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만화 패션쇼 ‘그림자의 꿈’ 총감독 이상봉 패션 디자이너 인터뷰
만화 패션쇼 ‘그림자의 꿈’ 총감독 이상봉 패션 디자이너 인터뷰
홍지민 2018.10.01


경계를 넘는 일이 터부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대중문화예술계 또한 예외는 아니다. 본업에나 충실 하라는 비아냥거림이나 남 밥그릇까지 빼앗으려 한다는 텃세와 마주하기 십상이었다. 지금도 마냥 환영받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경계를 넘은 융합, 믹스 등이 꾸준히 시도되며 이전과는 다르게 주목 받고, 또 성공을 거두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애니메이션 연출가였던 연상호 감독이 첫 실사 영화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하고, 김태용 감독은 국악극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정구호 패션디자이너는 한국 무용 공연과 오페라를 연출하며 패션에서 갈고 닦은 미적 감각을 십분 뽐내기도 했다.
지난 8월 중순 ‘만화 그 너머’를 표방하며 성황리에 열렸던 제21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도 대중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 행사가 열려 이목을 끌었다. 만화 패션쇼 ‘그림자의 꿈’이다.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된 만화 패션쇼는 글자 그대로 패션의 미학과 만화의 상상력이 어우러진 무대였다.
이 만화 패션쇼의 총감독은 이상봉 패션 디자이너가 맡았다. 그 또한 영화로, 음악으로, 또 여러 사회 이슈와 패션을 접목시키며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패션 디자이너인 그는 그런데, 원래 대학 시절 연극영화에 다니며 연극 무대를 꿈꿨다. 삶이 이끈 패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이상봉 디자이너지만 패션의 경계를 넘어 다른 장르의 예술과의 협업을 갈구하는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패션계를 다룬 만화가 만들어진다면 이야기를 제공하고 싶다는 그를 인터뷰로 만나봤다.


Q. 지난 8월 개최된 부천국제만화축제 개막식 행사 중 하나로 열린 만화 패션쇼는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만화 축제와 함께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A.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슬로건인 ‘만화, 그 너머’에 걸맞게 만화 예술과 패션이 결합된 융·복합적인 상상력을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Q. 해외에서도 만화와 패션을 결합하는 이런 시도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이번에 만화 패션쇼를 준비하며 리서치해보니 외국에서도 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Q. 이번 패션쇼는 만화와 패션뿐만 아니라 음악, 춤, 마술 등 다양한 예술의 콜라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지요.
A. 일단은 만화와 패션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림자의 꿈-Dream of Shadow'이라는 큰 주제로 각각 소주제의 4부를 구성했는데요, 1부에서는 ‘인연’-세상과 인연을 맺자, 2부는 ‘냉정과 열정 사이’-여러 인연들 중에서 사랑과 이별, 3부는 ‘축제’-인생의 즐거움, 4부는 ‘만화로 화합하다’-만화를 통한 화합과 미래지향적 가치 창조를 다뤘습니다. 만화의 상상력을 현실에서 구현한 모델들이 걸어 나오고 그 모델들이 나름대로 현실에서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등 만화를 통해서 새롭게 경험하고, 또 그러한 다양하고 새로운 융복합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습니다.

Q. 패션쇼의 타이틀 ‘그림자의 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요.
A. 우리는 보통 그림자를 보면서 앞에 모습만 보게 됩니다. 사람을 보더라도 앞의 이미지만 보고 그 이미지를 각인시킵니다. 하지만 앞모습이 아닌 우리의 꿈을 대변해주는 게 그림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그림자의 꿈이라는 테마를 갖고 만화가 가지는 상상력을 최대한 이끌어내 무대에 선보이면서 만화를 통해 화합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자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Q. 만화계에서는 이번 만화 패션쇼가 단순히 의상 위에 그림을 프린트 하는 수준이 아니라 만화와 패션의 융합을 시도하며 예술성을 입힌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번 만화 패션쇼에게 가장 뿌듯했던 부분은 무엇인지요. 또 반대로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A. 만화의 확장성 덕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화를 통해 마술을 만나고 무용을 만나고 음악을 만나고 영상 속에서, 만화 속에서 같이 살아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게 감동적이었습니다. 반대로 패션쇼를 통해 선보인 의상들이 만화 속에서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Q. 만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의 패션을 현실로 옮긴 코스프레 대회 참가자들이 런웨이에 함께 서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부천만화축제에 와서 코스프레 대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코스프레도 패션쇼 무대에 처음으로 올려봤습니다. 단순히 대회에 나와서 상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보다 큰 무대인 런웨이를 통해 일반 관객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또 자부심을 느끼게 하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제 우리나라 연기자인 홍석천 씨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모든 우주를 향해 어떤 축제의 초대장을 보내는 퍼포먼스를 했고요, 그런 퍼포먼스를 통해서 많은 우주인들이 오는 퍼포먼스를 피날레에 도입했습니다.

Q. 두 번째 만화 패션쇼를 기대해도 좋을까요. 이번 만화 패션쇼를 진행하시면서 새롭게 떠오른 또 다른 방식의 만화-패션 융합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화 주인공들이 만화 속 세상에서 선생님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활약을 펼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A. 어쩌면 이번 행사는 짧은 기간에 준비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다음에는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멋진 행사를 같이 하자는 이야기에 이번 제안을 수락하기도 했습니다. 또 기회가 주어진다면 만화가 어떤 꿈을 실현해주는지 상상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로 가져오고 싶습니다. 저의 패션을 만화를 통해서 새롭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Q. 영화 작업에도 몇 번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패션과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자주 시도하는 편이신데요, 꾸준히 그런 시도를 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A. 네, 제가 젊었을 때 연극을 공부했었고 연극에서 꿈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마음속에 남아있기 때문에 패션쇼에서도 스토리라는 걸 만들고 싶었습니다. 또 타 장르, 그게 음악이 됐든, 영상이 됐든 무용이 됐든 그런 융합 퍼포먼스를 통해서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생각하고 있는 패션에 관객이나 소비자들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다면 그런 시도는 계속 해보고 싶습니다.


Q. 이번 부천국제만화축제에 함께 하신 것은 아무래도 평소 만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에게 만화란 무엇인가요.
A. 만화는 제가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대리만족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에 ‘그림자의 꿈’이라는 테마를 갖고 접근했는지도 모릅니다. 만화를 통해서 울고 웃던 내가 평소 해보지 못한 용기를 만화를 통해 엿보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에게 만화는 아주 아련한 흑백영화처럼 느껴집니다.

Q. 이전 인터뷰를 보면 어렸을 때 만화를 보고 너무 슬퍼서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고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작품인가요? 또 어려서 좋아했던 만화 작가와 즐겨봤던 만화 작품들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어려서 몰래 만화를 보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지금 비록 만화의 제목 등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만화는 어쩌면 제가 디자인을 하는데,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렸을 때는 만화를 보며 영웅담이나 흑백영화를 꿈꿨다면 지금 성인이 되어서는 만화를 통해 야망이나 먼 우주를 여행하는 환상을 꿈꾸기도 합니다.

Q. 문학 작품, 여행,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패션 영감을 얻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화도 영감의 원천 중 하나일까요. 이번 만화 패션쇼도 그런 역할을 했을까요.
A. 네, 어렸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 데 만화는 대중들에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 같습니다. 저는 시나 소설 아니면 영화, 화가들의 그림 등에서 제가 느꼈던 예술들을 패션에 연결하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만화 또한 만화를 보면서 느꼈던 상상력을 패션을 통해 주인공들의 의상 또는 새로운 모습들로 그려보곤 합니다.

Q. 아무래도 아트 서적을 많이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혹시 만화도 소장하고 계신 작품이 있으신지요.
A. 이번에 만화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구입한 책이 있는데요. 요즘 만화들의 형태라든지 패션에 소스 등을 공부해보기 위해 구입해 읽어보았습니다.

Q. 요즘은 만화를 디지털로 보는 시대가 됐습니다. 패션을 소재로 한 웹툰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요, 웹툰도 종종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사실 집에 TV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문, 그리고 영화 등을 보다 쉽게 접하고 있습니다. 핸드폰을 통해 웹툰도 가끔 보고 있고요. 그걸 통해서 웃거나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려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Q. 혹시 가깝게 지내시는 만화 작가 분들이 있을까요.
A. 제가 만나본 분은 이현세 선생님 정도입니다. 본관이 저와 같은 ‘전의 이씨’(全義 李氏) 세요. 따님 소개로 클럽파티에 초대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리고 이번 만화 패션쇼 때 잠깐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Q. 해외에서는 패션계를 깊게 조명한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대중문화들이 풍성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걸음마 수준인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와 모델들은 연예 프로그램 패널 정도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때 앙드레 김 선생님 관련 영화 제작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대중성에 대한 고민으로 현재 중단된 상태입니다. 혹시 선생님이 스토리 작가가 되어 영화나 드라마, 만화 등을 통해 패션계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어떨까요.
A. 그런 스토리를 만들어 달라는 제의가 온다면 정말 발 벗고 해보고 싶은 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제가 못 다해 아쉬웠던 연극이나, 또 그런 분야들을 통해서 패션과 연관된 이야기를 정말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직접 연출은 못하더라도 스태프로라도 참가해보고 싶은 게 제 생각입니다.

Q. 정구호 디자이너의 경우, 한국 무용과 오페라 연출까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혹시 선생님도 다른 예술 영역에서의 창작을 꿈꾸고 계시지는 않은지요?
A. 저는 오랫동안 꿈으로 삼아온 연극에 대한 미련이 많습니다. 그래서 패션쇼에서나 전시 등을 통해 타 장르 친구들과 함께 작업한 게 있지요. 영상이나 무용 퍼포먼스 등 다양한 시도들을 해봤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한 짜릿한 감정들은 패션쇼를 통한 긴장보다도, 어떻게 보면 더 조마조마 했던 순간들이 많습니다. 패션쇼장에 새를 날린다거나 하나의 벽을 붉은 색으로 염색하는 퍼포먼스를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었고 그런 것들을 시도했던 기억들은 저에게 항상 새로운 도전과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만약 어떤 기회가 오던 간에 제가 추구하는 종합적인 예술에 대한 시도는 늘 해보고 싶습니다.

Q. 긴 시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만화, 패션을 포함한 모든 예술 분야에서 창작자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모든 예술은 서로 상호작용하고 있고, 영감을 서로 주고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교류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패션 분야보다는 다른 예술 장르를 통해 저는 그들한테 영감을 받기도 하고, 그들도 저를 통해 새로운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이 자기 영역에만 빠지지 말고 전체를 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예술을 경험해보고, 또 소통해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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