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내가 회사를 다니며 웹툰을 그리는 이유
박탐유 2020.06.26



웹툰작가와 회사원의 일상


커밍아웃

회사원의 뒤 늦은 고백

실은... 웹툰작가 지망생이에요 


박탐유





광역버스를 타고 달리는 아침마다 후회를 한다. 어젯밤에 좀 더 그려볼걸, 왜 티비만 보다가 잠들었을까. ‘오늘의 만화’에 도전을 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독자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아이템과 내용으로 무장해야 하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간의 취준 생활을 거쳐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다. 별다를 것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직장도 고만고만해서 내게는 삶의 극적인 순간이 별로 없었다. 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만화에 대한 유별난 욕심이랄까. 단순히 만화를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내가 직접 그리고 싶어졌다.


4천억 규모의 웹툰 시장이 조성된 나라답게 다양한 창작 스튜디오가 열렸다. 직장에 다니다 보니 주말반에 나가 간단한 스케치부터 배웠다. 선생님은 내게 “캐릭터의 감정이 페이지를 뚫고 나오게” 그리라고 하셨다. 만화는 감정이 전부였다. 컷과 컷 사이의 공백에서도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했다. 독자의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좋은 만화라 할 수 없다. 유명한 웹툰 작가는 모두 독자의 감정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 작화 실력이 좋아야만 만화가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 초딩처럼 그려도 그 안에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디테일을 잘 담아낸다면 내 도전은 성공할 것이다. 그런데 그건 꼭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나야만 가능한 게 아니다. 재능이 있어도 노력 없이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그래서 퇴근하면 클립 스튜디오를 이용해 한 컷이라도 그리고 자는 게 목표가 되었다.


어느 날 대형 포털 사이트 웹툰 관리자가 내 만화를 보고 연락할지도 모른다. 별안간 ‘도전 만화’에서 ‘요일별 웹툰’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내 모습이 한 컷의 만화로 떠올랐다. 조약돌처럼 반짝거리는 내 눈동자 주위로 그보다 더 반짝거리는 별이 돌고 있는걸. 하늘에서 내려온 손이 나를 픽업해 빛나는 단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렇다면 당장 사표를 써주겠다!

특히 팀장이 보고서를 집어던지고 처음부터 다시 해오라고 시킬 때는 더욱!

저런 배불뚝이도 첫사랑이 있었겠지? 내 앞에서는 트림도 하고 살짝살짝 코도 파지만 첫사랑 앞에서는 수줍었을 것이다. 내 첫사랑도 나이가 들면 변질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변한 당신을 그리지는 않을 테지만……


요즘 나는 옛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와 처음 만났던 강의실, 함께 갔던 학교 앞 식당, 스터디 카페에서 팀플 했던 순간을 되도록 풋풋하게 그려내 독자로 하여금 만화를 보자마자 첫사랑이 생각나게 하고 싶다. 맥주를 마시며 고백했던 사랑이 이제는 텅 빈 맥주잔으로 남았지만 행복했던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을 찰랑찰랑 채우고 있다. 내 마음을 흔드는 사랑의 깃발을, 당신의 흔적을 하나하나 컷 안에 살려내고 싶다. 내 손을 떠나 만화로 남겨지는 당신을 바라보면 나도 당신을 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난주에 나는 팀장에게 혼난 후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다가 떠나간 애인이 문득 떠올라 우는 것으로 연재를 마쳤다. 팀장은 되도록 못생기고 지저분한 남자로 그려졌다. 나의 소소한 복수랄까? 내가 그린 만화인데도 울컥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나는 팀장에게 혼나고 야근을 한 날을 기억해내 그린 것이다. 경험이 배어든 만화만큼 좋은 건 없다. 당시 억울했던 게 생각나면서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는데 책상 위로 쓰윽 손이 들어왔다.


“이봐, 박 대리.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말이야! 업무 시간에 뭐 하는 짓이야?”


팀장이 휴대폰을 낚아챘다.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팀장이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며 한 회 연재분을 다 보고 말았다. 팀장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만화 속 팀장은 팀장 본인과 데칼코마니니까.


“아…… 그게요, 팀장니임~!”


나는 팀장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으려고 했지만 상대는 배가 나온 만큼 아귀힘도 셌다. 우리 둘은 엎치락뒤치락 실랑이를 벌였다. 부서 직원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핸드폰에 달려들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줄게. 근데 이게 뭐야?”


이렇게 커밍아웃을 하고 마는 것일까.

나는 웹툰작가 지망생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말았다.


“죄송해요, 팀장님.”


팀장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했다.


“보고서에 글씨만 쓰지 말고 그림으로 잘 표현해 봐. 사장님 눈에 확 들어오게.”


그날 이후로 보고서에 글씨를 쓰지 않아도 되었다. 내 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알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는 회사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나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나는 회사에서 도전을 하고 성공을 했다. 커밍아웃은 처음이 어렵지 하고 나면 속 시원한 일이다. 벽장보다야 밖이 낫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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