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검은머리 미남에서 벗어난 로맨스 웹툰의 남주인공들
이모션D 2020.07.07



로맨스 웹툰의 남자 주인공, ‘로망’과 ‘욕망’의 화신(化神)들들


로맨스 장르 속 남자 주인공의 특징과 오해

<치즈 인더 트랩>, <우리사이느은>을 중심으로

 


이모션D

 


‘백마 탄 왕자님은 여자들의 로망이야.’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여기서의 '로망'은 프랑스어 'romanz'이자 영어로는 'romantic'으로, 중세에 유행하던 '로망스 문학'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로망스에는 멋진 기사(Knight)가 나오고, 모험과 사랑, 충성과 맹세, 연애담(戀愛談)이나 무용담(武勇談) 같은 멋들어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낭만적인 영웅의 시대를 그려내고 있다고나 할까요? 때문에 '로망스' 문학에는 보통 사람들보다 우월한 인물들의, 보통 현실보다 아름다운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로망스'와 그 이름도 비슷한 '로맨스' 장르 또한 무척이나 낭만적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했다가도 전셋집 대출금에 찌들어가는 '현실'은 '로맨틱'하지 않습니다. 설사 그런 현실에 맞닥뜨렸다 해도 한결같이 서로를 사랑하는 그런 '로망'을 담고 있는 게 바로 '로맨스'이지요. 로맨스는, 낭만적인 '이상형'을 담고 있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로맨스 만화의 '남자 주인공'은 소녀들의 '이상형', 그 자체였습니다. 여기서 잠깐, 사실 로맨스 만화의 '남자' 주인공을 꼭 '여자'만 좋아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게다가 하필 ‘소녀’라니, 여기에는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묘한(?)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여기서의 ‘소녀’라는 표현은 20세기의 감성적 표현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상형',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란 현실의 기준보다 훨씬 우월합니다. 상위 모방(high mimetic)적인 남성들이, 로맨스의 주인공이 됩니다. 잘생기고, 키 크고, 능력 있고, 사랑꾼이고… '이런 남자가 현실에 어딨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지나치게 멋집니다.

 

이를 두고 (여성들의) '비현실적인 망상'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로맨스'의 장르성을 이해하지 못한 무식한 소리입니다. 중세 로망스 문학 속의 주인공들 또한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멋졌습니다. 그것이 '로망스'의 장르적 관습(convention)이었죠. 영웅적인 주인공이 있어야 영웅적인 무용담은 재밌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로맨스 만화'의 주인공은 현실에 없어 보일 정도로 멋져야 합니다. 그래야 재밌거든요. 애초에 그런 재미를 담고 있는 장르가 '로맨스'입니다. '비현실적인 남성상'을 바라는 거라기보다는, 사람들의 '꿈'과 '로망'을 연애담에도 투영한 것입니다. 그러한 이상형/이상향에의 추구는 인류사와 문화사에 무수히 있어왔던 것이고요.

 

한국 로맨스 만화에도 ‘이상형’으로 삼고 싶은 남자 주인공들이 많았습니다. 어린 시절, 잔혹하면서도 매혹적인 마법의 세계로 저를 인도해 주었던 김영희의 <마스카>에는 ‘카이넨’과 ‘엘리후’가 있었죠. 마왕 카이넨은 퇴폐적으로 보일 만큼 고혹적인 미모를 지니고, 무심한 듯 시크하면서도 아사렐라에게 만큼은 한없이 약해지던 순정남, 그 자체였죠. 이런 카이넨의 마수(?)에서 아사렐라를 보살피려고 했던 대 마법사 엘리후는, 처음에는 다정하고 상냥한 미남으로 그려지지만, 점점 더 그녀를 향한 강렬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흑발 미남 vs 금발 미남, 알고 보니 순정남 vs 알고 보니 복흑남이었던 카이넨 vs 엘리후의 대비는 정말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 엘리후와 카이넨


 

카이넨이든 엘리후든, 둘 다 잘생기고, 능력 좋고, 사랑꾼이라는 점에서는 무척이나 ‘이상적’인 남성상입니다. 순정 만화의 주인공들은 다들 그러기 마련이죠. 그나마 좀 ‘흠’을 찾자면 성격적으로 까칠하다든가, 싸가지가 없다든가, 무심하다든가, 하는 것인데 그 또한 그저 내면의 상처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처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사랑에 빠집니다.

 

박소희의 <궁>에 나오는 ‘이신’ 또한 로맨스 만화의 남주인공으로서 제격(?)입니다. 잘생기고, 머리 좋으며, 심지어 신분이 ‘왕자’라는 점에서 ‘백마 탄 왕자’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대신 성격이 싸가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싸가지 없음의 이면에 있는 애정 결핍과 외로움이, ‘이신’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 싸가지 없음 때문에 오해도 생기지만, 그 오해의 골만큼 애절한 사랑의 깊이가 생기기도 하지요.

 

로맨스 만화의 남자 주인공은 이렇듯 미모와 능력에 있어서는 완벽에 가깝지만, 성격에 있어서는 ‘빈틈’을 보입니다. 이를 메워가는 과정이 ‘애정 관계’의 씨실과 날실이 되고요. 그렇다면 로맨스 ‘웹툰’의 남자 주인공은 어떨까요?

 


수상한 왕자님 : 웹툰의 복합장르 현상과 함께 나타난 미스테리 미남들

 

‘웹툰’의 시대가 왔다고 해서 ‘로망’까지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로맨스 웹툰의 남자 주인공들은 여전히 잘생기고, 여전히 능력 있습니다. 성격적으로 살~짝 서툴거나 꼬인 부분이 있는 ‘빈틈’의 매력도 여전합니다. 이 ‘빈틈’에 있어서 로맨스 웹툰의 한 획을 그은 남자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순끼의 <치즈 인더 트랩>에 나오는 ‘유정’입니다.

 


△ <치즈 인더 트랩> 유정


키 183cm, 반듯하게 잘생긴 얼굴에, 과 수석을 도맡을 정도로 머리도 좋아, 집안도 좋아… 이쯤 되면 성격이라도 뭔가 ‘빈틈’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인망도 높습니다. 사교성도 좋고, 사람들도 따르고, 주변에도 잘 베푸는, ‘선량’한 남자 주인공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유정 선배’는 ‘빈틈’도 없는 건가 싶지만…

 

△ <치즈 인더 트랩> 유정

 

‘유정’은 <치즈 인더 트랩>을 ‘로맨스’를 넘어 ‘로맨스릴러’로 거듭 나게 하는 장본인입니다. 유정의 ‘빈틈’은 드러내놓고 보이지가 않는 것이라서 더욱, 아찔하고, 치명적입니다. 선량하고 착실한 미소 너머 언뜻 언뜻 그림자가 내비칠 때마다, ‘이 선배가 정말 좋은 사람인가? 진심으로 좋아는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샘솟습니다. 그리고 이 의문은 홍설과 독자들을 알쏭달쏭한 상상의 나래로 몰아넣습니다.

 

싸가지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어떨 때 보면 소름 끼칠 정도로 싸가지가 없는 것 같기도 한 남주인공 유정의 입체적인 캐릭터는, <치즈 인더 트랩>을 입체적인 로맨스로 만들어 줍니다. ‘유정의 속내는 어떤 것일까?’하는 미스테리는 <치즈 인더 트랩> 전반을 떠받치면서, 로맨스에 추리 요소를 더합니다.

 

‘로맨스릴러’물인 <치즈 인더 트랩>처럼, 웹툰에서는 종종 다양한 장르가 합쳐지는 ‘복합장르’ 현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이는 웹툰이 그만큼 자유로운 지면과 색다른 시도들을 포용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웹의 지면 속에서, 기존 만화들의 문법을 소화하여, 그 이상으로 비틀고 승화해낸 웹툰 작가들의 눈부신 성취이기도 합니다. 독자들 또한 그런 색다른 시도에 기꺼이 환호하며, ‘유정’이 흑막인지 아닌지를 적극적으로 토론하듯, 남주인공들의 ‘빈틈’을 낱낱이 추리하고요.

 

왕자님은 왕자님인데, 뭔가 수색하고 추리하고 싶은 미스테리한 미남, ‘수상한 왕자님’ 유형은 다양하게 변주되며 나타납니다. 훤칠하니 멋지지만 이상할 정도로 말수가 적은 <걸어서 30분>의 ‘지구봉’이나, 잘생긴 동안에, 똑 부러지는 교수지만 자꾸 환각을 보는 <계룡선녀전>의 ‘정이현’처럼요.

 

수상한 왕자님들은 여전한 미모와 여전한 능력으로, 변치 않는 ‘로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그 ‘로망’을 향유하는 서사에 있어서, ‘빈틈’을 다른 장르에서 빌려오며, 보다 새로운 재미,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조신남&초식남 : 웹툰의 다양성이 발굴해 낸 신(新)남성상

 

왕자님을 꿈꾸는 로망은 여전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예 새로운 꿈을 꾸는 로맨스도 있습니다. 바야흐로 다정남의 시대가 왔습니다. 로맨스 만화 시절, 다정남들은 ‘서브 남주인공’의 자리에 머무르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었습니다. 나 없이도 잘 살 것 같은 다정남들보다는, 나 없으면 외로워 죽을 것 같은 까칠남들 쪽을 더 보살펴주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이제, 남자 주인공을 보살펴주기보다는, 남자 주인공에게 보살핌을 받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이연지의 <우리사이느은>에 나오는 ‘한우진’을 볼까요. 싹싹하고, 애교 많고, 여자 주인공인 ‘도가영’을 살뜰하게도 챙겨 줍니다. 가영이가 한 음식이 맛이 없어도 ‘내가 해야겠다’라고 하는 다정한 성품에, 남자들끼리의 음담패설이 오가는 자리에서도 ‘중, 고등학교 때 몇 번 여자 친구는 있었지만 어릴 때라 경험 없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하는 조신함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 <우리사이느은> 한우진

 

<우리사이느은>의 주인공 ‘한우진’의 머리색이 예전 서브 남주인공들이 즐겨 했던(?) 밝은 갈색 톤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우리사이느은>에서는 오히려 서브 남주인공 ‘최찬희’가 흑발 미남으로, 예전 메인 남주인공들의 미모를 연상시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남주인공들 사이에 ‘대조’는 변함없이 필요하지만, 누가 ‘메인’이 되고 누가 ‘서브’가 되는지에 대한 균형추가 달라졌다는 표식일 수도 있겠네요.

 

로맨스 웹툰에서는 이렇듯 기존 만화에서는 ‘주역’이 되기에는 ‘비주류’로 여겨졌던 ‘남자 주인공’들이 왕왕 나타납니다. 제이드의 <아가씨와 우렁총각>에 나오는 ‘문태수’는 아무리 봐도 ‘왕자님’은 아닌 듯 합니다. 키가 크고 나름대로 멋지긴 하지만, 직장을 그만둬서 백수인데다가 부동산 사기까지 당했습니다. 제목처럼 ‘우렁총각’이 되어 수하의 가정부로 고용되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길거리에 나앉았을 신세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여주인공 ‘수하’ 쪽이 대기업에 다니는 ‘능력녀’로, 살림실력이라는 ‘빈틈’만 빼면 여러모로 완벽해 보입니다.

 

지카의 <왜 하면 안돼>의 여주인공, ‘하비’ 또한 ‘돈이면 돈! 외모면 외모!’를 갖춘 상위 모방(high mimetic)적인 캐릭터로 그려지죠. 남주인공인 ‘율’도 잘생기고 멋지지만… 다시없을 조신남입니다. “선배, 저 혼전 순결 주의자에요.”라고 선언하는, 연하남이자 동정남인 율이의 은밀한 철벽과 매력이 독자들의 애를 태우게 만들지요.

 

이러한 남자 주인공 캐릭터들은 여성의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여성들은 휘둘리거나, 보살펴주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도권을 잡고 싶고, 보살핌을 받는 것을 ‘욕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로맨스 웹툰에 등장하는 신(新)남성상은, 변화한 시대 감성을 비추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백마 탄 왕자님의 종말 : 21세기 신(新) 로맨스

 

'백마 탄 왕자님은 여자들의 로망이야.'라는 말이 있었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은 멋지고,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백마를 양보해 주는 왕자님이나, 혹은 백마를 타지 않고 같은 눈높이를 맞추며 함께 걸어가는 왕자님도 ‘로망’이 되는 시대가 아닌가 싶네요. 심지어 꼭 왕자님일 필요도 없고 오히려 노예(?)를 자처하는 애인을 로망으로 삼는 독자들도 있는 듯합니다.

 

덧붙여, 주제가 ‘로맨스 웹툰의 남자 주인공’이었다 보니, 남성상이니, 여성의 욕망이니 하는 표현을 썼지만, 앞서 말했듯 이런 표현은 20세기적인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 BL에서는 ‘남자 주인공’을 욕망하는 상대역이 ‘남자’이기도 하고, GL에서는 아예 ‘남자 주인공’이 있지도 않습니다. GL이나 BL은 비주류 장르인데다가, 동성애를 향한 사회적 금기까지 더해져 이제까지 쉬쉬해오긴 했지만, 21세기가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냥 당당하게 ‘로맨스’라고 말해도 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웹툰 시대가 오면서 ‘이성애 로맨스’ 안에서의 ‘남자 주인공’도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로맨스’ 장르 자체도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다는 점을 뒤늦게나마 언급하며, 글을 마칩니다.



*참고자료

이현영, <콘셉트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북스, 2014

노드롭프라이, 임철규 역, <비평의 해부> 한길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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