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글로벌리포트] 일본만화의 새로운 전성기에 드리운 그림자
일본만화의 '신 황금기'를 지탱하는 디지털 유통과 해적판의 범람
이현석 (주식회사 L7 대표) 2021.07.21

일본의 저명한 문예평론지 츠쿠루(創)는 2021년 5월호에서 “만화 시장의 변모”라는 타이틀의 기사를 싣는다. 일본의 만화산업이 전후 3번째의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귀멸의 칼날>의 기록적인 대히트, 그 뒤를 잇는 <주술회전>의 등장과 히트, <괴수 8호>, <스파이 패밀리>의 잇다른 히트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체인소 맨>, <불멸의 그대에게> 등의 작품도 등장해 작품성과 표현영역의 측면에서도 큰 진보를 일구어 냈다. 이런 일본만화 중흥기의 도래에는 디지털 유통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분석이다. 일본 출판과학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만화시장은 총 6,126억 엔(약 6조2,000억 원)에 달해 1978년 통계 작성 후 사상 최대를 기록한다. 하지만 이 중 만화잡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627억 엔(약 10.2%)에 불과했다. 반면 디지털 만화 시장은 전년 대비 31.9%나 증가한 3,420억 엔으로 출판만화(단행본+잡지) 매출을 웃돌았다. 일본 만화 시장의 집계는 디지털 유통에서 판매된 데이터도 단행본의 부수로 환산해서 집계한다. 즉, 어떤 작품이 몇 부 팔렸다고 보도된다면, 그것은 그 작품의 전자서적 데이터 판매 금액을 부수로 환산한 것이다. 엄청난 판매량이다. 하지만 이 황금기에 거대한 그림자가 하나 드리워져 있다. 그것은 심각한 저작권 침해상황. 즉 해적판 사이트의 범람이다. 

△ [해적판 근절을 호소하는 각 유명 출판사의 캐릭터들. 해적도 해적판을 반대한다(?)]

1.망가무라(漫画村) 문제의 대두


해적판 문제는 사실 역사가 깊고 광범위하게 존재해왔다. <드래곤 볼>의 경우 중국에서 해적판만 10억부가 넘는다는 소문이 존재해왔고, 한국에서의 해적판 출간문제나 스캔본 유통 문제는 이전부터 심각하게 거론되어온 문제이며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다만, 일본 내에서는 해적판을 ‘구매해’ 보는 사람이 드문 편이었고, 만화 상품도 광범위한 유통망을 통해 싼 가격에 일상 어디서나 구해볼 수 있으니 해적판 문제는 최소한 일본 내에서는 심각하게 거론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싼 값에 아주 좋은 인쇄 퀄리티로 만화를 사보는데 누가 처지는 인쇄와 제본의 책을 위험과 불편을 무릅쓰고 보겠는가. 하지만 일본에서 디지털 유통이 본격화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중에서도 호시노 로미가 운영하는 해적판 사이트가 부각되었다. 만화 마을 - 망가무라라는 이름의 사이트다.  2016년 등장한 이 사이트는 2017년 접속자 수가 1억6천만명을 돌파한다. 2018년에는 이 거대 해적사이트의 피해가 두드러지기 시작하여 일반 대중에게까지 그 심각성이 급속히 환기된다. 망가무라는 여기에 한술을 더 떠서 매월 500엔을 받는 구독 방식의 서비스를 내놓는 등 더욱 활개를 친다. 이런 피해에 놀란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결국 망가무라는 폐쇄의 길을 걷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빠른 대처가 사법 권력의 무제한적 활용이라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는 하지만, 출판사와 작가들의 요구로 빠르게 조치가 내려진 것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2019년, 일본 문화청은 이 해적 사이트 피해에 대해서 자세한 레포트와 대책을 다루는 자료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망가무라가 끼치고 있는 해악은 그야말로 거대하다. 2019년 시점에서 이미 3000억엔(3조)분의 출판물이 무단으로 유통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추정치이지만, 이 수치를 대입하면 저작권자인 만화가와 출판사가 가져갈 수입/매상의 20%가 이 사이트로 인해 줄어들었다는 것이며, 이는 업계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언급된다. 

△ [대규모 해적판 사이트가 정규 만화유통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그래프]

이 보고서에서 다시 망가무라가 전성기를 맞이하던 시기에는 디지털 만화 유통이 부진하고, 망가무라가 폐쇄되는 등의 조치가 내려지면 급반등, 망가무라 유사사이트가 등장하자 다시 하락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렇듯 불법유통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즉각적이며 지대했다. 


2.망가무라 운영자의 전격체포와 처벌 


2019년 망가무라가 폐쇄된 이후에도 일본 정부와 경찰은 지속적인 수사를 벌여, 해외로 도피한 운영자 호시노 로미를 필리핀 마닐라에서 체포하여 일본으로 압송하는데 성공한다. 

죄목은 저작권 법 위반(공중송신권침해), 조직범죄처벌법 위반(범죄수익은폐 등)  . 이후 형사재판을 통하여, 2021년 6월에 징역 3년의 유죄판결이 내려진다. 사법부가 내린 명령 중에는 벌금 1000만엔과 추징금 6200만엔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판결은 집행유예가 없는 실형 판결이 내려진 것으로, 저작권 침해로 기소된 사례 중에는 엄중한 처벌이다. 즉, 일본에서 이 해적판 문제를 어느정도 엄중하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이번 판결도 엄벌에 속하지만 앞으로 각 출판사나 저작권 주체인 작가의 민사소송이 줄을 이을 가능성도 있다. 저작권 관련 법에 해박한 지식을 보유한 후쿠이 켄사쿠 변호사는 변호사 닷 컴의 취재에서 이번 재판은 형사문제만 다루고 있고 민사소송은 별개의 문제라는 의견을 밝혔다. 다른 해적판 사이트에 얽힌 재판인 하루카 유메노 아토(はるか夢の址) 사건의 경우도 운영자가 각각 2,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이후, 민사소송이 이어졌다. 그 결과 고단샤의 8개 잡지분 만으로도 1억 6000만엔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판결이 내려진 판례가 이미 존재한다. 호시노 로미의 경우는 이 사건에서 드러난 피해규모를 훨씬 상회한다. 거의 대부분의 일본 주요출판사가 천문학적 피해를 입었으니 민사소송이 벌어질 경우 운영자인 호시노에게 천문학적 피해배상이 떨어질 가능성은 크다. 일본 최대의 출판사인 고단샤는 망가무라/호시노 로미에게 내려진 실형판결에 “당연한 결과”라고 코멘트하고, 민사소송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대책을 세워 해적판 박멸에 힘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3.영화 업계에도 들이닥치는 해적판 박멸의 바람


만화업계에만 해적판 박멸 움직임이 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미야기 현 경찰은 2021년 6월, 영화를 무단으로 편집한 압축본을 유튜브 등지에서 유통시켜 금전적 이익을 올린 남녀3명을 전격적으로 체포한다. 일본에서는 이 영화 편집본을 패스트 영화ファスト映画(빠른 영화)라고 부르며, 이 패스트 영화가 영화사가 올릴 수익에 큰 피해를 입힌다고 판단 한 것이다. 일본의 법률에는 이와같은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10년 이하의 징역형, 100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형사처벌에 대해서만 이러하고 앞서 소개한 망가무라 사건과 같이 억단위의 대규모 민사소송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튜브 등을 통해 ‘영화 10분 압축보기’, ‘애니메이션 1시간 압축’등의 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어 경종을 울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4.위법 사이트가 여전히 기승

 

△ [일본 위법 해적판 주요3사이트의 월간 합계 접속수](IT미디어 뉴스 : 2021년 3월 29일 기사에서 인용)

이러한 엄벌 경향에도 불구하고 해적 사이트들의 활동은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인용한 그래프를 보면, 망가무라가 폐쇄된 뒤에도 여전히 해적 사이트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크게 성장을 거듭하여 2021년 2월에는 1억 4550만 건의 접속자수를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년 2020년 1월에는 1,253만이었으니 1년만에 10배 넘게 성장했다. 이러한 성장세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간편하게 스마트 폰으로 만화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업계는 이러한 사이트 들의 준동에 엄격하게 대처할 예정이다. 사회학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와 같이 이런 사이트들을 근절하려면 출판사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대한 규모의 유통사이트 등이 등장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등장하는 중이다.  하지만 점차 글로벌화 되는 저작권 침해를 비롯한 디지털 범죄에 국제공조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다 넓은 디지털 세상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콘텐츠를 보호하기 위한 공조체계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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