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피, 땀, 열정 스포츠만화] 스포츠의 서사. 누가 승리해야 하는가?
- 야마다 요시히로 <데카슬론>, 오오타 모아레 <철풍>
이재현 2018.02.28


우리가 이야기를 본다 함에 있어 절대 객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 서사가 최대한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하더라도, 근본적으로 누군가의 시선을 통과해 만들어진 것임이 자명하다. 그 안에 서사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그에 끌려 다니며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러한 와중에 이야기를 이끄는 주동인물-프로타고니스트가 작품에 명백히 존재하게 되면 우리는 완벽히 객관화에서 멀어지게 된다. 수용자들은 주인공의 안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가 선하다고 믿으며 그가 승리하길 고대한다. 물론 때로는 주동 인물을 윤리의 반대편에 위치시켜 우리 내부의 사고를 전복시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서스펜스를 발생시킬 때면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며 그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를 주동한다는 것, 그 추동의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판단을 흐리고 있는 장치이다.

수많은 스포츠 서사들은 이 주동의 힘을 최대한 이용한다. 해당 종목의 외부에 있던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그 내부의 세계에 들어가고, 그 안에서 미덕을 찾으며 자신의 극한까지 노력한다. 결국 그는 승리하거나 혹은 패배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작품이 제시하는 세계관은 온건히 주동인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만약 그 시선에 색을 입힌다면 주인공의 색과 동일한 색으로 꽉 차 있음이 당연할 것이다. 우리가 스포츠 서사를 통해 배우는 미덕은 모두 주인공이 발견한 것들과 동일시된다. 주인공이 우정과 노력으로 승리를 거머쥔다면, 우리 역시 우정과 노력이 승리를 위한 최고의 미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스포츠 서사에서 주동인물을 소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를 위해 대부분의 스포츠 서사, 특히 스포츠 만화는 그가 해당 종목과 접촉하기까지의 서사를 꽤 길고 심도 있게 묘사한다. 이 과정은 주동 인물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독자와 공유할 수 있는 특성들을 짚어주기 위함임과 동시에, 혹여나 생소할 수 있는 운동의 요소들을 쉽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철저하게 기능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이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이러한 흐름이 없다면 작품의 주제를 표층으로 쏘아 올리는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보편적인 믿음 때문이다.
야마다 요시히로의 <데카슬론>에서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이 접근이다. <데카슬론>은 이러한 경향을 철저하게 무시한다. 독자가 첫 화에 접하는 순간, 그들은 주인공의 이름을 알게 됨과 동시에 바로 스타트 라인에 서 있는 즐비한 선수들을 목도하게 된다. 애당초 이 안에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이 주인공이다’라는 정보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 카자미 만키치가 어떤 성격과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가 어떻게 본 작품이 다루고 있는 데카슬론(10종 경기)와 접촉하게 되었는지 따위는 전혀 알 수 없다.

시작과 동시에 데카슬론의 첫 종목인 100m 달리기가 시작되고, 몇 페이지 동안 종목의 진행을 멍하니 보고 있게 된다. 그 뒤에야 만키치의 라이벌 중 하나인 타타라의 설명을 통해 현재 다루고 있는 종목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지만 이는 피상적인 데이타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이 극을 잡아 이끌어야 하는 카자미 만키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것이다. 하지만 데카슬론은 10종의 경기이고 만화는 첫 종목을 통해 이미 시작해버린다. 중간 중간 만키치의 과거에 대해 약간씩의 플래시백이 삽입되긴 하나, 그 또한 일반적인 스포츠 서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깊이 있는 정보의 영역까진 도달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누구를 통해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 가에 대해서 온건히 판단도 하기 전에 남은 9개의 종목이 순식간에 진행되어 단행본 3권을 채운다.

이 안에서 독자들은 아무런 정보도 없이 10개의 종목을 봐야한다. 그 사이에 주인공과 대립하거나 연대하는 몇 캐릭터와 접하게 되고 그들을 통해서 데카슬론의 진행 방식과 채점법 따위를 배우기는 하지만, 그 과정은 스포츠 서사의 보편적 정보 - 즉, 완전히 ‘선하거나, 독자와 유사한’ 누군가를 짚어주거나 해당 종목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론 따위를 완전히 배제한다. 맞다, 이 만화는 독자에게 편리한 방식의 발판을 만들어 줄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슬론>이 제공하는 흡입력은 쉬이 떨어지지 않는데, 야마다 요시히로는 전혀 다른 방법론으로 독자의 시선을 잡아챈다. 그것은 바로 이상하리만치 과장된 경기의 묘사다.

<데카슬론>이 세간에 알려져 있다면 아마도 그 독특한 작화에 있을 것이다.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국면이 될 때, 야마다 요시히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시원한 컷 배분이 보편적인 스포츠 만화라고 할지라도 매우 무모할 정도의 거대한 컷들 - 때로는 두 페이지를 완전히 채우는 전면 컷에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담긴다. 그때의 인물의 형태는 가히 원형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기이하게 변형되어 있다. 어마어마하게 과장된 투시를 통해 만들어진 데포르메, 그리고 고속 촬영으로 캐치해낸 것 같은 인물들의 일그러진 표정이 그렇다. 해당의 컷들만 따로 떨어뜨려 늘어놓는다면 이 작품의 본질이 코미디 만화일까 의심이 갈 정도의 구겨진 인체가 가득하다. 그럼에도 그 가장 ‘극적인 순간들’은 전혀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것이 가장 ‘극적인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때로는 그런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장면에서 가장 고조된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된다.
야마다 요시히로의 전략은 분명하다. 그는 데카슬론이 아름다운 스포츠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그 경기의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본다면 당연히 매료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명백하다면 입문한 깨끗한 입구 따위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 누가 주인공이며, 그가 어떻게 매료되었는지를 묘사하는 시간은 경기 그 자체를 보는 시간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는 우리가 스포츠를 관람할 때의 형태와 정확히 연결된다. 우리는 그가 누구들인지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모두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목도한 뒤에 그들의 경쟁을 지켜본다. 물론 해당 종목에 관심이 많은 팬이라면 특정한 몇몇 선수들에 대한 뒷이야기 정도는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며, 그러한 조건이 해당 선수에 대해 더욱 깊이 조망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허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팬이 모든 선수들, 특히 새로이 등장한 선수들에 대해서까지 모두 알고 있을 수는 없다. 이는 친숙함의 문제이지 정보의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 서사가 제시하는 과도한 친밀도를 가진 채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은 선수의 가족과 친척, 지인 정도뿐일 것이다. 완전히 거리를 가진 타인이라면 <데카슬론>의 첫 장에서 느낀 위화감과 함께 관람을 시작하게 될 뿐이며 대상의 뒤를 쫓는 동력 역시 그 필드 위에서 발생한다. 어떤 선수가 어떤 인간이며 어떻게 훈련을 쌓아왔는지 하는 것은 그 뒤의 문제에 가깝다. 그보다는 먼저, 그들이 필드에서 발생시키는 에너지가 관람하는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이다.

때때로 <데카슬론>의 이야기에서 공격받는 부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인물-카자미 만키치-이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는 전개 역시 그렇게까지 불합리한 상황은 아니다. 관람의 위치에 선 우리에게 있어서 선수들의 잠재적 기량과 연습량은 도량화 되어있지 않다. 그 위에 선 순간,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는 동일한 위치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신예 선수의 강력한 성과’라는 것은, 실제 필드에서는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우리가 <데카슬론>에게서 그러한 위화감을 획득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의 배경을 모른다는 정보에서 기인할 뿐이다. 요는, <데카슬론>이 전형적인 스포츠 서사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기 때문에 받은 위화감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실제 우리의 시야에서는 그 누가 가장 재능이 있는지, 가장 노력을 해왔는지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선한지에 대한 판단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시선의 주입은 각각의 서사가 필요에 의해 설치해놓은 장치에 가깝다. <데카슬론>의 초반 전개는 이러한 서사의 전용에 대한 안티테제이지만, 그것이 도리어 우리가 스포츠를 관람할 때의 자세에 더욱 가까워보이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누가 선한가’라는 전제는 애당초 성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이는 것이다.

오오타 모아레의 <철풍>의 입장 역시 그러하다. 여성 격투기를 다루는 이 만화는 상당히 독특한 인물구조를 가지고 시작한다. 주인공 이시도 나츠오는 그야말로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인간으로, 재능 없는 타인들에 대한 경멸을 품고 살아간다. 특히나 격투기를 즐기며 싸우는 마와타리 유즈코에 대해서는 혐오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며, 그를 격투기를 통해 ‘철저하게 밟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을 정도다.
<철풍>은 주인공이 상대적으로 혐오스러운 인간인 것을 숨기려 들지 않는다. 나츠오는 보편적 의미에서의 선하지 않은 인간이다. 즉, 스포츠 만화에서 주로 꼽는 선한 가치들인 노력과 협력, 그리고 운동하는 즐거움을 추종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노력없이 재능만으로 승리하는 세상을 지나치게 긍정하기 때문에 도리어 노력의 가치에 집착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재능 없이 노력에 집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발로 표출되기에 근본적으로 삐뚤어진 인간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는 하나의 질문이다. 이러한 인간이 승리하는 이야기를 보고 싶은가? 이 전의 수많은 스포츠 서사들은 이에 대해 반대한다. 그들은 마치 그러한 사람은 승리해서는 안 된다고 합의한 것처럼 굴어왔다. 그보다는 재능이 없어도 노력하는 자, 타인을 업신여기지 않는 자, 경기에서 즐거움을 꿈꾸는 자들이 성공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처음에 제시한 그대로 서사라는 필터가 만든 환상이다. <데카슬론>의 시작점을 보자. 아무런 정보 없이 일렬로 늘어선 선수들이 전면 컷으로 제시된다. 자, 이 중에서 누가 선한 사람이고 누가 악한 사람인가? 누가 노력가이고 누가 재능가인가? 답을 내릴 수 있는가?
오오타 모아레는 이에 대해서 (역시나) 삐뚤어진 관점을 제시한다. 작품 내내 나츠오의 라이벌처럼 사용되는 유즈코는 여러 면에서 스포츠 서사의 주인공에 가깝다. 그렇게 특출한 재능을 가지진 않았음에도 시합 자체를 즐긴다. 그 ‘즐거움’이 원동력이 되자 그 누구보다 노력하는 노력가가 된다. 누군가를 이겨도 자만하지 않으며, 패자에겐 언제나 손을 내밀고 즐거운 싸움을 기약한다. 유즈코는 스포츠 서사에서 그 누구보다 선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철풍>의 서사 내에서 그는 괴물이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를 뺀 모두 승패에 연연하고 있으며, 그것은 스포츠라는 형식의 디폴트이기 때문이다.

요한 하위징어는 자신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현대의 스포츠 경기는 놀이의 영역을 탈피했다고 정의한다. 그 이유로는 프로 선수들에게는 자발성과 무사무욕이 사라졌다는 점을 들었으며, 그것이 아마추어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들게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아마추어에 대한 박탈감을 유발시키는 것을 위험하다 지적한 이유는 최소한 현대의 스포츠에도 아마추어는 ‘놀이’라는 카테고리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란 놀이라는 개념 바깥에 있음을 반증하며, 그것이 바로 프로 스포츠 선수가 승패에 연연하는 이유가 된다. 성과와 재미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것인가는 개인의 가치체계에 따라서 판단할 문제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비중이다. 만약 어느 하나가 어느 하나를 압도해 버린다면, 그것은 역시나 비일상적인 밸런스로 구축된다. 특히, 프로 스포츠의 무대에서 승패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것은 어딘가 삐뚤어진 개념처럼 읽히게 된다. 재미가 완연하다는 것은 승자에게는 더욱 유쾌한 일이지만, 패자에게는 극도의 박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지고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한계가 있다. 더욱이 강자가 약자에게 그런 이야기를 건넨다는 것은 도리어 기이한 폭력의 형태처럼도 보인다.

결국 선한 가치를 추종한 자에게 승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온한 탑과 같다. 그 누구도 그러한 가치에 대해서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수많은 스포츠 서사는 개개인의 인물을 쫓음으로써 그 가치를 정형화하려 하지만, 이에 대한 시선이 조금만 비틀어져도 그 신화는 깨어지고 만다. ‘누가 승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합당한 대답은 없다. 경기장이라는 필드에 올라가는 순간,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모두 가치중립적이 된다. 개개별이 어떠한 가치를 가졌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그것을 판단할 명백한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이며, 경기장은 신성하며 평등한 공간이다. 이는 스포츠에 관한 가장 흔한 레토릭이다. 우리는 심적으로 이러한 클리셰를 부정하려든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만 생각하기엔 너무 알고 있는 것이 많은 탓이다. 제1세계 선수들과 제3세계 선수들 간에는 아마도 훈련 프로그램에 격차가 있을 것이며, 잘 디자인된 스포츠 기어는 기록을 0.1초 단위로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이 있는 한 스포츠의 성과는 우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선한 가치’와 무관하다. (애석하게도) 조건의 일부일 뿐이다. 때로는 훌륭한 자본적 서포트가 노력을 압도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자본적 한계를 돌파하곤 한다. 조건은 자주 뒤집어진 결과를 보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건에 대해 추정할 뿐, 단언하기는 어려운 상태를 가진다.

결국 모든 것은 원점이다. 우리는 스포츠를 왜 관람하는가? 그것은 그 누구도 관람하기 위한 서사를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드 위에 올라가 있는 한,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한 그들은 모두 동등해 보일 수밖에 없다. 승리해야 하는 자, 패배해야 하는 자는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 각자가 선별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이 그들에게 투영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가치에 가깝다. 각본 없는 드라마에 각본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뜻이다.

젊은 시절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알베르 까뮈는 ‘윤리와 인간의 의무에 대해서 가장 확실히 알게 해 준 것은 스포츠였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필드 위에 있는 한, 그리고 규칙을 준수하는 한 그들은 동등하게 윤리적이다. 왜 스포츠를 보게 되냐는 질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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