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한국 땅에 좀비가 달린다
이재민 2020.09.07



좀비물은 멸망, 아포칼립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와 잘 맞는 소재 
  웹툰에선 보다 과감한 시도 多


우리에게 ‘좀비물’이라는 말이 일상으로 쓰이게 된 건 2010년대를 전후해서다. 2002년 좀비 영화의 판을 바꿔버린 “28일 후”가 개봉한다. 그 전까지 미지의 사술로 깨어나 조종당하는 (썩어가는) 인형이었던 좀비가 미지의 바이러스로 전염될 뿐 아니라 21세기 최초로 ‘달리는’ 좀비가 등장하면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좀비물’의 전형이 만들어졌다. 이후 좀비물은 멸망, 또는 멸망 이후를 다루는 아포칼립스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와 잘 맞는 소재가 됐다.

최근의 인기 때문에 좀비물이 오래도록 사랑받은 장르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일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던 장르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28일 후>를 비롯한 좀비물들이 유독 극장가에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는 지금도 회자되는 작품이지만 240만 관객 동원에 그쳤고, 2013년 개봉한 <월드워 Z>가 국내에서 개봉한 좀비영화 최초로 500만 관객을 넘겼다. 여기엔 미드 열풍을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은 <워킹 데드> 시리즈가 큰 역할을 했다. 이 바람을 타고 한국 개봉 좀비물 중에 가장 흥행한 작품은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으로, 무려 1,150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2016년 작품인 <부산행>은 한국에서 좀비물이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첫번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매체로서의 특징과 서브컬처적 면모를 동시에 갖춘 웹툰의 경우엔 보다 과감한 시도들이 많았다. 2009년 주동근의 <지금 우리학교는>, 2010년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2012년 모래인간의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2016년 선우훈의 <데미지 오버 타임>등 많은 작품들이 이미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워킹 데드>의 흥행으로 좀비물이 대중에게 어필하기 시작하면서 적지 않은 작품들이 인기를 모았다. 그리고, 특히 웹툰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좀비물이 선보이는 각축장이기도 하다.



좀비 웹툰의 본격적인 시작 - <지금 우리학교는>

주동근 작가의 <지금 우리학교는>은 두말할 것 없이 초기 네이버웹툰을 대표하는 좀비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상의 도시인 ‘효산시’를 배경으로 학교라는 공간에서 정체불명의 감염증 때문에 식인 좀비로 변해버린 친구들에게서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들을 조명해 높은 인기를 얻었다. 좀비물의 미덕인 극한 상황에서 펼쳐지는 극단적인 갈등, 거기서 드러나는 생존 욕구와 인간의 본성을 잘 그리고 있다.

처참하고 고어한 묘사와 그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좀비물이 가진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인 <지금 우리학교는>은 독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미지의 바이러스와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과 학교 밖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몰입도 높은 스토리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좀비물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전에 등장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이 확정되기도 했다.


좀비물의 진화 - <데드라이프>

좀비물에서 흔히 좀비는 투쟁의 대상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대화는 커녕 감정적인 소통조차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좀비는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를 넘으면 소탕하고 뿌리뽑아야 할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후렛샤 작가와 임진국 작가가 협업한 <데드라이프>는 한국의 가상의 학교인 마야고등학교와 주변을 배경으로 좀비vs인간의 대결구도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던 좀비에게 지능을 부여했다.

인간과 인간이었던 것의 대결구도에서 인간과 또다른 종으로서의 좀비가 등장하면서 전통적 좀비물에서 나아가 좀비와 인간의 대결구도가 흥미롭게 그려졌다. 독자들의 기대가 큰 만큼 아쉬움도 분명한 작품이지만, 좀비물이라는 장르에서 좀비를 재해석한 시선과 활용은 주목할 만하다.

좀비물의 최첨단 -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

그동안 좀비물은 생존이라는 키워드, 문명의 붕괴라는 배경 때문에 남성 캐릭터 위주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여성 캐릭터 역시 남성 캐릭터의 조력자 아니면 ‘여전사’로 그려지는 한계를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미역의효능 작가는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를 통해 이런 클리셰를 깨부순다. 자신에게 쌀쌀맞은 어머니와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유명 시인 아버지를 둔 주인공은 어머니의 일기장에서 자신에 대한 증오를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피난길에 올라 어느 산골 초가집에 들어서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품은 좀비물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지배하는 생존과 여성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여성이 서로를 구원한다는 서사까지 모두 피해간다. 좀비 때문에 피난을 온 주인공과 할머니, 그리고 암탉과 고양이가 전부인 세상에서, ‘생존자’ 들은 서로에 기대어 살아간다. 인간과 다르지 않은 좀비라는 말은, 좀비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말도 된다. 좀비라는 가상의 대상을 통해 현실의 공포를 공감하게 만드는 작가는 극한의 긴장감도, 화려한 액션도 없이 좀비물의 최첨단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부산행>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반도>의 개봉과 흥행으로 ‘한국형 좀비물’이 주목받고 있다. <부산행>과 <반도> 사이에는 김은희 작가의 <킹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소위 ‘K 패치’가 적용된 좀비물들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제 좀비물은 더 이상 일부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기에 어떤 장르 건 가장 빠르게 실험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웹툰은 좀비를 소재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이 우리를 놀라게 할지, 좀비라는 소재를 지켜보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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