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웹툰PD들이 바라보는 ‘잘나가는 웹툰’은
박꽃_무비스트 기자 2020.10.15
  1.  


                           

  


최근 3년간 국내에서 만들어진 웹툰은 연간 1,400편 내외다. 한 달에 100편 이상, 하루에 4편의 웹툰이 새롭게 독자와 만난 셈이다. 그러나 모든 웹툰 작가가 주간 단위로 업로드되는 대형 플랫폼의 정기 연재의 기회를 얻는 건 아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제작한 2020 상반기 웹툰 총 결산 카드뉴스에 따르면 네이버, 다음, 카카오페이지, 미스터블루, 레진 등 11개 웹툰 플랫폼에서 ‘1일 이상’의 웹툰을 연재한 작가는 3,139명에 달하지만, 연간 작품 규모를 고려하면 이 중 일부만이 정기 연재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필연적인 경쟁 속에서 우위를 점하는 소위 ‘잘나가는 웹툰’의 조건은 무엇일까. 웹툰 플랫폼 3사(다음웹툰,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 제작사(유주얼미디어) 관계자에게 직접 들어본다.




|  초반 1~3화 원고가 가장 중요하다   


                                                           

복수의 웹툰 플랫폼 관계자는 정식 연재작 선정 기준으로 초반 원고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카카오페이지 김진아 MD는 “원고 1편을 봤을 때 다음 편이 궁금한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새 작품을 연재할 때 프로모션을 통해 초반 분량을 무료로 제공하는데, 독자들이 그걸 보고 결제를 할지 말지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웹툰 한송이 편집장 역시 “연재를 제안할 때 받는 1~3화 원고가 매력적이라고 판단되면 그때 기획안을 통해 뒷이야기를 가늠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작품의 세계관, 캐릭터의 역할과 관계, 주요 사건 등 초반부터 작품의 개성이 확실하게 예고되는 작품을 선호하는 웹툰 소비자의 습성이 반영된 결과다. 최근 단행본으로 출간된 연상호 감독, 최규석 작가의 웹툰 <지옥>은 초반부터 ‘고지를 받으면 지옥에 간다’는 장르적 세계관을 명료하게 드러내면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지옥도를 드러냈다. 광진 작가의 <이태원 클라쓰> 역시 부당함에 소신껏 맞서는 고등학생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으로 “쭉쭉 치고 나가는” 작품의 성격이 흥행에 반영된 사례다. 한송이 편집장은 “독자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빠르게 재미를 느끼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예전에는 결론을 위해 앞부분의 전개 구간을 시간을 들여 쌓았다면, 이제는 초반부터 해결 구간을 세팅하면서 전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구성”이라고 트렌드를 짚었다.



| ‘n년’ 장기 연재 일상화, 이야기도 작가도 힘 있어야



                                                                    


초반 속도감으로 독자를 유인한 뒤에는 힘 있는 이야기 구성과 캐릭터의 개성을 잘 드러내는 에피소드 전개 등 작품만의 매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매주 70컷 내외의 분량을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연재하는 웹툰 특성상 ‘장기전’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무려 7년 동안 연재를 이어오고 있는 232 작가의 학교 로맨스물 <연애혁명>은 10대의 사랑에 특유의 유머 코드를 녹여 장기 흥행한 대표적인 사례다. 2016년 연재를 시작한 배혜수 작가의 <쌍갑포차>는 죽은 이들의 애틋한 사연에 정확한 시대 고증을 더해 ‘도비’라는 팬덤을 형성했고, 2017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정해진 연재 요일에 맞춰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작가의 근성도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작품만큼이나 작가도 ‘힘’이 있어야한다는 의미다. 네이버웹툰 ‘도전만화’, ‘베스트도전’ 시스템과 ‘지상최대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박현우 팀장은 “주간마감이라는 연재 형식으로 장기적인 연재가 가능한지 여부를 항상 중요시 한다”고 말했다.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공개하면서 독자의 관람 습관을 형성하는 웹툰 콘텐츠 특성상 정해진 마감일을 어기지 않는 집중력은 흥행 웹툰 반열에 오르기 위한 기본기다.



| 영상화는 나중 문제, 웹툰 자체의 재미가 먼저



                                                             


잘 만든 웹툰은 영화, 애니메이션, TV 드라마, 웹드라마 등 각종 영상 콘텐츠의 IP(지적재산권)로 각광받으면서 그 몸값을 한층 높이고 있다. <강철비> <시동> 등 상업영화,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시체스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 인기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이태원 클라쓰>, 현재 제작 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D.P> <지금 우리 학교는>, 최근 카카오TV를 통해 공개된 웹드라마 <아만자> <연애혁명>까지 웹툰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영상 콘텐츠의 원천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음웹툰은 “연재 중인 작품 약 1/4에 대해 영상 판권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다.


다만 복수의 관계자는 여전히 원작 ‘웹툰 그 자체의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IP 시장에서 웹툰이 거두는 성과가 혁혁하다고 하더라도 웹툰 정식 연재작을 선정할 때부터 영상화 등 2차 가공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웹툰 한송이 편집장은 “다른 유형의 콘텐츠 사업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매화 짧게 뱉어내는 웹툰 호흡과 맞지 않는 경우들이 많다. 오리지널이 재미있고 참신하면 자연스럽게 부가사업이 따라온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네이버웹툰 박현우 팀장 역시 “좋은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것이 작가님께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드릴 수 있다”고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다. 웹툰이 독자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으면 자연스럽게 2차 가공 시장의 플레이어의 눈에 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입장이다.



| 제작의 시스템화, 활발한 해외 진출 등 변화 속 기회 잡아야


                                                               


지난 수년 간 웹툰 산업이 질적, 양적으로 성장을 거듭하면서 웹툰 제작도 시스템화에 접어들었다. 네이버웹툰 박현우 팀장은 “예전에는 개인 웹툰 작가의 개성과 역량으로 연재가 진행된 작품들이 다수였는데 최근에는 글작가와 그림 작가, 각색과 배경 등 업무를 분업화한 스튜디오형 제작 시스템이 확대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 과정에서 신인작가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카카오페이지 김진아 MD는 “웹툰 에이전시 소속 PD가 이야기를 끊고 시작하는 부분을 잘 잡을 수 있도록 신인 작가를 도와준다. 엔딩 포인트가 아쉽다고 느껴질 경우 직접 의견을 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웹툰이 해외에 수출되고 그 재미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도 큰 변화다. 다음웹툰 한송이 편집장은 “예전에는 해외에 번역해서 내보내는 작업이 수익을 노리기보단 작품을 소개하는데 의미가 있었다면, 현재는 해외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사업적인 관점을 가지고 각 국가의 트렌드를 서칭하고 작품을 기획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9년 하반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 에 따르면 2019년 한국 웹툰의 글로벌 거래액은 처음으로 1조 원을 돌파했다. <블러드 링크> <남첩> 등 BL(Boys Love) 장르 작품을 중국, 태국 등에 수출한 웹툰 제작사 유주얼미디어 김유창 대표는 “현재 16~20세 웹툰 작가가 많지 않은데 (그들이 지금부터 도전하면) 10년 뒤에는 엄청난 시장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작의 시스템화, 활발한 해외 진출 등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는 작가가 ‘잘나가는 웹툰’의 기준을 바꿀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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