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반도에 살어리랏다_이용선 감독 인터뷰
나호원 2018.01.25

보기 드문 장편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다. ‘독립 장편’이라고 불러도, ‘(초)저예산 장편’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그저 그러한 수식어가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을 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5년, 30분짜리 <화장실 콩쿨>을 선보이며, 그 해 인디애니페스트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던 이용선 감독이 <반도에 살어리랏다>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선보인다. 애니메이션이 어떠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 그 즐거움이 어떻게 우리 삶의 고단함을 ‘씹어 먹을 수’ 있는지를 새삼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이제껏 장편 애니메이션은 고난이도의 서커스였거나, 나의 삶과는 무관한 판타지 쇼로서 향유되었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있는 척하지도 않지만, 가만 듣다보면 어느새 빨려들게 되는 매력의 블랙홀, 그런 작품이 등장한 것이다. 경쾌하고도 유쾌한 발걸음으로 불반도 헬조선의 모습을 감상할 기회가 온 것이다.



Q.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부터를 포함해서, 기획, 제작 등 전체 제작 기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A. 대략 잡아서 전체 2년 정도 걸렸습니다. 프리프로덕션에 1년 정도 걸렸는데, 그 와중에 다른 일을 하면서 진행하기도 했고, 프로덕션과 편집 과정에 1년이 걸렸습니다.

Q. <화장실 콩쿨> (2015) 직후부터 시작한 건가요?
A. 네, 그 작품을 마무리 하자마자 진행했다고 할 수 있어요.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 (2013) 이후에 언젠가는 ‘나도 장편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감이 오긴 했지만, 어떤 식의 장편을 할지는 모호했지요. 특히 관객들이 제 작품을 재밌어 할지 자신이 서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화장실 콩쿨>을 완성해 보니, 장편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겠더라구요.

Q. 학생 때 만든 작품들과 <화장실 콩쿨>,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상당히 다르더군요. 전작들이 순정의 감수성, 섬세한 감정선을 따르는 느린 전개,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인물 표정, 풍경 (빛)의 강조 같은 특징을 갖는다면, 이후의 작품은 명료함, 사건 중심의 스토리 전개, 속도감이 돋보입니다. 전환의 계기가 있나요?
A. 그 사이에 로토스코핑 기법을 이용한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라는 30분짜리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 이후에 <화장실 콩쿨> 식의 시리즈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여러 가지를 모색하고 시도해 봤습니다. 만화에 어울리는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비주얼적 감수성을 살려보면 어떨까 등등. <거대한 태양이 다가온다>는 보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 반면, 대학 3학년 때 만든 (2010)은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그 차이가 뭘까 생각해 봤어요. 나름대로의 유머러스함, 말하자면 담담한 유머가 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다룰 수 있는 ‘유머’에 대해서도 좀더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Q. <화장실 콩쿨> 때만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아재’라는 단어, ‘아재’라는 존재가 부각되지는 않았습니다. ‘기러기’라는 상황이라던가, ‘꼰대’라는 기성세대에 대한 묘사 정도만 있었지요. 어쨌든 <화장실 콩쿨>과 <반도에 살어리랏다>에서 ‘아재’는 조롱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틈새에 끼인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동정심을 느끼게 하지도 않지만, 애정과 이해가 깔려있기도 하고요. 말하자면 스스로의 모순을 담고 있는 존재 같아요. 감독님에게 ‘아재’는 어떤 존재인가요?
A. <화장실 콩쿨> 때문에 ‘아재’라는 말이 뜨지는 않았겠죠. 제가 20대 때에는 어른들이 왜 저런 고민을 하나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아재’라는 대상을 통해 제가 편하게 할 수 있는 얘기가 많더군요. 20대가 겪는 사랑, 30대가 추구하는 성취, 40대가 경험하는 실패와 책임 등등, 이런 다양한 상황을 ‘아재’에 대입하면 얘기가 쉽게 풀리는 것 같아요.

Q. 아재와 관련된 설정이나 에피소드들은 꽤 꼼꼼한 취재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A. 취재를 하기는 했지만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힌트를 얻었어요. 가령 교수님들, 하하! 그런데 취재보다는 구조적으로 나오는 게 많은 편이었지요. 상황에 따른 캐릭터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특정한 전문성이 필요할 때는 취재가 필요했습니다.

Q. ‘아재’는 결국 한국 사회의 민낯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일상에서 겪는 삶의 모순, 팍팍함, 헬조선의 풍경, 지지고 볶으면서도 꾸려가는 가족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들은 뭔가 희망을 제시하거나, 적어도 유쾌하고자 합니다. 감독님 본인의 세계관인가요, 아니면 작품과 관걕을 위한 일종의 제스처인가요?
A. 제 개인적인 태도는 더 냉소적입니다. 그런데 엔딩은 타협점을 찾아야 하지요. 제 시선보다는 더 재밌거나 더 아름다운 것을 향해서요. <반도에 살어리랏다>에서도 대안적인 엔딩을 찾아보려 했지만 나오지 않더군요. ‘주인공 준구가 어떻게 살아야 가장 어려운 상황일까?’가 엔딩의 포인트였는데, 명확하게 이혼, 별거 등등을 드러내 보더라도 만족스럽지는 않았어요. 결국 제 감정에 부합하지는 않지만, 작품 전체의 균형에 맞는 수준에서 끝맺음을 했습니다.

Q. 해외 영화제에서도 몇 차례 상영을 했는데, 그곳의 반응은 어땠나요?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전달되는 식이었나요? 아니면 그곳의 삶도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여서 공감을 이끌어냈나요?
A. 나라마다 반응이 달라서 재밌었어요. 프랑스에서는 좀더 진지하게 반응하는 편이었어요. 아마도 자기네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봤나봐요. 반면 오타와에서는 아주 유쾌하게 보더라구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때의 반응보다 훨씬 더 많은 웃음이 나왔어요.


Q. <화장실 콩쿨>은 29분 59초임에도 불구하고 장편의 포만감을 안겨주었고,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장편임에도 중단편의 경쾌항을 잃지 않습니다. 스테리텔링과 작품 분량 사이에 뭔가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아요.
A. 아무래도 장편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다보면 ‘지루함’을 어떻게 뺄까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편집점을 찾게 되죠. 당시에 인상적으로 봤던 영화가 <위플래시>였는데, 거기서 도움을 받았죠. 설명을 줄이면서도 충분히 전달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식인데, 관객에게는 일종의 모험적인 시도인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리드미컬한 편집을 찾아야 했죠.

Q. 스토리텔링의 호흡과 관련하자면, 이용선 감독님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집중해서 달릴 줄 안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서 모든 인물들을 부비트랩처럼 배치해서 연쇄반응을 이끌어내야 하죠.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시한폭탄 같은 존재들인 거고요. 연쇄반응을 위한 사건 전개를 미리 짜놓은 다음에 인물을 설정해서 집어 넣는 식인가요, 아니면 인물들을 먼저 설정해놓고 그들 사이에서 연쇄관계를 뽑아내는가요? 어떤 접근법인가에 따라 등장인물의 수가 달라지니까요.
A. 사건부터 만들지는 않습니다. 주변의 사례를 보더라도 그렇게 해서 잘되는 경우가 없더라구요. 예전에 <심슨 가족>과 <더 오피스>의 작가였던 대니얼 전의 특강을 접한 적이 있는데, ‘작품의 전체적인 룰이 있되, 그 판을 일단 벌이면 그 안에서 캐릭터가 수습된다’라는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반도에 살어리랏다>에서도 일단 클라이막스를 향해서 뛰어가다 보면 결국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떠오르더라구요.

Q. <화장실 콩쿨>과 마찬가지로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스토리의 성격이 일반적인 장편 애니메이션 문법을 따른다기 보다는, 시트콤이나 슬랩스틱이 가미된 블랙코미디의 문법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A. 제가 시트콤을 아주 좋아합니다. <똑바로 살아라> 같은 한국 시트콤이나 <더 오피스> 같은 작품, 코메디언 리키 저베이스의 작업들을 특히 좋아해요. 영국식 블랙코미디에 끌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현실 장르 드라마도 좋아하죠. 그리고 <소프라노스>와 <왕좌의 게임> 같은 미드도 열심히 봤고요. 그런 다양한 장르에서 궁극적으로 ‘각각이 지닌 재미의 이유’를 찾는 식이죠.

Q. <화장실 콩쿨>과 <반도에 살어리랏다>에서 인물들은 절대악과 절대선의 대립 대신, 치사함과 비굴함의 상대적 비율 (이를 테면 더 나쁜 놈과 덜 치사한 인간)로 설정된 것처럼 보입니다.
A. 제게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화장실 콩쿨>의 본부장이예요. 거의 절대악에 가깝죠. 그런 인물이 <반도에 살어리랏다>에서는 노교수에 해당할 텐데, 캐릭터의 매력으로 따지면 아무래도 약하더라구요. <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아무래도 사회구조적 결함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악당의 끝판왕이라는 식의 설정은 억지스러워서 접근을 달리했습니다.


Q. 주인공 준구의 춤이 인상적입니다. 그냥 춤추는 장면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 감독의 손도 등장하면서 꽤나 실험적인 시도를 보여줍니다.
A. 작품이 주인공의 감정으로만 이어져 완결되면 분명히 뭔가 결핍되어 보입니다. ‘뭐가 모자른 거지?’를 생각하다 보면 예전 작업들에서 했던 ‘감성’을 채워넣어야 했던 점들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비디오 아트를 하는 동생과도 많이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다가 무용가였던 피나 바우쉬를 다룬 <피나>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어요. 작은 연출에도 다이나믹함이 보이는 작품이었죠. 그래서 제일 심플하면서도 역동적으로 감성을 전달하는 설정을 ‘준구의 춤’에 담게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 제목과 아이디어, 안무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Q. 준구가 춤을 추다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장면이 작품의 절반 지점이더군요. 장편 호흡에서 일종의 전환점으로 박아 놓은 길잡이 같았습니다.
A. 네, 전체의 1/2에 해당하는 곳인데, 걱정에 가까운 느슨한 지점이었어요. 이후에 준구가 달리는 장면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고민이 컸는데, 준구의 춤 덕분에 호흡 조절이 가능해지더라구요.

Q. ‘픽시’라는 자전거 설정도 기발했습니다. 브레이크 없이 발로 멈춰야 하는 자전거는 속도감을 중시하는 영화에서 가장 아날로그적인 설정이더군요. 그런데 정작 아재인 준구는 픽시가 뭔지 못 알아 듣고요. 이 작품의 중심 아이러니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A. 처음에는 그 장면에 자동차를 등장시키려고 했어요. 속도가 중요하니까요. 그런데 그러면 작품 성격에 어울리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오토바이로 바꾸려고 했다가, 결국 자전거로 설정을 했어요. 중요한 건 화려한 액션 연출보다는 인과관계니까요. ‘픽시’ 자전거 설정에는 조금 고민을 했어요. 나만 ‘픽시’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일반 관객에게 브레이크가 없는 ‘픽시’ 자전거가 친숙할까 하고요. 주변 사람들에게 확인해 보기도 했는데, 마침 뉴스로 ‘픽시’를 다루더라구요. 그래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Q. <반도에 살어리랏다>의 가장 큰 질문은 직장과 가족, 그리고 행복한 삶을 위한 선택과 관련됩니다. 가족부터 보자면, 오준구와 아들 오현준의 관계는 호머 심슨과 바트 심슨의 한국식 버전으로 풀었더군요. 그러면서도 결국 둘이 함께 남는다라는 귀결인데, 이건 아빠와 아들의 숙명 같은 건가요?
A. <심슨 가족>의 설정을 끌어온 건 좀더 애니메이션다운 목표점이 필요했기 때문이예요. 부자관계를 가장 도드라지게 다루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대놓고 심슨 가족을 가져와도 될까 싶더군요. 미국식의 심플함 보다는 아무래도 한국식의 질척함이 가미되어야 할 것 같았어요.

Q. 반면 딸 오현서는 <심슨 가족>의 여동생 리사 심슨과는 달리, 큰딸/누나로 설정되어 있으면서도 꽤나 현실주의자입니다. 공무원과 선생님이 되고 싶어하는 모습을 통해, 등장 인물 중 가장 현실주의적인 인물로 보이더군요. 그래서 그 가족은 애 같은 어른과 애어른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되고요.
A. 가장 현실주의적인 인물이기에 가장 비현실적인 캐릭터인 거지요. 자기를 희생하면서 돌보는 식으로, 가장 마음을 쥐었다 폈다하는 인물이 바로 딸 오현서예요. 준구의 마음을 가장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인물인 거죠.


Q. 직장은 말 그대로 전쟁터이거나 정글과도 같습니다. 동료 교강사들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학생과 선생의 관계도 결국 이해관계로 점철되어 있는 식이죠. 그러한 인간 관계는 거짓말, 훼손된 기억/기억 못함, 연기 (거짓이라기 보다는 과장)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속고 속이고, 함께 있어도 기억 못하고, 결국 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로 전락하게 되고요.
A. 이야기의 중심이자 우리 삶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관계라는 것이 이해타산,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걱정이나 의심 같은 것들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이런 관계에서 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그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거리두기를 어떻게 할까’를 질문해 봤어요. 사람들의 삶이란 결국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처럼요.

Q. 연기를 통해 인물들의 감정이 고조되는 지점에서 갑자기 이미지를 과장시키고 왜곡시는 표현이 나옵니다. 단편 작업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과감한 연출이더군요.
A. 네, 이전의 단편들에서는 수작업을 통해 선의 맛을 표현했었어요. 제게는 익숙한 표현법인 거죠. 장편 작업을 하면서도 제 장점을 가져오고 싶었어요. 단편의 작화 작업이 제게는 편하거든요. 여기에 추가해서, <너의 이름은>에서처럼 매력적인 선을 넣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그 선에 인물의 감정과 감성을 집어넣고자 하는 바람 같은 거죠.

Q. 장편을 만든다는 건 어떠한 일인가요? 장편을 만들고 나서 드는 감회는 어떠한가요?
A. 사실, 아직도 실감이 안나요. 기획 단계 후 바로 제작에 들어가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압박이 있었고, 그러면서도 한 단계씩 밟아가면서 만들어야 했어요. 어쩌면 단편 제작하듯 만들었는데, 그러면서도 ‘왜 아직도 안 끝나지? 단편을 만들었으면 벌써 몇 작품 끝냈을 텐데...’라고 스스로 묻게되기도 하고요. 그래도 덕분에 시나리오와 연출에 대해서 조금은 더 알겠더라구요.

Q.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A.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고 싶지만, 일단 장편 제작이나 상업적인 작품 제작과 관련해서는 시나리오를 길게 쓰고 싶어요. 장편이든, 시리즈이든 충분한 얘기를 뽑고 싶거든요. 그러한 분량은 어쩌면 웹툰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고요. 웹애니 시리즈도 기획해봤는데 여건이 좋지는 않더라구요. 코미디나 판타지를 결합한 스릴러 쪽으로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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