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미국의 웹 만화
김유월 2003.08.01


만화가 현대적인 형식을 갖추고 대중적인 호응과 인식을 얻으며, 나름의 위치를 다지기 시작한지 100년이 넘었다. 오늘날에는 만화에 대해 대중문화라는 한정적인 시각을 넘어 좀더 본질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그 영역을 확장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여기에 인터넷 환경은 그간 인쇄 매체, 그중에서도 특히 책을 매체로 했던 물성物性를 넘어 만화가 하나의 시각 ‘언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좋은 기회로 보여 진다. 게다가 이전의 다양한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 전자라는 질적으로 동일한 기반을 통해 다양한 매체가 결합하기에 용이하게 된 환경은 만화를 멀티미디어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품게 만든다. 반면 이러한 생각은 기존의 출판매체에 기반을 둔 만화계에 하나의 걱정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는데, ‘책의 종말’과 더불어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며, 더 나아가 만화의 확장이 ‘만화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만화언어

인터넷 환경의 도래와 함께 그에 맞는 만화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어왔다.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새로운 만화언어에 대한 강박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만화를 인터넷 산업과 연계시키려는 쪽에서도 빠르게 나타났다. 1999년 엔웍스라는 국내의 온라인 컨텐츠 회사는 클럽와우(www.clubwow.com/)라는 만화 사이트를 오픈하였는데, 기존의 출판만화를 디지털화하면서 칸의 일부를 동영상화하고, 하이퍼텍스트가 되도록 만들었으며, 마우스의 움직임에 따라 음향효과를 첨가하였다. 엔웍스는 다른 벤처기업들처럼 단기간에 급성장했지만, 그렇게 한 해를 넘기고 무너져 현재는 처음에 시도하던 형식 대신 출판만화의 형식을 그대로 가진 채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거품이 빠지게 된 이유야 여러 가지이고 만화 외적인 부분이 더 크겠지만, 새로운 만화 형식의 다소 억지스러운 면 또한 회사가 오래 버티지 못하게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가능한 모든 것을 해보겠다는 것이 반드시 적합한 것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기존의 출판 만화 형식과 이질적인 요소들은 독자의 자발적인 만화읽기를 방해하여 흥미를 반감시키는 것이었다. 엔웍스의 시도는 너무 앞선 것이었고, 현재는 대부분의 인터넷 만화들은 기존의 출판만화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는다.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험적인 만화 그룹인 ‘아일란드Eiland(www.allow-to-infuse.com)’ 의 경우, 자신들의 만화를 인터넷 만화로 변환시켜 선보이고 있다. 게임과 동영상, 그리고 마우스의 버튼의 속도에 따른 칸의 속도변화, 음향효과, 배경음악 등이 첨가되어 나름의 매체에 대한 진지함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엔웍스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형식이 내용을 충분히 담기에 적합한지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의문이다.

 

-아일란드의 멤버인 스테판 반 딘더Stefan J.H. van Dinther의 온라인 만화갤러리 메인 화면(www.allow-to-infuse.com)



가장 화려한 만화연출을 보여주는 크리스 웨어의 경우, 어찌 보면 인터넷에 가장 어울릴 법 하지만, 실제로 그의 만화가 갖고 있는 매력이란 평면적인 화면에 놓였을 때 가능하다. 판테온 출판사 홈페이지(www.randomhouse.com/pantheon/graphicnovels/acme.html)에는 <지미 커리건Jimmy Corrigan, The Smartest Kid On Earth>의 겉표지 지미의 가계家系와 이민의 역사를 인터렉티브하게 표현해 놓았는데, 시각적인 풍부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만화적 재미는 반감하게 되었다. 크리스 웨어의 만화는 칸과 타이포그래피, 기호 등을 통해서 평면상에 배치한 것인데, 칸을 하나씩 떼어내어 보여주는 것은 그러한 연출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전체가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멀티미어어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만화를 하이퍼텍스트로서 조직하고, 나아가 하이퍼미디어(hypertext+multimedia)로 만드는 것은 만화언어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지만 반대로 하이퍼텍스트가 지니는 성격 즉 비선형적이며, 비순차적인 이야기의 진행은 오히려 서사를 무질서하고 체계적이지 않게 만들며 결국 만화 읽기를 방해한다. 끝없는 링크를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전혀 낯선 길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만화문화

현재 인터넷 만화가 가장 의미 있게 보여 지는 부분은 문화적인 측면에서이다. 인터넷은 풍부한 만화관련 데이터베이스를 보관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전지구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며, 창작자에게는 전에 없는 자유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익명성은 현실세계 속의 사회적 조건들과 환경적 조건들을 뛰어넘게 하며, 그동안 시스템의 제약에 갇혀있던 다양한 하위문화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만화에 있어서도 누구나 만화를 올리고 그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작가적 능력만이 아니라 시스템을 통과해야만 했다. 문하생 구조를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공모전이나 교육과정이나 인간관계, 출판구조 등을 통한 시스템을 거쳐야 하는 것이었고, 그러면서 기존의 양식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러한 중간 과정 없이도 자신의 개인적인 감성과 스타일이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평등한 공간에서 평가받게 된 것이다.

기존의 출판만화시장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던 언더그라운드 만화집단들에게 인터넷은 새로운 아지트가 되었다. <만화실험 봄>의 신일섭과 강성수는 각각 코믹스(comix.co.krakzine.com)을 개설하였고, 파마헤드(pamahead.com)나 바카스(baca.co.kr)와 같이 작가주의를 지향하는 만화 집단들도 보금자리를 꾸미고 있으며, 아카ACA(www.aca2000.com/)와 같이 아마추어 만화 동호회도 누구나 마우스만 움직이면 손쉽게 자신들의 만화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런 창작집단에 속해있지 않았던 숨어있던 창작자들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는데, 최초의 이슈는 1996년 시작된 조경규의 <피바다 공작실>(현재 pibada2.com)이다. <피바다 공작실>은 당시로서는 대중 앞에 보여 지기 힘들던 하드고어 만화들을 선보이면서 주목을 끌었다. 초기에 몇 차례 강제적으로 폐쇄되기도 했지만, 얼마 전에는 국내 최대의 포털사이트에 다시 소개될 만큼 그 사이 우리 사회의 문화에 대한 시각이 많이 변화하게 되었다. ‘엽기 고교생일기’인 <삼류만화패밀리>의 경우 낙서수준의 만화를 일단 인터넷에서 올려놓고 형식을 갖추어보게 되었을 때 그들의 작품은 단순히 엽기 이상의 문화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조경규가 운영하는 피바다 공작실 만화페이지 시작화면
(www.pibada2.com/first.htm)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감성과 형식의 만화들이 인터넷에서 선보이며 대중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고, 주류출판시장에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스노우 캣(
www.snowcat.co.kr/)을 시발점으로 마린블루스(www.marineblues.net/), 강풀닷컴(www.kangfull.com/), 김풍넷(www.kimpoong.net/), <파페포포 메모리즈 cafe.daum.net/papepopo> 같은 만화들이 인터넷에서 서점 매대로 위치를 바꾸었다. 특히 <파페포포 메모리즈>의 경우처럼 이제는 출판을 염두해 두고, 마케팅 차원에서 인터넷에서 먼저 선을 보이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

인터넷 만화의 출판은 판형과 디자인 등 출판만화의 형식을 풍부하게 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만화들이 대체로 가볍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주들로 이루어진 인터넷의 속성과 무거운 일상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를 원하는 대중의 심리, 매일매일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일일만화의 성격과 연관해 서사성이 풍부한 만화들은 긴 호흡을 요구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기 때문인데, 기존의 장편만화가 갖고 있는 풍부한 서사를 상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다.

데이터베이스와 교류의 장

인터넷은 만화에 있어서 박물관, 인명록, 그리고 직접적인 교류 등 책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는 방에 앉아서도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만화 문화권의 큰 흐름도 읽어낼 수 있게 되었고, 오늘의 이슈들까지 공유할 수 있다. 무한한 링크를 좇아가는 과정에서 작품의 내용과 경향, 그리고 스타일과 전체적인 모양까지 조망하게 되는데, 이것은 단순히 만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장르의 시각 이미지들을 통해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다.

벅스파우더 내의 닥스훈트 갤러리(bugpowder.com/andy/)는 인터넷 만화 박물관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중세 이후의 만화의 역사를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는 만화교육의 기능을 하며, 초창기 만화들의 자료를 풍부히 보여주고 있다. 람비에크(lambiek.net)의 경우는 전세계의 만화인명록을 만들어 놓고 있으며, 이번 앙굴렘 국제 만화페스티벌 이후 자료를 통해 한국만화가들의 이름도 다수 오르게 되었다.

 

-<윈처스터 성경>의 만화(b.c.1160~1180,bugpowder.com/andy/)-다윗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람비에크 홈페이지 메인 화면(www.lambiek.net/)



코믹스 저널The Comics Journal(tcj.coma)은 부분적이지만 매호에 게재된 글들을 싣고 있고, 만화에 관한 각 주제별 게시판을 개설하여,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얼마 전 <코믹스 저널>을 출판하는 북미의 대표적인 대안만화 출판사인 판타그래픽스(fantagraphics.com)가 파산 위기에 놓였었는데 이메일과 홈페이지를 통해 발빠른 구조요청을 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외에 만화비평 웹사이트와 게시판 등은 만화에 대한 현재의 정보들을 자세히 담아내며 만화에 대한 논의를 확장시키고 있는데, 이러한 기반에서 이루어지는 교류는 인터넷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만화게시판 talk about comics(www.lambiek.net/kwon-yoon-joo.htm)



인터넷은 만화산업에 있어서도 새로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만화시장의 지속적인 침체는 인터넷을 통한 판매시장의 확대와 인터넷 내의 만화 서비스를 통학 수익창출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초창기 회원확보를 위해 무료로 제공되던 포털사이트들의 만화들도 대부분 유료로 전환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여기에 창작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기존의 만화를 스캔해서 올리는 것인데 경제적인 가치를 우선시하는 이러한 태도는 질의 저하를 초래하고, 대중매체로서 만화가 갖고 있던 약점을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다.

출판만화에 대한 새로운 집중

인터넷은 완전히 새롭고 독립적인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생활공간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인터넷이 완전히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이 될 수 없는 것은 우리 현실의 문제가 고스란히 투영되기 때문이다. 수평적인 관계의 기반이 되는 익명성은 무책임한 논쟁과 비방 등으로 변질되고, 자본의 힘은 새로움의 추구보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통해 대중적인 속성의 가장 유치한 부분과 야합한다.

인간은 물질적 기반 속에서 생활하는데 인터넷이 완전히 새로운 현실로서 우리의 삶을 대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이 갖고 있는 물질성과 경험의 풍부함에 비해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한정적이다. 전자매체가 만화를 확장시킬 수는 있지만, 인쇄매체의 기능성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인터넷 만화를 현실 공간에서 사람들이 다시 만화를 구입하는 이유는 뭘까. 현실의 아우라는 인터넷의 가벼움을 넘어선다.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고 그것의 물질성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오히려 현재 상황에서 인터넷 만화와 더불어 부각되어야 하는 것은 기존의 출판매체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진의 발명으로 회화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TV의 발명에 영화는 더욱 질적인 양적인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다. 기존의 출판만화는 인터넷의 자유로운 창작기반을 통해 책의 가능성을 넓힐 수 있고, 인터넷 만화들은 출판만화를 통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며···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우리 생활 속에 들어 온지도 10년 가까이 되어간다. 새로운 세상이 올 것 같았던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해 본다면, 어쩐지 지금의 현실은 조금 재미없다는 느낌이다. 반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인터넷이 형성한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은 대단해서 온라인에서 형성되는 다양한 목소리는 여론을 선도하며 새로운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간 새로운 산업을 요구하던 한국의 경제 상황은 인터넷과 관련된 새로운 기술에 전폭적인 투자를 쏟아 붓도록 만들었는데, 이는 한창 침체를 거듭하던 만화시장에도 새로운 가능성으로 비춰졌다. 앞서 말한 대로 만화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실제로 인터넷 만화가 애초의 기대만큼의 성과를 만들어내었는지 그리고 새로운 만화문화와 언어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인터넷을 통한 형식적 변화 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의 충실함이라고 본다. 만화란 언어이고, 언어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이다.

인터넷 환경 속에서 태어나 인터넷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일 다음 세대의 만화를 상상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만화가 아닐지도 모른다.(고전시기의 미술가가 현대 미술을 본다면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변화란 생각보다 더디 오는 것이고, 그리고 더디 온다고 생각할 때쯤에는 벌써 다음에 올 변화를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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