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밀레니얼 세대 여성 만화가들이 사는 법 : 민서영, 예롱, 이아리 (1)
성인수 2021.05.31

5월의 커버스토리는 ‘MZ세대’이다. 이곳저곳에서 MZ세대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나오지만 MZ세대 당사자들의 이야기보단 ‘MZ세대는 어떻다더라’는 식의 이야기가 더 많은 요즘이다. 그래서 MZ세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자 MZ세대 당사자이며 MZ세대에게 호응을 이끌어내는 작가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담 자리를 마련해보았다.

민서영, 예롱, 이아리 작가는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작품을 해온 밀레니얼 세대 여성 만화가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일상을 작품에 그대로 드러내길 서슴지 않고, 성차별, 인종차별 등 인권 문제를 작품에 직접 다루기도 한다. SNS와 친숙한 만큼 SNS를 연재처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SNS를 통해 비난과 악플에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 작품 이야기에서부터 돈 이야기까지, 세 작가의 조금은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작가 소개

-민서영 : ‘난 야한 걸 좋아하지만 너랑은 섹스 안 해’. 자신의 욕망을 남의 시선보다 우선시하는 ‘썅년’이 되겠다는 미학을 바탕으로 저스툰에서 <썅년의 미학>을 연재했다. 단행본 <썅년의 미학>, <썅년의 미학 플러스>을 출간했다. 최근 연애 에세이 <망하고 망해도 또 연애>를 발간했다.

-예롱 : 흑인 남자친구가 한국에서 살아가며 겪은 인종차별을 다룬 만화를 ‘예롱쓰의 낙서 만화’라는 이름으로 SNS에 연재하다가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라는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했다. 다음 웹툰 독립만화특별전에서 <현수와 수호>를 연재했으며 ‘코끼리타로 예롱도사’라는 이름의 타로 유튜브를 운영 중이다.

-이아리 : 데이트 폭력을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린 자전적 만화 <다 이아리>를 인스타그램에 연재하고 단행본을 출간했다. 현재는 인스타그램에 애인과의 관계 등을 다룬 일상 만화를 연재 중이다.  




서로를 알아본 작가들

Q. 세 분은 서로의 작품을 보신 적이 있을까요? 서로의 작품에 대한 간단한 감상평을 들려주세요.

-이아리 : 두 분을 직접 뵙는 건 처음이지만 온라인에서 이미 안면을 튼 사이에요. 저는 두 분 작품을 보면서 제가 몰랐던 것들을 많이 깨닫게 됐어요.

-민서영 : 이아리 작가님 작품을 보며 여러모로 힘드셨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롱 작가님은 심플한 그림체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분이란 생각이 들었고요.
-예롱 : 이아리 작가님은 어두운 내용을 다루시는 데 그걸 굉장히 몰입도 있게 잘 표현하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연출 기법이 인상 깊었거든요. 민서영 작가님의 <썅년의 미학>을 봤을 때는 깔끔한 그림체가 제일 눈에 띄었어요. 메시지에 집중하려고 의도적으로 간단한 선을 쓰시는 게 느껴졌어요.
-이아리 : <썅년의 미학>을 보며 어떻게 4컷을 하시지? 하는 생각도 했어요. 10컷도 어려운데. 컷 수가 적을수록 어렵잖아요.
-민서영 : 4컷 만화를 선택한 건 메시지 전달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4컷 만화는 간편하고 압축적이잖아요. 막상 연재를 할 때는 ‘내가 왜 4컷으로 한다고 했지?’라며 후회한 적도 많았어요. 4컷 만화는 기-승-전-결 구도밖에 안 돼서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게 너무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3~5컷으로 한 두 컷을 더하고 빼거나, 아니면 4컷만화를 이어서 12컷으로 하는 등 여러 가지 변주를 주었죠.
-예롱 : 저도 가급적 컷 수를 적게 하려고 해요. 그래야 파급력이 좋거든요. 조지 플루이드 사건 때도 ‘이거 하나로 전부 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딱 6컷으로 그렸어요. 그랬더니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각국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서 엄청 퍼져나가더라고요.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길거리에도 붙었어요.



△ 예롱 작가님이 그리신 조지 플루이드 만화

Q. 세 분 다 만화 자체보다는 메시지 전달이 더 우선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왜 그 수단으로 '만화'를 택하셨을까요? 다른 매체와 비견되는 만화만의 매력이나 특징에 대해 느낀 게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민서영 : 직관적이죠. 저는 글도 쓰고 만화도 그렸잖아요. 글에도 물론 문체가 있지만 그림이 함께 있으면 ‘아, 이거 누구 작품이구나!’하고 좀 더 확실하게 각인되는 것 같아요. 또 표정 묘사 같은 것도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 나 이 표정 알아!' 같은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죠.
-이아리 : 저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고 싶어서 만화로 그렸어요. 사람들이 만화를 좋아하고 웹툰도 많이 보니까 만화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롱 : 저는 만약 영상을 다룰 줄 알았다면 영상으로 했을 것 같아요. 저는 만화를 그릴 때도 영상에서 얻었던 개념들을 많이 적용하거든요. 하지만 만화만의 장점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같아요.
-이아리 : 만화는 또 과장할 수가 있잖아요. 저는 가해자는 좀 크게, 피해자는 좀 작게 그리는 대비를 줘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만화로는 이걸 표현하기가 용이했어요.



△ 이아리 작가님의 <다 이아리>의 연출

인스타그래머블한, 작가

Q. 세 분 다 SNS에 연재를 하셨는데 특히 인스타그램에 연재를 하셨잖아요. 왜 하필 인스타그램이었을까요?

-이아리 : 저는 수신지 작가님 영향이 컸어요. 처음에는 네이버 베스트 도전에 만화를 올렸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잘 안 보더라구요. 그런데 수신지 작가님이 <며느라기>를 인스타그램에 연재하시는 걸 보고 ‘아 인스타에도 만화를 올릴 수가 있구나!’하고 깨닫고 나서 저도 인스타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팔로우도 해주고 만화가 많이 퍼지더라구요. 신기했어요.

-예롱 : 인스타는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 큰 것 같아요. 저는 재수 작가님이 계기였어요. 재수 작가님이 원래 페이스북을 하셨는데 인스타로 넘어가시고 인스타에서 계속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계셨거든요. 그걸 보면서 저도 페이스북에서 인스타로 넘어갔죠. 플랫폼에서 연재를 하려면 여러 절차들을 거쳐야 하잖아요. 하지만 SNS는 접근성도 훨씬 좋고 사람들과 더 빨리 연결될 수 있으니까 그게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민서영 : 저도 페이스북을 먼저 했었는데요. 페이스북 할 당시 조회 수가 꽤 나왔었거든요. 그런데 인스타로 넘어갈 때 즈음 정식 연재 요청이 와서 인스타에 있었던 시간 자체는 짧긴 해요.
저는 온갖 SNS를 다 하다 보니 SNS별로 특징이 보여요. 트위터랑 인스타를 비교해보면요,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들은 기본적으로 나의 팬일 확률이 높아요. 인스타는 ‘보는 사람만 들어와서 보는 곳’이라는 경향이 강하거든요. 인스타는 나의 관심사에 따라 추천을 해주니까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기본적으로 나에게 호감을 가질 확률이 높아요. 내가 팔로우하는 페이지만 타임라인에 뜨기도 하고요.
그런데 트위터는 내가 팔로우하지 않아도 내 지인이 리트윗을 하면 내 타임라인에 들어오니까 내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이 나의 팬이 아닐 경우가 많아요. 또 인스타는 보기 싫은 댓글이 달리면 지워버리면 되는데 트위터는 그게 안 되죠. 익명성도 강하고요. 그러다 보니 나에 대한 이야기, 심지어 나에 대한 루머가 퍼져도 내가 컨트롤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트위터는 파급력은 좋아도 작가에게 그다지 안전한 플랫폼은 아닌 것 같아요.



△ 세 작가님의 인스타그램 계정. 왼쪽부터 민서영, 예롱, 이아리


Q. 세 분 모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그리셨어요. 자신의 일상을 작품에 담아낼 때 고민되는 지점은 어떤 것일까요?
-예롱 : 저는 최대한 사실과 가깝게, 거의 있는 그대로 그리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제 생각 위주로 창작을 하면 사람들이 안 믿거든요. (일동 : 아…) ‘이게 지금 한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건 100% 실화다’라고 대놓고 이야기해도 잘 안 믿어요.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바라요. 스스로 깨닫는 게 훨씬 효과가 크거든요. 그리고 저 역시 배워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저도 틀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 생각을 최대한 빼거나 넣더라도 독백으로 넣는 편이에요.
-이아리 : 저는 제가 실제로 겪은 일이니까 가해자가 자기 이야기란 걸 알아차리길 원치 않았어요. 그래서 가해자가 특정될 만한 에피소드는 전부 다 뺐어요. 그렇지만 동시에 데이트 폭력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는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남겨야 하잖아요.
-민서영 : 그 사람’만’을 고발하려고 그리는 만화가 아니니까요.
-이아리 : 맞아요. 데이트 폭력이 정말 흔하다는 걸 알리고, 제가 피해자로서 느꼈던 두려움 같은 감정들도 전달이 되길 원했어요. 그런데 이 조율이 너무 어려운 게, 또 너무 자극적이면 안 되는 거예요. 트리거 유발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처음에 트리거 주의 문구를 안 썼는데, 어떤 분이 ‘만화가 검색에 떠서 봤는데 트리거가 눌려서 잠을 못 잤다’고 적으신 걸 봤어요. 너무 미안해서 그때부터 주의 문구를 넣기 시작했어요.
-민서영 : 제 만화를 두고 흔히 ‘사이다 만화’라고 하는데 저는 그 칭호가 좋으면서도 그렇게 좋진 않아요. 왜냐하면 만화에 실린 많은 에피소드들이 제가 직접 겪었던 일들에 ‘아, 내가 그때 이렇게 말할 걸, 그렇게 할 걸, 이렇게 대응을 할걸’하고 상상하며 만든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이걸 보는 사람들에게는 대리만족을 느껴도 되고,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만화처럼 대응을 해도 되고,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저에게 두렵고 상처가 되었던 건요, 저는 본명으로 연재를 하잖아요. 작가 페르소나를 따로 만들지 않고요. 게다가 얼굴도 드러나 있죠. 그러니까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공격이 저한테 직격탄으로 와서 꽂히는 거예요. 사실 작품이 마음에 안 들면 작품만 공격하면 되는데, 작가한테 인신공격을 하잖아요. 저는 이쪽이 좀 더 상처였던 것 같아요.
-이아리 : 저는 일상만화 그릴 때는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아요. 정말 즐겁게 그리거든요. 단지 고민이 있다면 수위를 어디까지 조절할 것인가…인 것 같아요. 만화에서 한 번 콘돔을 언급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부모님 뻘 되시는 분이 ‘어린 학생들도 보는 곳에 어떻게 콘돔 얘기를 할 수 있냐’고 댓글을 단 거예요. 저는 오히려 청소년들도 피임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알아야 건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쉬쉬하다가 콘돔도 못 사고 몰래 피임도 없이 하는 게 더 위험하잖아요. 그래서 콘돔 얘기를 하는 게 나쁜 게 아니라는 대댓글을 달았어요. 이런 것 빼고 나머지는 정말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 이아리 작가님의 일상 만화
 
Q. 아리님과 예롱님은 일상 중에서도 연애를 다루셨잖아요. 그럼 작품에 나 혼자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상대도 같이 등장하는데 상대방과 조율은 어떻게 하셨나요?

-예롱 : 저는 상대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이런 내용을 할지, 저런 내용을 할지. 상대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특정되는 내용이나 원치 않는 내용을 빼는 식으로 조율한 건 있었죠.

-이아리 : 저는 항상 콘티 단계, 혹은 글로 쓴 단계에서 보여주고 이거 올려도 되냐, 이 소재 써도 되냐고 확인을 받아요. 그럼 괜찮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끔씩 ‘어 이거는 조금…’이라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럼 그건 안 쓰죠.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둘의 이야기니까 상대를 존중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소재는 항상 상의를 하는 편이에요.


Q. 사생활 노출에 대한 걱정은 없으세요? 내 일상을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요.
-이아리 : 저는 얼굴 노출을 안 하다 보니 그렇게까지 걱정되진 않는 것 같아요.
-예롱 : 저는 좀 걱정되긴 했어요. 지금은 인스타에 사진도 올리지만 처음에는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악플 달린 게 많아서 정말로 테러 같은 걸 당할까 두려웠거든요. 공황장애도 있었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얼굴이 안 보이게 이상한 모자 같은 걸 만들어서 쓰고 다녔어요. 사실 요즘도 좀 무섭긴 해요. 독서 모임 같은 곳에 나갔는데 만약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제가 이 주변에 산다는 걸 알게 되는 거잖아요..
-이아리 : 오프라인 활동을 많이 하면 무서우실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인터뷰도 서면으로 하고 잘 안 나가거든요. 이번에도 안 나오려다가 예롱 작가님이랑 민서영 작가님 나오신다길래 나왔어요.
-민서영 : 나와주셔서 감사해요(웃음). 저는 길거리에서 저를 알아보시는 경우가 좀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걸 몰랐다가 나중에 SNS 같은 곳에 ‘나 오늘 어디 갔는데 거기서 민서영 작가 봤다’ 이런 식으로 올라올 때가 있어요. 차라리 저한테 오셔서 인사를 해주시면 그나마 안심이 돼요. 절 알아봐 주시는 것에 반갑고 감사한 마음도 있고요. 그렇지만 ‘만약 정말로 테러 같은 걸 결심한 사람이 나타나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 때도 있어요. 제가 눈에 띄니까 알아보기도 쉬울 텐데.


(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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