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글로벌 웹툰 시대, 번역을 위한 제언
글로벌 웹툰 시대에 걸맞는 번역에 필요한 것
조익상 2021.08.19



글로벌 웹툰 시대, 번역을 위한 제언


글로벌 웹툰 시대와 번역

 바야흐로 한국의 웹툰(webtoon)이 세계적으로 읽히는 시대가 열렸다. 이러한 글로벌 웹툰 시대가 오기까지 번역이 큰 몫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무언 만화가 아닌 이상, 한국어로 만들어진 웹툰이 번역 없이 한국어를 모르는 독자에게 읽힐 가능성은 0에 가깝기 때문이다. 번역은 한 언어로 창작된 작품이 타언어권 독자를 만나기 위한 제1의 수단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번역이 잘 되었기 때문에 웹툰이 세계 각국에 진출했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 오류다. 작품에 따라, 플랫폼에 따라, 또 도착언어에 따라 번역의 질이나 현지화 방식도 제각각이라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쉬운 번역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힘과 팬덤의 조력에 힘입어 이만큼이나마 되었다고 진단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협약을 맺고 ‘한류 콘텐츠 외국어 번역 인력 양성 활성화’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고무적이면서도 못내 아쉬운 것은 그래서다. 한국의 웹툰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인력은 물론이거니와, 해당 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분명 필요하다. 우수한 번역 인력은 ‘좋은 번역’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답은 아니다. 번역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을 다지고 플랫폼 사업자의 방향성과 번역 철학을 만들어나가는 일이야말로 우수한 번역 인력 양성 이전의 선결 과제다.

실제로 한국문학번역원이 의뢰해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제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플랫폼 및 제작사 측과 번역가가 번역과 현지화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1) 내가 직접 살핀 번역 양상이나 번역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확인한 바도 마찬가지였다. 번역가 양성도 필요하겠지만, 플랫폼 및 제작사의 번역에 대한 태도와 자세, 전략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다. 사실 플랫폼 비즈니스에서의 작품 번역은 플랫폼이 의도하고 지향하는 방향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플랫폼의 지원 역량과 대우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 방향과 지원 및 대우에 문제가 있다면 외국어 번역 인력을 양성하는 것보다 선결되어야 할 것은 바로 번역 주체로서의 플랫폼 및 제작사의 변화다.

 



 세계화 시대의 번역 인프라 개선을 위한 제언

 

1. 번역가 및 번역 감수자를 크레딧에 올릴 것

 번역을 AI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한, 번역은 인간의 창작 행위이다. 크레딧은 이를 인정하고 표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표지다. 실력 있는 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해서도 번역가의 이름 혹은 필명 또는 번역팀명을 크레딧에 등재하는 일은 중요하다.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하는 일과 이름이 걸리지 않는 일은 수행자에게 지속성의 차원에서나 완성도의 차원에서나 상당한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이력서에 기재하고 경력을 증명하는 데도 번거로움이 따른다. 번역자 이름 명기는 현지에서 웹툰 관련 종사자를 확충하고 플랫폼의 지속성과 품격을 제고하는 데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북미의 타파스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플랫폼에서는 번역자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선 이것부터 바뀌어야 한다.

 

 

2. 전문 현지어 인력을 번역 및 현지화 감수자로 직접 고용할 것

 많은 플랫폼이 이미 번역 감수자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충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작품 수를 감당하기 위해 번역 감수자의 충원이 필요하다. 이는 현지인 웹툰PD를 채용하는 것으로도 부분적으로 달성될 수 있으나, 보다 나은 도착어 표현과 문화적 감수성을 위해서는 전문 번역 감수자를 충분히 두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번역 감수자와 번역가 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소통하며 번역의 질을 높이는 일은 작품을 위해서도 필요하며, 번역가의 역량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번역 감수자는 언어의 전문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출판 번역가들이 경제, 과학, 사회 등 주제영역별로 또한 소설, 시, 학술서, 실용서 등 장르별로 전문 영역이 있는 것처럼 번역 감수자 역시 해당 분야의 전문가일 것이 권장된다. 더불어 현지 문화를 고려한 현지화 전략에 대해서도 직접 고용된 전문 감수자라면 적확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비현지인 번역가에게 현지 문화와 인종 및 젠더 감수성 등에 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필요도 있는데, 이런 부분도 현지인 인력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현지화를 하더라도, 등장인물의 국적이나 이름을 변경하는 강한 현지화는 지양할 것

 일본 현지화 과정에서 주로 행해지는 국적과 이름의 변개는, 번역의 질적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문화적 형평성에서도 상당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강한 현지화는 사실상 번역보다는 번안에 가까운데 이는 문화 조우의 초기 단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일본 독자를 위한 강한 현지화 전략은 초반 전략으로는 유의미했을 수 있으나 지속적인 방향일 수는 없다. 일본에서는 한국 캐릭터를 일본인으로 만들면서 대만이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 제기 역시 현지에서 제기될 수 있다. 일본에서의 현지화 전략이 일본 독자와 문화를 존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을 문화다양성을 갖추지 못한 존재로 무시하기 때문일까 같은 다른 방향의 의문도 던져질 수 있다. 영화에서 자막에 비해 강한 현지화라 할 더빙에 대한 호오가 갈리듯, 일본 독자들 안에서도 원작에서는 한국인인 캐릭터가 일본인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한 호오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한국인의 입장에서도 <나혼자만 레벨업>의 사례에서처럼 한국인 주인공이 일본인이 되고 그 세계 속에서 아예 한국이란 나라가 사라져버리는 사태가 유쾌할 리 만무하다. 등장인물의 정체성을 현지화해 버리는 강한 현지화는 이제는 결별해야 할 초기 전략이다.2)

 

4. 팬 번역의 활용 가능성을 확장할 것

웹툰즈(webtoons.com)에서 베타버전으로 제공하고 있는 팬 번역은 여러모로 무척 영리한 현지화 전략이다. 특히 작품에 바로 식자가 반영되는 번역 툴의 편의성은 단연 돋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베타 서비스를 넘어서는 방향성이 정식 서비스에서 필요하다. 일례로 지금처럼 원본이 영어나 인도네시아어 등 한국어 웹툰의 첫 번역 판본이 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출발어를 한국어로 하는 방안을 모색하거나, 최소한 한국어 원본과 첫 번역본의 두 판본을 모두 경유하여 팬 번역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방식으로는 첫 번역본이 지닐 오류나 문화적 의역 등이 팬번역으로 그대로 이어지며 같은 문제를 초래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또한 한국어의 문화 전파를 위해서나 웹툰을 더 잘 번역할 인력을 양성하는 데도 영어를 거치는 것은 장기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도 어느 정도는 이루어지고 있겠지만, 양질의 팬 번역을 정식 번역으로 서비스하며 경제적으로 보상하는 제도 혹은 번역가 및 감수자로 정식 채용하는 것 역시 중요한 방향이다. 잘 시행된다면 번역 참여를 유도할 뿐만 아니라 해적판 사이트의 번역가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유인을 차단하는 역할 또한 할 수 있을 것이다.

 

 

5. 팬 베이스를 기초로 현지인 번역가를 양성하고 한국인-현지인 번역가 및 작품의 제재 관련 전문가의 팀업을 도모하고 지원할 것

한강의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가 맨부커상을 수상한 데는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섬세한 영어 번역이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도착어 표현은 현지인이 가장 수월하고 탁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현지인 사이에서도 모어를 구사하는 능력에서는 큰 차이가 있으며, 이는 언어 능력 뿐만 아니라 작품 및 만화 장르에 대한 이해와 애정에서도 그러하다. 영화 <기생충>의 북미 지역 기자회견 및 시상식에서 전담 통역을 맡았던 샤론 최는 영화 관련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며 위트 있고 교양 있는 영어를 구사하는 이중 언어 구사자(bilingual)였다. 통역 교육을 받아본 적도, 통역 경험도 일천한 샤론 최의 통역이 탁월했던 것은 그가 출발어와 도착어 양자와 주제 영역인 영화 모두에서 이미 탁월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웹툰 전문 번역가 양성도 이러한 사례들에서 착안해 우수한 역량을 지닌 현지인 및 이중 언어자를 번역가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모든 역량을 지닐 수 없다면, 출발어와 도착어에 대한 감각 및 작품 제재에 대한 전문성이 조화롭게 갖춰진 팀을 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6. 충분한 번역료와 번역 시간을 보장하고 번역가 직접 고용의 이점을 고려할 것

충분한 번역료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다. 번역가 채용 및 양성, 그리고 번역의 질을 제고하기 위한 앞선 제언들은 모두 충분한 번역료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달성되기 어렵다. 우수한 인력이 웹툰 번역에 뛰어들게 하는 유인이 경제적 보상만은 아니지만, 경제적 보상이 불충분하다면 아무리 의욕 넘치게 시작한 번역이라 해도 장기적으로 지속하기 어렵다. 모 웹툰 플랫폼의 한영 번역료가 회당 2만원 전후라는 소문에 기함한 적이 있다. 번역가가 웹툰 번역에 충분한 전문성을 지녔다면, 번역료는 한국 물가를 기준으로 할 때 회당 10만원을 표준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김혜림의 연구에서 인터뷰한 번역가와 플랫폼 및 제작사 실무자들은 번역비가 낮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토로하고 있었다. 실무진까지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 단가가 낮게 유지되는 이유를 플랫폼과 제작사가 파악하고 개선해야 할 것이다.

또 웹툰의 텍스트 양이 적다고 해서 번역에 걸리는 시간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맥락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말풍선이라는 제약 속에서 궁리하는 일이나, 현지인에게 생생하게 와닿는 효과음을 찾는 일 등만 떠올려 보아도 웹툰 번역에 드는 시간과 공력은 상당하다. 

또한 하청업체를 통한 외주보다는 직접 고용을 통해 전속 번역가(인하우스 번역가)를 고용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번역 업무와 더불어 후임 및 프리랜서 번역가에 대한 교육 및 지원을 전속 번역가의 업무 분장에 포함할 때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업무의 연속성과 효율적 재생산을 위해서는 직접 고용이 답이다.


7.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웹툰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가 알려질 것을 기대하고 도모할 것 

또한 현지 작가의 웹툰을 한국에 적극적으로 수입함으로써 세계 곳곳의 문화를 한국에 알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도모할 것

웹툰과 만화가 아무리 널리 알려졌다고 해도 일본 망가의 세계적 인지도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망가의 글로벌화는 <아키라>, <드래곤볼>, <슬램덩크>를 필두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읽히며 세계 곳곳에서 일본 문화와 망가 장르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기반이 형성되었다. 이후 <원피스>는 물론이고 일본색이 진하게 배어있는 <나루토>나 <귀멸의 칼날>까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세계의 만화 독자들이 그 이전 작품들을 통해 사무라이나 닌자 같은 일본 문화와 언어의 선지식을 함양한 상태였기에 더 손쉬웠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강한 현지화 전략을 지속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웹툰 작품을 문화적 교류의 장이 되게 하여, 세계 곳곳의 독자들이 한국적인 정서, 문화, 한국어 특유의 표현 등에 익숙해진다면 이후의 웹툰 작품이 안착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웹툰을 통해 한국, 한국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까지 도모되는 것은 덤이라기엔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타국의 웹툰을 통해 한국 독자들이 타국을 이해하는 기회까지 얻게 할 수 있다면 이는 한국 독자나 한국 문화의 열린 성숙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다. <틴맘>을 무리하게 한국 현지화해 연재하며 애먼 욕을 먹게 했던 것과 같은 아픈 예를 타산지석 삼아 이후의 웹툰 작품 수입과 번역에 만전을 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문화적 교류라는 면에서는 사실상 일방통행이었던 망가와는 달리 웹툰을 자타간 문화 교류의 장이 되게 한다면, 망가와는 차별화된 또다른 경지의 글로벌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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