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2019 부천만화대상 <곱게 자란 자식> 역사의 밀물이 빠진 후
김산율 2020.07.03



<곱게 자란 자식> 역사의 밀물이 빠진 후


한국적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치밀성은 독보적

70년전 인물의 재현과 고유성으로 보아 리얼리즘 웹툰의 대표작

<곱게 자란 자식>은 만화로서 문학의 성취를 이루어냈다.


김산율(만화평론가)

 



할머니는 경찰을 순사라고 불렀다. ‘순사가 잡아간다.’말씀하셨고, 요즘 우리는‘어디서 순사질이야’라며 말한다. 순사는 사라졌지만 반백년이 흘러 전승되고 있다. 보는 것이 고역인 웹툰이 있다. 보기 싫은데 너무 절절해서 볼 수밖에 없는 만화가 있다. 보통‘만화적이다.’라는 표현은 사실보다 과장되거나 허황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만화에 담긴 지옥 같은 현실은 실제 잔혹함의 만분의 일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곱게자란자식/이무기>은 참담한 마음으로 경건하게 읽는 작품이다.





1940년대 일제 강점기 전라도 작은 부락 피난골이 있다. 주인공 간난이 아버지는 공출을 피하려다 조선인 박출세에게 맞아 죽고, 3명의 오빠들은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다. 집안의 빚으로 7살 막둥이가 남의 집 종으로 팔려갔다. 옆 집 순분언니는 버마의 일본군 성노예가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는 두려움에 혀를 깨물었다. 수많은 청년과 소녀의 청춘이 시들었고 그것을 지켜주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은 모두 멸문지화를 당한다. 김훈 작가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속에는 기쁨이 쟁여져있다”고 했지만 작품 속 시대 에 갇힌 주인공과 그의 형제들, 동무들은 철듦을 강제당한다. 





작품의 전반부는 일제의 폭압적 사회상, 중반부는 악독한 가담자들, 후반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했던 우리들을 묘사한다. 마을에 나으리로 통칭되는 일제의 폭정이 시작될 때면 검은 먹구름이 밀물처럼 몰려오고 그 구름에 갇히면 변을 당한다. 악행의 화신 무자비한 일본군, 조선인이지만 극악무도하고 잔악한 일제의 앞잡이들, 그 뒤에 줄을 서 가산을 수탈하고 동족을 팔아넘기고 사지로 내몰은 공범들의 해로움과 악함을 목도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꿋꿋이 버텨 광복을 맞이하고 625전쟁을 겪고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소녀들을 숨겨주다 죽임을 당한 도깨비 아제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한 박계춘 같은 사람들 덕분이다. 이들은 역사에 정의가 존재하며, 그 정의가 역사에 어떻게 새겨지는지 보여준다. 압제되고 비통한 분위기의 작품 안에서 박계춘이 일본군을 제압하는 호쾌한 활약상은 마치 용맹한 백두산 호랑이가 연상되어 독자들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작품 속 간난이가 겪는 고초에 분개하고 계춘의 생존을 응원하는 정서에는 현재의 사회상이 투영되기 때문이다. 피해 당사자에게 처음부터 잘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사고, 나는 시켜서 한 일이고 본심이 아니었다는 회피, 성공을 위해서 불의를 저질러도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천박함은 오늘에도 유효하게 작동한다. 작품의 댓글에는 지난 역사를 단죄하지 못 하고, 민족반역자들을 처벌하지 못한 울분이 가득하다.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 있는 것이다.”노벨 평화상 수상자 엘리 위젤의 말을 곱씹어볼만하다. 


<곱게자란자식>은 다루는 내용의 깊이와 넓이 면에서도 수작이지만 한국적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한 작화의 치밀성, 70년 전 흑백사진 속 인물을 재현한듯한 캐릭터의 고유성은 리얼리즘 웹툰의 대표작으로 칭할 만하다. 어느 평론가는 문학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시대를 먹는 위장이라고 했다.1) 예술에 우월은 없지만 만화 역시 글과 그림으로 묘사하는 표현법과 예술성을 고려하면 못지않은 역할과 영역을 가진다. <곱게자란자식>은 만화로서 문학의 성취를 이룸에 부족함이 없다.





밀물이 빠져나가면 물 속에 잠긴 침전물이 잔해인지 유물인지 구별이 가능해진다.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잔해는 주변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시급히 치우고 유물은 마땅한 대우로 귀하게 모시고 보존하는 것이다. 막둥이가 외아제 손에 이끌려 종살이 하러 갈 때 들은 말이 있다. “느그가 지발 잘 되아서 여 지랄 맞은 대물림을 끊어” 






1)그 시절 그 음악회 - 송현민(조선일보 20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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