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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스스로 만화가라는 착각에 빠져 산다”
이동하 2008.06.03

봉준호 “스스로 만화가라는 착각에 빠져 산다”

SICAF 2008서 <설국열차> 원작자 르그랑ㆍ로셰트와 봉준호 감독 대담 열려

설국열차 대담 전경
설국열차 대담 전경


봉준호 감독이 열성 만화팬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봉준호 영화감독은 자신의 차차기작으로 선택된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의 원작자인 뱅자맹 르그랑, 장 마르크 로셰트 작가 등과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2008) 기간 24일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 국제회의장에서 대담 자리를 가졌다.
만화 <설국열차>는 1986년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프랑스 SF만화의 수작. 영하 80도로 얼어붙은 미래 지구를 배경으로 최후의 생존자들을 싣고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열차 안의 에피소드를 그려내고 있다. ‘황금칸’에서 ‘꼬리칸’까지 열차 각 칸마다 각기 다른 신분과 계급의 인간이 살고 있다는 독특한 상상력과 설정으로 빈부의 격차, 종교, 테러, 집단심리, 정치와 음모, 사랑, 절망과 같은 보편적인 인간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을 맡아 화제이기도 한 이 작품은 현재 각색 작업중이며, 2011년 개봉될 예정이다.

이번 대담에서 봉준호 감독은 원작만화 <설국열차>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수년 전 직접 홍대 앞에서 구입한 만화책을 들어 보이며 “책방에 선 채 다 읽어버렸다. 사서 집으로 가져오고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땅 위를 달리는 폐쇄된 공간 기차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 모티프가 주는 다양함과 흥미로움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
평소 열성 만화 팬으로 유명한 봉 감독은 스스로도 만화를 즐겨 그리며 성장했다고 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에서도 만화를 그렸다. 특히 대학 때는 학교 신문에 돈을 받고 만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영화 <괴물>의 영화 콘티 절반을, <살인의 추억>은 100 자신이 콘티를 그린 그는 콘티북이 출간될 때면 “만화가인 줄로 착각할 정도”라고.
한편, 르그랑 작가와 로셰트 작가 등은 이날 대담을 통해 <설국열차> 작업 과정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또, 봉준호 감독과 영화 <설국열차>에 대한 강한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다음은 주요 대담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설국열차>가 한국에서 영화화한다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의 느낌은?

르그랑 : 너무 놀라웠고, 굉장히 즐겁고 기뻤다. 특히 평소 알고 있던 봉준호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기뻤다.

-영화 <괴물>, <살인의 추억> 등 봉 감독의 영화를 본 소감은 어땠나?
로셰트 : 작품 제안을 위해 봉 감독이 파리를 찾았을 때 영화를 봤는데 영화를 보고 매우 흡족했다. 어떻게 영화로 만들지 기대된다.

-만화 <설국열차>를 어떻게 알게 되고, 매료됐나?
봉준호 : 홍대 앞 즐겨 찾는 모 만화서점이 있는데, 2004년 말경, <살인의 추억>이 끝나고 <괴물>을 준비중이던 때 우연히 이것(<설국열차>)을 발견했다. 책방에 선 채 다 읽어버렸다. 사서 집으로 가져오고 이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일단 기차, 남자들은 기차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히 기차 밖은 영하 80도이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모두 기차에 남아서 간다는 게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꼬리칸 비참한 사람들, 기차 앞으로 갈수록 점점 호화로워지는 부분도 너무 재미있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관적이랄 수 있지만 온 세상이 얼어붙었고, 또 그 엄혹한 상황에서 인간은 싸우고 있다는 게 무시무시하면서도 현실적이고 강렬한 자극이 됐다. 당시 박찬욱 감독이 마침 영화사를 차렸는데 이 원작을 보여줬더니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모호필름에서 영화화 판권을 사게 됐고, 지금까지 작업중이다.

-원작을 영화로 옮길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게 될까?

봉준호 : 많은 감독들이 폐쇄공간이라는 것에 매혹당한다. 특히 뱅자맹 작가가 작업한 2, 3권 부분은 창밖을 볼 수 없는 폐쇄된 공간에서 CCTV를 통해 사람을 감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아주 매력적이다. 기차의 독특한 설정들도 재미있다. 고기를 생산하는 칸, 야채를 재배하는 칸이 있고, 기차 자체도 폐쇄된 공간인데 그 속에 또 감옥이 있다는 것도. 감독을 흥분시킬 수밖에 없는, 오히려 넘쳐나는 아이디어 때문에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좌로부터 봉준호 감독, 뱅자맹르그랑 작가, 장마르크로세트 작가
좌로부터 봉준호 감독, 뱅자맹르그랑 작가, 장마르크로세트 작가

-작품 속 기차는 영화 속에서 계급을 보여주는 절묘한 모티프다. 기차가 보여주는 수많은 모티프를 어떻게 생각하나?
르그랑
: 기차의 엔진이 있는 앞쪽에 권력가들이 자리한다는 것은 정말 단순한 상징일 것이다. 기차를 움직이는 동력이니까 엔진에 가까운 칸에 권력가들을 위치시키고 그 칸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힘이 없는 사람들이 위치한다. 사람들이 앞쪽으로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사회계급에서 위로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외부 온도가 영하 80도인데 기차가 멈추면 모두 죽게 된다. 그게 문제다.

-각색의 방향은?
봉준호
: 각색의 콘셉트는 지금 크게 2가지로 분열돼 있다. A안과 B안을 두고 내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있다. 내년에 (각색본을) 직접 각색할 예정이고, 직접 노트북을 들었을 때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영화는 어떤 모습이 될까?
봉준호
: 지금 한국의 한 젊은 SF 작가분이 각색 작업중이다. 기본 콘셉트는 다국적 성격이 섞인 영화가 되지 않을까. 영화 자체가 노아의 방주 콘셉트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한국 배우, 영어권 배우, 프랑스어권 배우,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 배우가 뒤섞이게 될 것 같다. 그런 구조를 가지기에 가장 적합한 스토리다. 나는 합작을 위한 합작 영화는 싫어한다. 하지만 영화 특성상 한국어 대사와 외국어 대사가 뒤섞이게 되고 배우들도 그럴 거다. 많은 특수효과가 필요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을 것이다. 아주 힘들 것 같다.(웃음)
개인적으로 규모와 제작비가 큰 영화 좋아하지 않지만 기차 풍경, 얼어붙은 스펙터클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규모나 외국배우가 아니다. 진정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정서다. 기차라는 공간과 스토리가 보여주는 정서와 무드, 인간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스펙터클과 특수효과를 동원해야 할 것 같다.

-만화라는 매체를 영화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즐기고 있나?
봉준호
: 만화에 대한 어떤 매체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를 떠나서 내가 직접 만화를 그렸다. 감히 만화가라고 주장할 수 없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그린 만화를 갖고 있고, 고등학교 때 성당을 다녔는데 교회 회지에도 만화를 그렸고, 단편소설을 각색해서 5페이지짜리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대학 때는 학교신문(주간)에 한 학기 동안 돈을 받고 풍자 카툰을 그렸다. 스스로 만화가라는 생각을 살짝 한 적도 있다. 돈을 받고 만화를 그렸으니까.
영화를 하면서도 대부분의 스토리보드를 직접 그린다. 영화 콘티를 그리다 보면 다시 또 내가 만화가가 된 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 DVD 나올 때 콘티가 책처럼 엮여져 나오는데 <괴물>은 50를, <살인의 추억>은 100 내가 그렸다. 인쇄된 콘티북을 보면 내가 만화가가 돼서 만화 신간이 출간됐구나 하는 착각에 빠진다. 만화를 사서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안 좋은 솜씨나마 계속 그리고 있기 때문에, 직접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나한테 (만화는) 영화만큼이나 내 몸에 배어 있는, 익숙한 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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