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대한민국에서 만화를 즐긴다는 것
서찬휘 2004.08.01

대한민국 만화계, 만화 독자의 위치에 대한 관계 설정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대한민국 만화계는 (뭐가 됐든) 위기다. 오늘도 ‘위기’를 이야기하고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이러 저러한 걸 고쳐야 한다는 말잔치들은 어김없이 이런 저런 지면과 네트워크를 새까맣게 수놓는다. 언젠가 이현세 작가가 한탄하든 내뱉었던 “우리나라에 만화계란 것이 생긴 이후로 어렵지 않은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란 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나저러나 만화계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위기요 문제점투성이(일것이)다. 여기에 대고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라고 묻는다면, 답이라고 작가가 더 좋은 작품을 그리고~ 유통망을 개선하고~ 출판사가 종수경쟁을 줄이고~ 대여체제의 문제는 어쩌고~같은 ‘나올 대로 나와서 이젠 더 나와 봐야 입만 아픈 딴 세상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올 것이다. 사실 그것들이 해답이라면 해답이고, 고칠 부분도 맞긴 하나 그다지 현실감 있게 와 닿진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갖가지 ‘해답’이 당장 가리키고 있는 대상이 그걸 보고 있는 나나 당신이 아닌 탓이다.

물론 정책이 움직이고, 돈이 움직이고, 사업이 움직여야 한다면 그건 엄연히 독자 개개인의 영역을 넘는 일이다. 심지어 독자는 창작하는 입장도 편집하는 입장도 아니니 1차 이해당사자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건, 앞 말과 모순 되는 것처럼 들릴지는 모르나 그 어떠한 해답이라도 정작 수행을 위해선 그 바탕에 독자들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독자는 분명 만화가도 아니고 출판사를 운영하지도 않지만, 그 만화가 마지막에 닿을 ‘최종 목적지’다. 독자는 만화를 직접 만드는 입장이 아니지만 정작 독자가 없이는 만화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해답’의 종착점에 독자가 상정되어 있지 않다면 그 답은 죽은 답이요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이른바 ‘말과 논리로는 맞지만 현실에서는 우스개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인데, 이 웃지 못 할 착각에는 비단 정책이든 돈이든 사업이든 해야 하는 ‘개인의 영역을 뛰어 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독자마저도 쉽사리 빠져들곤 한다.

실제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1차 이해당사자들은 물론 독자들도 온갖 문제를 지적하고 꼬집어내는 데에는 무척이나 익숙하다. 때문에 말도 되고 현실성도 꽤 있어 보이는 갖가지 답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이들의 말들에서 만화 독자는 쏙 빠져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만화 독자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또 그들이 만화계에 어떠한 위치에 있고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전혀 생각이 없는 거다. 1차 이해당사자들이 독자를 ‘만화를 읽는 이들’로만 보고 있으니 독자에 대한 언급이 깊이 있게 나오질 못한 채 단지 몇 가지 지엽성 화두에만 머물러 있고, 정작 독자들 또한 자신들을 ‘만화를 읽는 이들’로만 여기니 자신들을 제외한 문제점엔 밝아도 정작 자기 자신이 논쟁거리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보질 못한다. 이렇게 종착점이 되는 존재를 쏙 빼놓은 논의가 과연 현실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시끄러운 것이고,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해답들이 쉽게 난무하는 것이다. 괴이한 노릇이지만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만한 사안은 논란거리가 될 리가 없다. ‘무언가 빠져있음으로 해서 해결되기 어려운’ 사안일수록, ‘빠져있는 문제’ 그 자체에 해당하거나 그에 연관된 이들이 되레 뭐가 문제고 뭐가 문제다라며 큰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정치 관련 논쟁이 그렇고 스포츠 관련 논쟁이 그렇고 사회 현안 관련 논쟁이 그렇듯, 영양가는 전혀 없지만 시끄럽기는 호떡집에 불이 나도 이 정도랴 싶은 게 사실. 만화판이라고 다를 바가 없고, 판이 좁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해 보이게 마련이다. 그야말로 남을 질책하되 책임지고 싶어 하지 않는 못난 대중의 속성 아닌가.

다시 언급하지만 ‘작가’도 ‘출판사’도 ‘시장’도,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할 최종 목적지는 명백히 ‘독자’다. 만화계가 문제점투성이고 뭔가를 고쳐야 한다면,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만화 독자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서도 지면과 시간을 할애해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저 골치 아픈 만화계의 문제덩이들을 해결하는 좀 더 ‘현실성 있게 와 닿는’ 방법이며, 이를 바탕으로 해야지만 온갖 ‘해답’들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만화 독자는 어떤 존재인 것이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시시콜콜하고 지겹고 재미없는 이야기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대한민국에서, 과연 만화 독자(讀者)란 무엇인가
먼저 만화 독자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에게 “과연 만화 독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보통 ‘만화를 읽는 사람’이라는 답이 제일 먼저 돌아오곤 한다. 독자(讀者)란 한자를 풀면 말 그대로 ‘읽는 사람’이니 뜻 자체에는 충실한 셈이겠지만, 단순히 ‘읽는 이들’을 뭉뚱그려 독자라 칭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구분법이 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만화를 ‘읽는다(혹은 본다)’에 쓰이는 방법이 상당히 독특한 현실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만큼 만화계가 간단한 구조였으면 참 편할 듯싶지만, 그렇지가 않아서 문제다. 이를테면 대여점을 다 때려 부순대서 만화책 판매가 급신장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유는 대여점이란 형태의 시장이 나타나기까지 걸린 시간이 근 50여년이요 그 긴 세월 동안 굳어져온 왜곡이 쉽사리 손을 댈 수 있는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 50여년의 세월 동안 만화판은 생산성 있는 방향으로 성장하기보다는 상당부분 우격다짐과 압력에 의해 이리저리 채이고 짓눌려왔으며, 개변의 시기를 맞이해서도 정방향을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편의에 편승한 탓에 내면의 실한 성장을 기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중구난방의 성향을 보여 왔다. 비단 만화판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시대 정황으로 말미암아 문화판 전반이 겪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문제점이긴 하지만, 깊이를 추구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묵어 오다 비교적 근래(10여년) 들어서 갑작스레 찾아온 급변하는 상황 속에 여러 가지 시도들이 쉴 새 없이 치받으며 자리싸움을 하는 형국이다. 가까이는 총판 유통, 조금 멀리 보자면 개변하는 시장 속에서 서로의 터전에 따라 철저하게 갈라지는 작가층, 이에 따르는 독자층의 상황, 체질에 맞지 않는 일본식 출판체제의 수입에 따른 한계 노출 등등이 어우러져 단순히 한 사안만을 봐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단계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쉽게 말해 지독하게 엉킨 실타래란 소리다.

그러니 이토록 혼재한 형태 속에서 선악이나 책임소재를 명백하게 따지려 드는 건 무의미한 일이고, 이를 바탕으로 원론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자면 만화를 읽는 방법은 어느 것이 정석이다라고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자의든 타의든 대한민국이란 토양에서 만화가 겪어온 온갖 상황은 비록 깊이가 얕다곤 하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다양한 특색을 만들어 냈고, 인터넷 등의 접목과 함께 만화의 형태마저도 순식간에 뒤집어놓는 경우마저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 앞에선 만화를 보는 방법이 반드시 하나로 정해져있지 않고, 또 정할 수도 없다. 이런 면으로만 보자면 어떤 방법으로든 만화를 읽는 사람 자체를 독자라고 부르는 것에는 무리가 없을지 모른다. 바로 이 시각이 ‘독자’란 낱말의 사전적 정의이자 보편화한 일반론이며, 보통 “사서 보는 사람만이 독자는 아니다”와 같은 말을 정당화시키는 데에 논거로 쓰이곤 한다. 일일만화를 대본소가 아닌 보통 독자가 돈 주고 사 봐야 할 이유는 없으며, 인터넷 만화의 대부분은 자가가 직접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다. 그러니 말 그대로 만화는 반드시 사서 봐야만 하는 건 아니다. 여기까진 맞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저러한 우리나라 만화판의 독특한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다양한 만큼 대상에 접근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란 점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을 많이들 놓치거나 혹은 일부러 간과하려 노력하는데, 너무도 다른 성격의 작은 판들이 엮여 있고 이를 폭 넓게 향유하고자 한다면 각 판의 성격에 맞는 형태의 향유가 무엇인지, 또 그 전에 판의 성격은 어떠한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 봐야만 한다. 여기에서 ‘만화 독자 = 만화를 읽는 사람’이라는 시각의 한계가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단순히 만화를 읽는 사람을 독자라고 할 수 있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 봐도 그 사람은 만화 독자인 셈이다. 그러나 같은 만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일일만화와 잡지 연재 후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만화, 또 단행본만으로 출간되는 전작 기획 출판물과 인터넷 만화는 제작 방식은 물론 입수 경로, 형태와 형식까지도 모두 제각기 다르다. 물론 역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선악의 문제가 아니지만(이를테면 일일만화는 공장제로 마구 찍어내니까 쓰레기고, 인터넷 만화는 데뷔와 게재가 쉬우니까 동인지 수준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잘못이다. 그 또한 만화의 한 형태로, 각각이 지닌 폐해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존재 자체에 대해 선악구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명백한 차이를 보이는 이들 만화를 ‘만화니까 마찬가지 아닌가’라고 단순화시키는 건 자칫 다양함을 인정하라면서 되레 향유하는 방법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 즉 자기 돈을 덜 쓰고 덜 귀찮은 방향으로 몰고 가는 걸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기 쉽다.


만화가 다양하고, 보는 방법도 다양하다면 다양한 경우의 수 만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각각에 맞게 향유를 해주는 것이 옳은데, 정작 향유할 때에는 한두 가지 방법- 돈을 안 쓰거나 아주 적게 쓰거나 -이 옳다고 말한다면 그게 과연 맞는 이야기일까. ‘만화’라는 이름이지만 서로가 다른 성격을 지닌 다양한 갈래가 있고, 때론 각 갈래가 성격에 맞지 않는 형태로 향유되기도 한다는 점을 인정치 아니하고 주머니 사정, 방식과 형태를 근거로 삼아 정당화를 시도하는 태도, 바로 이 점이 만화계의 각종 사안에서 독자들이 포함된 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이며, 특히나 독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우리나라 만화계’라는 독특한 판을 앞에 두고 그저 ‘만화를 읽는 사람’으로만 남아 있어선 곤란한 이유이기도 하다.


만화 독자란 만화를 읽는 사람, 맞다. 그러나 단순히 읽기만 한다는 단순화로 행위와 방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물론 오랜 기간의 왜곡으로 말미암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터이고 또 그만큼 정상적인 상식이나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역설이게도 바로 그 점이 독자가 판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향유하는 방법이 향유하고자 하는 한 갈래의 ‘만화’의 형태와 형식에 맞는지, 그 ‘만화’는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만화와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이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판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모든 논의의 진행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만다. 때문에 ‘보통 사람이 자세한 내용을 알 것까진 없지 않느냐’는 인도주의(?)에 가까운 발언은, 이 무섭도록 헝클어진 전장 위에서만큼은 분명 핑계다.


그러니 다시 정리하자. 이 땅에서의 만화 독자란, ‘만화의 다양한 갈래를 각각의 갈래에 맞는 방법을 고민하고 찾아 향유할 줄 알며, 이를 위해 엉켜 있는 판의 실체를 보고자 노력하는(그리고 고개 돌리지 않는) 이들이어야 한다. 대여점이든 총판이든, 대본소든 기획 단행본이든 모든 만화판의 갈래가 지닌 면면을 알고 틀어진 부분에 천착하지 않고자 하는 이들이며, 각자에 맞는 대가를 지불할 줄 아는 이들이어야 한다. 입장차에 따라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차는 있을지언정 잘못의 소지가 있거나 명백한 잘못인 것을 정당화시키려 들지 않는 이들이어야 한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만화 독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그런 점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참으로 피곤한 취미(만화 읽기)를 지니고 있는 셈이지만, 어쩌겠는가. 오류투성이의 판일수록 수용자는 그 오류를 납득해서는 아니 되는 법이다.
 
 
만화 독자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 주체성과 적극성이다
꽤 길게 이 땅에서의 만화 독자란 어떤 존재인가(혹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져 보았다. 이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뭔가를 외쳤을 때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과 ‘듣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서로 간에 ‘만화 독자’라는 존재에 대해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닿을 대상이 불분명한 주장’과 ‘실체가 불분명한 부류’라는 불균형 조합에서는 소통이 되지 않을뿐더러 생산성 있는 담론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누차 강조하지만 그 담론의 끝에 만화 독자가 없다면 모든 것은 현실성 없이 공중에 붕 뜬 것이나 마찬가지. 이런 연유로 만화계에서는 각종 문제 제기와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가장 먼저 그것들이 닿을 대상이 누가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부터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마치 시장을 개척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시장을 개척하듯-이라 해서 사람들이 얌전히 개척당하기를 기다리면 되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가? 사실상 지금까지의 논의 또한 ‘닿을 대상으로서의 독자’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논조만 무성했던 탓에 헛돌기만 했었음을 기억하자. 일방통행, 일방소통은 이렇듯 언제나 부작용을 낳을 따름이다. 이러한 경우 보통 컬럼 등에서라면 만화계의 1차 이해당사자들이 해야 할 ‘책무’로서 독자층을 만들어가고 소통할 수 있는 태도를 보이라는 지적을 우선할 터이고, 또 순서로 보자면 그것이 맞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까지의 논의들에서 정작 독자를 자처하는 수용자들의 태도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를 더욱 많이 만들어왔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른바 관조하는 자의 태도다. 문제점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발생하면 그 모든 원인으로 제시되는 내용은 온전히 1차 이해당사자들의 몫이었으며, 만화를 읽는 이들은 스스로 ‘독자이기 때문에’ 비판자의 위치에 설지언정 자기 자신의 몫일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돌려왔다. 그러나 만화 독자는 그 문제들에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만화판은 분명 오류투성이지만, 그 오류를 납득하고 눈을 감는 다면 판의 오류는 곧 자신의 오류가 되기 때문에 관조하는 시선을 품으면 곤란한 것이다.


물론 판의 오류를 고치는 건 1차 이해당사자들의 몫이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제 몫을 해내기보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하거나 상황 인식을 못하고 널브러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들의 태만을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까지 통틀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온전히 고쳐내기 위해서는 1차 이해당사자들이 할 일을 하기만 하면 될까? 그렇지가 않기 때문에 이야기가 이리도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대상이 분명해야 하고, 대상을 잡고 추진했을 때 어느 정도 실한 반응이 돌아올 수 있을 만큼 체제가 돌아가야 한다. 때문에 만화를 수용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그냥 ‘만화를 읽는 사람’이 아닌 ‘만화 독자’로서 서 있지 않으면 아무리 정책이 움직이고, 돈이 움직이고, 사업이 움직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시 묻건대, 만화 독자란 어떤 존재인가. 단순히 ‘만화를 읽는’ 것만으로 독자이기에는 너무도 견고한 오류로 점철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만화판에서, 이 오류들에 눈을 감지 않을 수 있는 사람, 오류가 왜 오류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누가 조장해서도 시켜서도 아닌 ‘주체성과 적극성을 갖고 생각과 고민을 꾸준히 이어가는 태도’이며,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며 만화와 만화판을 바라볼 때에야 비로소 선악 구분과 정의와 악 개념이 아닌 정방향에 가장 가까운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주체성과 적극성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태도의 차이 때문이다. 수요자가 관조자의 태도로 비판만 하고 있다면, 정작 최종 목적지로서의 대상(= 독자)은 없이 논리가와 평론가의 탈을 빌린 입만 남을 뿐이다. 현재 우리 만화판의 형국이 그러하다. 입을 가진 자는 있으되 독자는 없다. 그러니 어떠한 ‘해답’이 나와도 닿을 곳은 없고, 들을 사람도 없으며, 들어준다 해도 자기 소관으로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 이것은 비극이다.


‘만화 독자’들이 주체성과 적극성을 품고 형태를 갖추어 활동한 대표적인 예로 자검댕과 독자만화대상을 꼽을 수 있다. 자검댕은 청소년보호법과 대여체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독자들이 모여 나선 시민운동으로, 또 독자만화대상은 관과 언론들이 형식적으로 진행한 나머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내곤 했던 만화상들의 한계와 폐단을 딛는 결과물을 독자의 힘으로 직접 만들어보고자 했던 행사로 만화계에 작든 크든 한 획을 그었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절판되어 구할 수 없던 고병규 작가의 「출동! 먹통X」의 복간을 주도한 것 또한 한 사람의 열성 독자였다는 점은 만화계에서 독자가 보일 수 있는 역할이 어느 선까지인지를 확인시켜준 사례라 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참여한 독자들의 성향이나 생각이 통일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서로가 모두 다른 지향점을 품고 있지만, 단지 스스로 ‘만화 독자’라는 입장에서 활동을 펼친 것이고 그 결과 생산성 있는 방향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이들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오류 투성이 만화계에 쏟아지는 ‘해답’이 허공에 붕 뜨지 않고 실체화하여 현실에 작게나마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으로, 이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이전에 ‘해야 할 것’을 고민하고, 고민을 넘어 직접 움직인 결과라 하겠다. 말 그대로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에, ‘듣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들의 경우는 듣고 움직이기 이전에 스스로 먼저 말하고 움직였다는 점에서 더욱 고무될 일이지만)


그러나 모두가 이렇게 주최자의 입장에 서거나 일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해도 무언가 움직일 때 팔짱을 끼고 남 일 보듯이 하지 않고 한 표를 던지거나, 참여해서 책 한 권을 사거나, 아니 그 이전에 스캔 만화는 왜 해선 안 되는지, 대여점이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등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만 있다면 된다. 또한 작가 팬레터에 대놓고 “너무 좋아해서 10번 빌려봤어여, 다음 권 언제 나와여?”하고 묻는 몰상식을 저지르지 않고, 작품이나 작가 등 필요한 정보를 거저 얻어먹으려 들기보다 자신이 발품을 팔아 얻어내고 다시 이를 많은 이들과 공유하려는 생각을 지닐 수 있으면 된다. 요는 어떤 방식이 되었든, 그러한 생각과 고민들이 가능한 동기인 주체성과 적극성을 품고 있느냐 이고 그에 따라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방식, 나름대로의 방향으로 독자로서 만화와 만화계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지 반드시 거창한 무언가를 해야만 된다는 게 아닌 것이다.


독자란 존재의 힘은, 본래 그러한 작은 생각들과 작은 행동들이 모이고 모였을 때 멀리 보아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러니 멀찍이 떨어져 ‘좋은 결과물’을 받아먹을 생각을 하기 전에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해 움직이자.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식의 말잔치를 백년 하는 것보다도 확실한 ‘해답’은 결국 독자일 수 있는 수요자, 바로 당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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