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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만화 연구 세미나 탐방기
김유월 2003.12.01

지난 9월, 활동 본거지인 브루클린을 떠나 삼대 가족이 북적거리는 서울의 부모님 집으로 귀국했다.

귀국하면 늘 그렇듯이 밤새 케이블 TV로 재방송들을 보면서, 대장금을 보며 혼자 파도 응원을 하고, 이효리 돌풍을 목격하고 김제동의 재치에 웃으며 대중문화계 정보갱신에 주력했다. 워낙 인터넷을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하지 않는 생활 탓인지-(미국은 올해 한창 케이블 모뎀의 대중화 되고 있다. 광고에서 빨라요를 외치는 귀신에 홀린 듯한 얼굴들이 눈에 선하다), 한국의 대중문화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네티즌 문화는 참으로 낯설었다. 인터넷 만화, 폐인 문화도, 온갖 신조어(오늘 아??, ?, 방법하다 등을 배웠습니다)도 그렇고, 인터넷 소설로 성공하여 대학 입학한 귀여니도 그렇고, 이 칼럼 사이트와 만은 무관한 듯한 댓글 바람도 그랬다. 비교를 할 배경을 경험해서인지, 안 그랬으면 (내 머리로) 깨닫지 못했을 한국인의 정서라든가 문화라든가 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다가왔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물의 색깔은 나와서 보지 않으면 잘 모르기가 쉽다고 하! 지 않-나요?

만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미국만화, 그것도 메인스트림만 보던 독자들은 처음

망가를 접했을 때 노골적인 적의를 나타냈다. 이것도 그림이냐는 식이었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미국만화를 보고 이입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망가 아티스트가 엑스맨을 그리는 등, 망가 스타일이 전혀 낯설지가 않고, 사건 위주의 미국식 스토리 전개에 망가의 심리묘사 등을 시도하는 작가들이 나타나고 있다. 타국의 것을 보면서 자신의 것를 돌아보고 발전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점에, 비교대상을 가진다는 것의 중요성이 있지 않을까.

 

시차적응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그간 신세 진 이들을 만나던 중, 만화 연구가 김낙호씨로부터 11월 4일과 5일에 걸쳐, 삼성 코엑스 콘퍼런스 홀에서 열린다는 국제 만화연구 세미나 이야기를 들었다. 달리 할 일도 없거니와, 세계의 만화 연구가들의 강연을 들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초청된 “만화의 이해”의 저자 스캇 맥클루드 씨는 만화계에선 락스타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역량 부족임에도 개의치 않고 통역 스탭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덥썩 받아들이고는 조카 기저귀를 갈며 11월을 기다렸다. 미국의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하면서 ! 말이다.

 

제 5회 청강문화산업 세미나로서 열린 이 행사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후원, 청강문화산업대학의 주최로, 만화 평론인이자 동 대학 교수 박인하씨, 청강국제만화교류 연구소에 적을 둔 두 연구원 김낙호씨와 한상정씨의 기획으로 이루어졌다.

행사의 타이틀은 <만화: 이미지 기반 대중문화의 차세대 콘텐츠>. 뭔가 아리송하다. 그러나 발제 및 토론 주제는 만화와 이미지, 만화의 미래, 그리고 만화산업의 세계화로 명료한 (그리고 덜 겁나는) 내용이 될 것이었다.

- 사진 호소가야씨 제공

발제를 맡은 해외 강연자로는 프랑스 유일의 만화전공교수이며 이미지 대중예술에 관해 오랜 기간 연구해 온 피에르 프레노 드뤼엘 Pierre Frenault-Deruelle씨, 에르제 연구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로 쉬이텐과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브누아 피터즈Benoit Peeters씨, 프랑스의 망가/아니메 연구가이자 아니메랑드 온라인 편집장 스테판 페랑 Stephan Ferrand씨가 유럽에서 초청되어 왔다.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저서 “만화의 이해 Understanding Comics”로 잘 알려진 스캇 맥클라우드씨가 북미에서, 또한 일본에서 유럽 및 아시아 만화를 비교연구하고 있는 가와사키 미술관의 만화 전문 큐레이터 호소가야 아츠시씨가 발제자로 초청되었다. 한국의 발제자로는

한국 공주예술대학의 백준기 교수, 한국예술종합대학 영상원 애니메이션학과의 박세형 교수, 한국 문화콘텐츠 진흥원 만화과 박성식 과장 등의 국내 전문가들이 초청되었다. 필자로서는 라인 업만 봐도 상당히 기대되었다.

(더 자세한 경력은 http://www.chungkang.ac.kr/comics/hm.htm를 참고.)

 

3일인 월요일에는 아직 미국에서 도착하지 않은 스캇 맥클라우드씨를 제외한 해외 게스트들을 동반하고 청강대의 만화 박물관을 비롯, 대여점, 대형 서점의 만화 코너를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 한국 만화와 그 유통 전반을 소개했다.

동양에서 만화라면 일본을 꼽지만, 우리나라도 국내만화가 7-80 이상 연재되는 잡지를 가진 엄연한 만화 강국(?)이란 말이지요.

호소가야씨는 한국만화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 놀라울 정도였는데, 최근 관심가는 작품으로 권가야씨의 <남자 이야기>와 말리의 <도깨비 신부>를 꼽았다. 프랑스의 많은 성인 독자들이 타니구치 지로의 만화와 같이 작가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진 작품을 특히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럽에서 통하는 정서라는 것이 한국이나 미국과 어떻게 다른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4일

주제1 <만화와 이미지: 현대 대중문화의 총아>

- 사진 김낙호 촬영

160여 좌석의 실내는 청강대 학생들과 각종 만화 관계자들로 메워졌다. 학생들은 버릇대로 세미나 자료집 여백에 그림을 그리며 행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고 발제자들은 각기 발표에 쓰일 기재를 점검했다.

주최측과 후원측의 축사 및 개회사에 이어 프레노 드뤼엘 교수의 <유럽만화에 대한 미학적 일별>이라는 어려움직한 제목의 발제로 본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유럽만화에 큰 영향을 끼친 에르제의 땅땅(TinTin)의 깔끔하고 정리된 스타일로부터 위고 프라트, 현대의 기베르에 이르기까지의 미학적 변화를 심도있게 짚어보였다. 유럽쪽 만화에 대한 지식이 아플 정도로 부족한 필자로서는 유럽만화

다이제스트 입문 고급판을 본 느낌이었다. 이어서 브누아 피터즈씨가 <만화에 있어서의 텍스트와 이미지: 로돌프 토페르에서 크리스 웨어에 이르기까지>라는 기나긴 제목으로 발제했다. 만화가 현대의 형식을 갖추기 시작하게 한 장본인인 만화의 선구자, 로돌프 토페르를 비롯, 에드가 쟈곱, 윌 아이즈너 등의 만화, 그리고 현재의 크리스 웨어에 이르기까지 통해 만화의 특성인 이미지로서의 글과 글로서의 그림의 관계를 살폈다. 대사를 비롯한 의성어 의태어 등의 텍스트가 만화에서 어떻게, 또한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이미지로 융합되고 그림과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흥미롭고도 기억에 남는 강연이었다.

 

 

5일

주제 2<만화의 미래: 온라인과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들>

- 사진 김낙호 촬영

먼저 <미디어의 교차로에 서 있는 만화>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맡은 브누아 피터즈씨가, 자신이 시나리오를 맡은 <모호한 도시들Cites Obscures>에서 포스터, 음향/음악, 사진 등을 만화에 접목시킴으로서 “매체 이전(移轉)적 모험”시도한 예를 자료와 함께 선보였다. <모호한 도시들>은 프랑소와 스퀴텐과 함께 작업한 20여년에 걸친 시리즈로서, 다양한 매체들이 단순히 기존 화구를 대체로서가 아닌, 스토리의 알레고리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였다. 만화에의 실험적 접근을 추구하는 지망생들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필자의 머리 속에는 그 유명한 A-HA의 “Take On Me”의 뮤직 비디오가 루핑되었다.

이어서 인쇄의 발명 이래 형식 면에서 거의 모습을 바꾸지 않은 만화의 진화와 새로운 유통의 길을 인터넷 공간을 통해 모색하는 내용으로 박진감 있는 강연을 했는데, 마치 그의 저서 <만화의 미래 Reinventing Comics>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라이브로 보는 느낌이었다. 그가 준비한 풍부한 자료들은 무한한 캔버스라는 개념을 실제 인터넷 만화를 통해 실현해 보인 기발한 작품들로, 지난 번 칼럼 때 소개하지 못한 스스로의 태만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끝으로 박세형 교수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유기성>이라는 주제의 발제에서 새로운 기술에 의해 확장되는 만화의 오늘날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한창 기대를 안고 상승중인 디지털 이미지와 그에 따른 유통과 제작 방식에 대한 그의 연구는 좀더 산업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듯 하다.

그외에 토론에 참가한 모해규 교수와 김창남 교수의 코멘트와, 학생들의 질문 내용은 국내의 인터넷 만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볼 수 있었다.

 

제3 만화산업의 세계화: 만화권간 산업적 교류의 전망들

마지막 주제는 페렝씨의 <망가가 왜, 그리고 어떻게 프랑스에 다다랐는가>라는 주제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만화의 프랑스 진출의 역사를 통해 국제 만화산업의 실례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프랑스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만화와 성인들을 위한 만화 사이의 공간에 망가가 자리잡았다. 망가가 프랑스에서 “망가는 음란/폭력물”이라는 시선을 극복하고, 서구의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확장력을 보이는 있다고 하는데, 이는 서서히 서구 진출에 눈을 돌리고 있는 국내 출판계로서는 참고할 만한 선례가 아닐 수 없다. 실제! 로 <도깨비>라는, 약간 허접한 한국만화 잡지가 프랑스에서 출판되어 국내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한국만화의 진출에 대한 전략적인 토론에서 페렝씨는 일본 망가 붐을 타고 “망가보다 싸게 계약할 수 있는 또다른 망가”로 어필하기보다는 수입가격, 제본방식의 용이성 등의 강점과 만화라는 브랜드로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는 전략을 지지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호소가야 씨는 유럽에서는 일본 만화 전시회를, 일본에서는 유럽만화 전시회를 여는 등 국제교류에 앞장서고 있는데, 아시아와 유럽을 다니며 만화계를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 교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유럽의 만화가 일본에서 갖는 장애와, 20세기 초 서구 만화가 일본만화에 끼친 영향 등은 비교 연구에 흥미로운 소재가 될 듯 하다. 호소가야씨는 일본 만화에 있어서 잡지 출판의 전통에 따른 형식의 고착 ?스피드, 레이아웃 등-그리고 유통에 이르기까지, 타국의 만화를 보면서 재발견한 일본만화와 산업의 이모저모를 소개하며 발제를 마쳤다.

 

통역을 통해 의사소통이 되고, 발제자들의 준비가 많았던 탓인지, 행사는 조금씩 지연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성공적인 진행이었다. 세계 유수의 연구가들의 강연과 토론을 들을 수 있다니, 미국에서 4년을 공부했어도 이런 기회는 없었는데, 한국이란 좋구나. 돌아가면 당장 학과장님께 우리도 하자고 졸라야지. 아 부러워.(?)

물론 실무에 관계없는 학구적인 이야기가 많았지만, 많은 학생들과 관련자들은 진지한 자세로 경청했다. 그러나 예술 형태로서의 만화의 미학적 분석과 접근에 익숙치 않은 듯한 국내의 만화 관련인 및 학생들의 호응이 약간 아쉬웠지만, 나이가 어린 대학생들한테는 조금 어려웠던 것도 같다. 만화의 미학적 고찰은 그렇다 치고라도, 많은 이들이 일본 만화 이외의 외국 만화에 노출도 관심도 저조한 것이 안타까웠는데, 뭐 본인도 이 세미나를 계기로 유럽만화에 관심이 생겼으니 다른 이들도 그러리라고 믿고 싶다. 아님 말고.

어쨌든, 이렇게 탐구정신이 강한 우리나라 만화학계, 힘든 현실에도 좋은 만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작가들 역시 한국 만화의 저력을 믿게 해주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한 남학생의 질문이 기억에 남는데, 일본만화에 비해 유럽이나 미국만화는 이입이 잘 안되는데 일본 만화가 더 우수하다고 셍각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방식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가치판단을 서두르는, 마치 위에 언급한 미국 독자들과 같은 경우였다. 이에 맥클라우드씨는 이입이 어려운 것은 일본의 만화는 독자가 주인공과 동일시하거나, 주인공 바로 곁에서 사건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서구 만화들의 경우 독자가 밖에서 사건의 전개를 관찰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라는 답하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보다 보면 익숙해지고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맞는 말이다. 헐리우드 영화만 보던 사람이 타르콥스키나 에드워드 양의 영화를 봤다고 하자. 왠만한 끈기 아니면 곯아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 미국인들이 망가의 낯섦을 이기지 못했다면, 미국에서 지구를 구하거나 데이트 하는 데 별로 관심도 없는 남자들만 더글더글 나오는 스포츠만화가 연재 될! 일이 있었겠는가. 아무리 그것이 <슬램덩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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