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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3]중년의 만화키드 어수웅 기자의 강추 만화
어수웅 2006.09.01

자신을 위무할 수 있는 문화텍스트!”

- 중년의 만화키드 어수웅 기자의 강추 만화


누구나 만화와 관련한 추억이 몇 가지는 되겠지만, 내게는 초등학교 1학년, 이사 가던 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성수동에서 쌍문동으로 서식 지역을 옮겼을 때다. 이사 당일인데, 내가 없어졌더란다(솔직히 내게는 기억이 없다. 어머니로부터 나중에 들은 기억일 뿐이다^^).
코흘리개 어린 아들이 없어졌으니, 오죽했겠는가. 동네 파출소에 실종신고를 내고, 집안은 이미 뒤집어진 상태. 어머니가 거의 정신까지 놓았을 무렵, 내가 터덜터덜 걸어오더란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넘어가 어둑신해졌을 무렵이었다. 도대체 어디 있었느냐는 질문에 너무도 태연한 대답. “만화가게 다녀왔어요.” 그 이후 벌써 30년이 흘렀지만, 중년의 만화키드는 여전히 만화로 세상을 읽고 있다. 어쩌면 만화야말로 세상을 알게 해 주는 가장 매력적인 텍스트라는 점에 동의하면서.


타고난 이야기꾼 정연식의‘달빛 구두’

엊그제 정연식의 장편 ‘달빛 구두’(전3권?휴머니스트 刊)를 읽었다. 사실은 일주일간 출장을 다녀온 뒤 시차가 맞지 않아 무척 피곤한 밤이었는데, 읽을 수 있는 데 까지만 보자고 잡았다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덮고 말았다. 순식간이었다. 이미 ‘또디’ 시절부터 그의 만화를 사랑했지만, 이번 작품은 유난히도 작가 정연식의 이야기꾼 기질을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2대에 걸친 우정과 사랑을 진지하게, 하지만 유머를 놓치지 않고 그려낸 ‘달빛 구두’는 다 읽은 독자에게 뿌듯한 포만감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아버지에게서 노란색 에나멜 구두를 선물로 받은 소녀. 보름달만큼 아름다운 빛깔의 구두는 딸의 가슴에 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광고회사의 당당한 일꾼으로 인정받은 그녀는 어머니의 부음 소식에 고향으로 달려간다. 새롭게 알게 되는 충격적인 사실들.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로만 알았던 아저씨를 통해 수십 년 동안 이어졌던 인연들. 가난 때문에서 서울에 식모로 팔려가는 여동생, 도덕적 부채감에 시달리며 학생운동에 뛰어들던 대학생 등 지난 시절의 추억이 향수를 자극하는 매력도 상당하지만, 그 보다는 두 명의 친구와 한 명의 여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우정과 사랑이 보는 이들의 영혼에 깊은 생채기를 낸다. 원래 미디어 다음에서 웹으로 연재됐던 작품. 스크롤 방식으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종이만화에서 발견한다. 추석, 당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울 것이다.


조금은 투박하고 어설픈 우라사와 나오키 초기작 ‘파인애플 아미’

지난 달 우리 집 근처 만화 대여점이 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벌인 열흘간의 ‘폐업 대 처분’. 밤 12시 퇴근길에 들렀다가 보물 하나를 발견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파인애플 아미’. 비록 손때는 탔지만, 8권 전질이 고스란히 묶여 있었다. 분위기 파악 못하는 아르바이트생의 도움 덕에 거의 빌려보는 값으로 주인이 될 수 있었다.
‘파인애플 아미’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초기작. 80년대 후반 작품이다. ‘야와라’나 ‘해피’ ‘몬스터’ ‘20세기 소년’등 그의 작품을 줄줄 꿰고 있는 독자라면, 이미 필독했을 작품. 전투 인스트럭터 ‘제드 고시’를 주인공으로 한 에피소드 모음집이다. 전투 인스트럭터를 쉽게 설명하면, 싸우는 법 가르쳐 주는 과외 선생님이다. 그 쪽 세계에서는 세 손 가락에 꼽을 전직 용병이었던 제드 고시는 일본계 미국인. 소소하게는 아버지 유산을 가로채려는 악당들에 대항하는 자매를 위해, 스케일 크게는 나라를 빼앗으려는 쿠데타 세력에 맞서 전투를 가르친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대표작으로 ‘마스터 키튼’을 꼽는 독자라면, 가장 반가워하며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의 세련된 그림체와는 달리 조금은 투박하고 조금은 어설퍼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반갑다. 짧은 에피소드 모음으로, 그 때 그 때 짬 날 때 마다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에피소드 하나를 ‘완결’하게 만들어줬다.


식욕에 지적욕구, 영혼까지 채워주는 허영만의 ‘식객’

책장에 허영만의 ‘식객’(김영사 刊)이 한 권 한 권 쌓일 때의 기쁨을 놓칠 수 없다. 처음에는 신문 연재분을 빼놓지 않고 읽을 정도였지만, 요즘은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한꺼번에 읽으며 ‘식객’을 즐긴다. 지난 주 출장에서 돌아오는 귀국길. KAL은 기내 도서관 서비스를 운영 중인데, 반갑게도 식객 ‘14권’을 발견했다. 아직 못 본 터라, 냉큼 집었다. 14권의 에피소드는 ‘대구 간 국’과 ‘김치찌개’등을 다루고 있었다. 원래 손재주가 없는 터라 기계를 만지는 일이나 음식을 만드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식객’을 보며 처음으로 직접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구의 간과 곤이로 끓여내는 맑은 탕. 직업 탓에 소주를 자주 먹는 터라, 그 맑은 해장국이 얼마나 맛있을까 싶었다. ‘식객’의 매력은 실용적인 정보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 내 안의 어떤 뭉클한 부분을 건드리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는 점이다.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청년이 자신도 모르게 대구를 먹고 싶어 게 된 이유. 수술 이전 자신의 취향과는 전혀 달랐던 새로운 식욕의 이면에는 당신의 영혼도 뭉클하게 만드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다.


달인의 경지를 보여주는 마츠모토 타이요의 ‘하나오’

오늘 아침에도 화장실에서 ‘하나오’(전 3권?애니북스刊)를 다시 읽다가 출근했다. 벌써 세 번 째다. ‘핑퐁’의 작가 마츠모토 타이요의 작품. 과작(寡作)인데다, 특유의 희귀한 그림체, 그리고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작품세계로 충성심 강한 독자를 갖고 있기로 유명한 작가다. 처음 ‘하나오’가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반가움을 잊을 수 없다.
여기 영리하다 못해 영악한 아들과 동심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아빠가 있다. “내 꿈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 타자”라며 아들과 아내를 버려두고 집을 나와 야구에 미쳐 살고 있는 사내. 세상 물정에 이미 흠뻑 익숙해져버린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은 철부지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 둘을 억지로 함께 붙여 놓은 엄마. 모두들 상투적일 거라고 예상할 때, 작가는 전혀 다른 곳에서 뒤통수를 치면서 우리들의 잃어버린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그림은 직선이 전혀 없는 것으로도 이름났다. 얼핏 초등학생의 낙서를 연상하게 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 살펴보면 달인의 경지에 이른 균형미와 자연스러움이 마츠모토 타이요 그림의 독보적 매력이다.


소다 마사히토의 발레만화 ‘스바루’

마지막으로 소다 마사히토의 발레만화 ‘스바루’(학산문화사 刊)를 골라본다. 개인적으로는 짬 날 때 마다 다시 들춰보면서 위로와 자극을 받는 작품이다. 사실 ‘출동 119구조대’나 ‘스피드 도둑’ 시절부터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걸 보면, 나는 딱히 발레 만화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뭐랄까, ‘천재의 성공담’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소방관, 사이클 선수, 발레리나를 각각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세 작품의 공통점은 결국 최고의 재능을 가진 인물이 역경을 딛고 새로운 단계로 진화해 나간다는 내용. 어쩌면 지금 시대에는 촌스럽다는 지적을 들을 수도 있는 열혈 스토리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런 휴먼드라마에서 작지 않은 위로를 받아왔다. 뇌종양을 앓고 있는 남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춤을 시작한 스바루는 자신의 유전자에 새겨진 재능으로 프랑스 발레 콩쿨에서 우승하고, 또 다시 뉴욕의 밑바닥에서 시작해 새로운 성공을 거둬간다는 드라마. 승부 순간의 긴박감을 다루는 데 있어서 소다 마사히토의 재능을 따라갈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작가와 출판사의 의견 충돌로 마지막을 제대로 맺지 못하고 완결했다는 후문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11권까지의 드라마만으로도 충분히 일독할 만한 작품이다.

이번 추석은 조직과 가족만 도와주면 열흘 가까이 놀 수 있다고 한다. 연휴를 즐기는 108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만화야 말로 가장 소박하고 유쾌하게 자신을 위무(慰撫)할 수 있는 문화텍스트라는 데 두 손 모아 합장. 더구나 완결된 시리즈를 읽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휴가는 1년에 손을 꼽을 정도다. 부디 만화를 통해 풍성한 추석 즐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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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정보 vol. 31 _ 2006 9/10]
글_어수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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