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2000년의 만화행사 무슨일이 있었나?
정학진 2000.12.01

>>만화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만화라는 단어에 관련된 정보의 양은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을 칠 정도로 충만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생활 곳곳에 숨어있는 만화들을 만날 수 있다. 연중 범위를 달리하는 공모전과 크고작은 관련 행사들은 끊이지 않고 열리며, 제각각의 색깔마저 분명해 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만화의 세상이 열린 것인가?

불과 몇 년전만 해도 대학에 만화과가 생겼다는 뉴스에 많은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만화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사실에 기쁨과 설레임으로 많은 사람들은 행사장을 다녀갔다. TV에서 아침, 저녁 한정된 시간대에만 볼 수 있던 만화가 케이블 TV에 전문채널로 등장하더니, 이젠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과 관련자료를 구하는 건 정말로 쉬워졌다.

이젠 만화 페스티벌이나 애니메이션 영화제란 이름은 더 이상 낯설지가 않고, 말로만 듣던 해외의 유명한 작품들은 이젠 제한된 시간과 장소에서만 접할 수 있는 희귀한 자료가 아니라, 내가 원하면 구할 수 있을 만큼 대중화 되었다. 정보를 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정보만 취합하면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이젠 단순한 만화전시는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처음엔 이런행사도 있구나..... 하면서 전시장과 행사장을 둘러보던 호기심에 찬 시선들은 이젠 누구보다도 예리한 평가를 내리는 평론가들로 바뀌었다. 평범한 행사, 흔한 이벤트 위주의 깊이 없는 행사는 관람객들에게 외면을 받고,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색을 찾아가는 행사들



올 한해도 크고작은 많은 행사들이 열렸다. 부천만화축제는 한국 언더그라운드만화 10년전을 통해 한국 언더그라운드 만화를 되돌아보게 해 주었고, 프랑스 만화 특별전을 통해 제9의 예술로서 인정받고 있는 유럽만화의 진수를 양적, 질적으로 다양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지금까지의 전시나 행사들이 국내만화의 대중화와 인식전환에 힘써왔었다면, 이제는 눈을 돌려, 만화의 미래에 대해서 서로 대화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청강문화산업대에서 준비한 2000 되돌아보는 한국만화는 산재해 사라져 가는 귀중한 만화관련 자료들을 만화와 애니메이션학을 연구하고 공부하려는 이들의 참고자료로서 자료를 공유하려는 주최측의 취지와 그에 따르는 쉽지않은 노력을 보여준 소중한 결실이었다.



상금만 쥐어주고 이렇다할 후속조치가 없던 여타 공모전과의 뚜렷한 차별화를 선언한 동아LG 국제만화-애니메이션 공모전은 수상작의 전시 뿐 아니라 각 분야별 작품집의 제작과 관련지면에의 소개, 업체와의 연계를 통한 후속작품 개발기회의 제공등으로 공모전의 위상과 입지를 굳혀가고 있으며, 페스티벌 행사또한 만화원리 체험관과 신작게임 시연회 등으로 상업화를 최대한 배제한 행사로서의 변신과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제 더 이상은 우리들만의 만화가 아니다.

지난 8월 히로시마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는 세계각국에서 모여든 쟁쟁한 작품들 중에 이명하 감독의 존재가 데뷔상을 수상하였다. 본선부문에 아빠하고 나하고와 존재 두 작품이 올랐다는 것 만으로도 한국단편애니메이션의 상당한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데뷔상의 수상과 세계적인 이목의 집중은 이제 더 이상은 우리들만의 전유물로서의 만화가 아닌 세계인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만화로의 화려한 데뷔인 것이다.



근래의 정부주도 하에 그 숫자를 세기조차 벅찼던 많은 만화관련행사들과 전시들, 그리고 지원책들, 그리고 이젠 40여개가 넘는 만화관련 대학학과들과 교육기관, 동호회, 매니아들의 활발한 활동들은 일반인들에게 만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이해를 넓혔을 뿐 아니라, 만화라는 문화를 공유하는 모든이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행사들이 생겨나던 초기의 비슷비슷하고 두리뭉실한 모습들도 이제는 그 거품이 서서히 빠지면서 제각각의 성격과 색깔을 찾아가고 있으며, 해가 갈수록 그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짧은 순간에 얻어지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다. 거듭되는 관련행사와 차별화된 전시의 시도들이 만화 창작인들에게 창작과 새로운 시도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창작인들 또한 이러한 기회와 사회적으로 조성된 분위기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만들어 낸 다양한 창작활동의 결과인 것이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 낸 결과물들은 우리끼리만 보고 즐길때가 아니다. 만화창작인이라면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하는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의 경우를 보면, 30여년의 역사와 전통아래 본래의 색깔을 지키고 계승하려는 노력과 함께, 세계무대와의 대화나 의견교류의 시도로 스스로 고립되지 않고, 세계속의 페스티벌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국내만화관련행사들도 배워야 한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행사 자체의 분명한 색깔찾기의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남은 과제는 세계인이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앙굴렘이나 앙시, 히로시마의 페스티벌 장소에서 한국인 참관단을 보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은, 그만큼 우리들의 인식이나 안목이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말 할 수 있다. 이제,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우리나라에서 하는 많은 기획전시와 페스티벌 행사장에서도 세계의 만화인들을 만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길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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