌은 전시 내내 떠나지 않았지만, 1시간 반 가량 작은 그림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더니 점점 더 눈이 아파오는 것이었다. 그래도 입장료를 낸 만큼은 아깝지 않았다. 오랜만에 거장들의 거장적인 그림들을 실컷 봤으니 말이다. 그래도 좀 아까웠다. 이 거대한 덩어리들을 이렇게밖에 요리할 수 없었다니 말이다. 뭐, 다음 번엔 더 나은 기획을 한번 기대해보자. 물론 미야자키 감독이 또 한번의 신작을 낸다면의 경우가 될까?


[그림: 미야자키]


[그림: 뫼비우스01]


[그림: 뫼비우스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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