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화가 있는 정원을 거닐다가, 만화속의 정원으로 걸어들어가다
한상정 2001.07.01

파리 베르시(Bercy)공원에서의 전시(2000.9-2001.9)를 보면서

한국에 있을 땐, 공원에 관심이 없었다. 어릴 때를 제외하고 나면 나이 들고부터는 <공원에 간다>라는 것이 어떤 놀이나 휴식의 공간으로 내 머리에 입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사는 곳 근처에 엄청 유명한 공원들, 예컨대 베르사이유나 생 클로드공원이나, 블로뉴공원이 있긴 하지만 그 곳까지 가기 위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는 것이, 복지부동의 게으른 백수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공원에서 뭐하고 노냐", 즉 뭔가 있어야만 놀 수 있는, 바쁜 백수라고 할까...

어느날 갑자기(사실은 논문을 쓰면서, 안돌아가는 머리를 억지로 회전시키려니 얼마나 골치가^^), 주변의 프랑스 학생들이 하는 것 처럼 "나도 공원에나 가서 머리를 좀 식혀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야외용 돗자리를 가지고 공원에 가서 한 두어시간을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뒹굴뒹굴, 가져간 도시락 먹고 누워서 빈둥빈둥 애랑 놀다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 놀랍게도 꽤나 맑아져 있는 머리를 발견한 것이었다! 아! 두통의 원인이 산소부족, 스트레스 과다 등등이었나...라고 경험한 후론, 피곤하다 싶으면 오히려 공원을 찾아가는 부지런을 떨기 시작한 것은 정말 얼마되지 않았다.

파리내의 공원마다 붙어있는 <만화의 정원>이라는 전시포스터를 봤을 때도, "공원에서 전시를? 에이 뭐 그저 그려러니..."했던 마음이 많았다. 사실 만화만이 아니라 어떤 전시를 조직한다는 것은 의외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왠만해선 마음에 드는 전시방식을 발견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실은 별로 전시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전시를 보면서, 나는 또다시 나의 이 오만함을 반성을 했고, 이 전시를 조직한 사람이 있다면 정말 찾아가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감동을 했다.

왜 전시한다는 것이 어려울까? 우선은, 전시의 내용물이 좋아야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뭐 예컨대, <모모씨의 작품 전시회>라는 걸 머리에 그려보자. 시대별, 주제별 뭐 여러 가지 구분이 가능할 것이지만, <작품을 건다>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만화전시회에서는 따라서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재료란 작가의 오리지널 만화 페이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오리지널 작품의 몇 페이지를 전시한다는 것을 굉장히 지루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일단 그것이 오리지널이란 의미를 제외하고 나면 읽거나 보기가 굉장히 거북스럽고, 또 그것이 인쇄된 상태와 그리 커다란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엔...집에 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뭐, 그 작가 인터뷰를 한 필름이라든지, 최초의 판본이라든지 뭐 그런것들이 추가될 것이다.(이 일반인의 한계점을 보시라!!...따라서 전문가가 필요하겠지만)

이 전시를 보면서 감명받은 이유는 그 의도가 굉장히 정확하고, 그것을 잘 살려내었다는 것에 있다. 내가 볼 때 이 전시의 의도는, 앙굴렘 만화센터에선, "만화에서 독자들이 쉽게 스쳐지나가 버리는 배경-정원을 중심으로-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한다", 그리고 공원측의 의도는 "공원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만화에서 표현되는지, 그리고 그럼으로써, 만화독자들에게 공원을 만화에서의 추억과 함께 바라보도록 한다" 뭐 등이 아닐까나? 이 <베르시(Bercy)>공원은 조성된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파리 12구에 있는 꽤 현대스러운 공원이다. 공원의 반을 가로지르는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해서 나열된 나무들과 풀밭,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위치한 조그만 정자들, 조성된 나무들에 둘러쌓인 자그마한 건물들에는 각기 개성에 따라서 식물을 키우거나 등등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인 장소로 쓰인다. 4개의 건물에서 각기의 주제에 따른 전시를 하고, 나머지 2개의 장소에선 만화에 등장한 식물들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직접 만화를 그려보도록 지도하는 행사가 주말마다 열린다. 물론 제작년말(작년인감? 으...아줌마 침해)에 엄청난 태풍이 와서 쓰러진 나무들이 많았다라곤 하지만, 전시공간을 진짜 통나무로 다 둘러싸게 했음은 물론,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게끔 볼 수 있도록 주인공들을 나무로 만들어서 세워두었다. 작가들의 작품은 오리지널을 선호한다기 보다는, 훨씬 더 큰 따블로에 인쇄를 해서, 만화책을 볼 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다른 분위기를 부여했다.(엄청난 발상의 전환!)

<환상적이고 미래적인 정원>이라는 주제를 붙인 전시공간에 들어가면, 감옥을 만들어두고, 그 속에 쇠창살에 둘러쌓인 정원을 묘사한 작가의 작품을 넣어두었다.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음은 말할 나위없다. 글을 읽기 위해서 눈을 찡그리지 않아도 된다. <뫼뷔우스>의 환상적인 정원이 식물원 사이에서 그대로 재현되었고, 옆에선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을 담은 만화의 한 칸들을 필름으로 찍어서 돌리고 있다. 그 정원들이나 건물은 내가 보았던 만화의 한 칸과 유사하면서도 또 다르다. 십몇센티에 불과한 한 칸을 2미터에 달하는 공간에 인쇄해서 보게될 때, 이미 그 아름다움은 만화책의 제한된 공간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비로소, 이 한 칸을 그리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그대로 내게 전달되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답답하다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가 있는데, 한국에서도 번역이 된 듯 하지만, <기울어진 아이>를 작업한 작가의 몇 칸이 이런 식으로 재현되었는데, 그 충격을 꽤나 큰 편이었다. 나는 아마도 다음에 이 작가의 작품을 보게 된다면 <다시>한번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곳에선 만화속에 등장하는 정원들과 그 실사물을 옆에다 나란히 전시해두는 곳이 있었다. 그 속엔 파리에 있는 갖가지 건물과 공원들의 사진이 붙어있었고, 그 공간을 작가들의 펜선과, 형상적인 특성에 따라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아! 극찬을 받아야만하는 이 장인정신이여! 어디선가 배경을 다운받아 그대로 사용하는 편의적인 태도와는 얼마나 다른 것인지...이것이 결코 칼라로 인쇄된 만화와 흑백만화의 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다른 예는, 우리가 만화에서 가상적으로 듣는 소리를 현실화함으로써, 또다른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예컨대 어떤 주인공이 야밤에 어딘가를 뛰어가는데, 그 칸에 적혀있는 소리들, 무슨 박쥐날개소리나 늑대의 울음소리를 재생해두었다. 그 칸은 나무 밑둥치를 잘라내어 속이 파여진 공간속에 음울한 검붉은 조명아래 설치되었고, 조그만 구멍속으로 들여다보게끔 되어, 그 은밀한 무서움이 만화 그대로, 또 다르게 전달되고 있었다... 한 칸, 또는 한 페이지마다 그 작품의 고유한 특성을 살려낼 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또다른 감각을 부여했다. 이것이 바로 전시를 조직하는 자가 해야할 일인 것이다. 정원길을 따라 걷다가, 전시를 접하게 되면, 그때부터 관람자들은 자신이 딛고 있는 공원을 떠나서, 만화속의 공원과 정원과, 그 건물속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기억이나 추억과 더불어 걸어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객들을 흡인하는 만화전시를,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 보게 될 날을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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