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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오타쿠 논쟁을 바라보며
서찬휘 2006.03.01

 


 




지난 달, 블로그 세상이 뜬금없이 ‘오타쿠’를 화제로 발칵 뒤집히는 일이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한 블로그에 오른 ‘블로그에 웬 오타쿠들이 이렇게 많은가?’라는 글.
현재는 해당 글을 비공개로 돌려놓은 데 이어 아예 블로그를 폐쇄한 상태지만, 글쓴이는 오타쿠라는 부류의 특징을 나름대로 열거한 뒤 그에 대한 일방적인 혐오감과 증오심을 드러냈다. 문제는 정작 그 글이 그토록 증오를 내뿜고 있는 대상을 완전히 잘못 짚음으로써 애꿎은 사람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적인 언사를 뒤집어쓰고 말았다는 점이다.
 글쓴이가 욕하고 있었던 건 말만 오타쿠지, 사실은 ‘일본 작품을 보는 이들’을 끌어들여 ‘일빠(일본 빠돌이)’에 ‘안여돼(안경 여드름 돼지)’의 인상을 덧씌워 “난 쟤들 싫어, 변태 같고 비정상적이잖아, 이게 보편적 인식이지!”라고 비웃고 있을 뿐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욕먹을 놈들에게 욕을 하는 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저열한 인식이었지 ‘오타쿠’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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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오타쿠 대전 α - 뜬금없이 시끌벅적 오타쿠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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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저열함을 더 지저분한 저열함으로 응징하려는 안쓰러운 모습들과는 별개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한 가지 드는 생각은 “과연 ‘우리’에게 오타쿠란 존재는 무엇일까”라는 점이었다.




오타쿠(おたく)는 본래 1970년대 후반 무렵 일본에서 태동한 ‘만화·만화영화 등을 중심으로 하는 서브컬쳐(우리나라에선 문화콘텐츠라는 용어가 가장 이에 근접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의 향유자’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기원 자체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1980년대 들어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다소 비판적인 시선으로 부르는 이인칭으로 ‘오타쿠’를 제시한 칼럼(나카바야시 아키오)이 나오며 일반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만화, 만화영화, 게임 등 허구성 높은 세계관을 갖춘 작품들을 즐기고 소비하는 이들을 지칭함과 함께, 널리는 특정 사물이나 분야에 대한 관련 물품과 정보를 맹렬히 수집하고 정리하는 데 집착하는 습성을 보이는 이들을 뜻하는 표현으로도 발전했다.

사회적 용어로의 정립 자체가 다소 비판적이었고, 또 80년대 말 일본을 강타한 연속 여아 납치 살인사건의 범인(미야자키 츠토무)이 자기 방에 특촬물, 만화영화 비디오를 잔뜩 쌓아놓고 있었던 탓에 오타쿠라고 하면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한 변태성욕자 내지는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말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후 오히려 이 용어를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적용하거나 ‘위상’에 대해 논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일부 연구가들 사이에서 오타쿠라는 존재에 대한 사회적 분석과 연구를 시도하면서 흔히 불쾌한 외모 등을 비꼬는 인상론을 비롯해 현실과 허구를 구분 못한다는 식의 지적에 머무는 세태를 비판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한편 오타쿠라는 용어와 그 대상은 꾸준히 진화를 거듭해 왔다. 일본의 버블경제와 베이비붐 같은 경계선을 지나며 오타쿠들 안에서도 세대가 갈리는 현상을 보이며, 그에 따른 소비 형태와 관심의 대상들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일례로 일본 오타쿠의 1세대(1960년대 태생)와 3세대(1980년 전후 태생)는 보고 자라온 것부터 지향하는 관점 자체가 달라 아예 종족이 다르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오타쿠라는 대상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외향적 특질 몇 가지를 끌고 들어와 정의 내리려는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사회 발전 양상과 서브컬쳐의 형성 과정이 일본과는 사뭇 다르다. 그 틈새에서 발생, 진화해온 오타쿠란 용어가 우리나라에 그 의미 그대로 쓰이기란 어렵다. 다만 본래의 ‘오타쿠’와는 다른 우리식의 ‘오타쿠’를 굳이 정의한다면(이 표현을 우리나라 사람에게 곧이곧대로 쓰는 건 무리일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원고에선 이렇게 지칭하도록 하자), 우리나라에서 나타났던 특유의 사회 환경과 현상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유난히 강했던 시대에, 우리식 이름을 지닌 애들이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며 열광하다가 그게 일본 거라는 사실에 뒤통수를 얻어맞고 한동안 방황했던 뼈아픈 경험. 그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며 나름의 이유를 찾으려 들고 만화나 만화영화는 애들 따위나-(역시 이하 생략)나 일본 것 따위나- 같은 편견어린 시선엔 논리 세워가며 싸워대고, 보고자 하는 욕구와 그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위해 필연적으로 외국어(일본어)를 공부했으며, 개방되지 않은 시장 속에서 LD와 복제 비디오와 일본판 뉴타입을 어렵사리 챙겨보던 기억. 만화책을 모으는 족족 공부 안 할 거냐며 엿장수에게 내다 파는 통에 부모님과 피터지게 싸우고 혼나야 했던 기억.』

바로 이러한 ‘경험’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이들이 이 땅에서 태동하고 나름대로 성장해 온 ‘오타쿠’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오타쿠라는 표현을 쓰고 있진 않지만 1세대 마니아라는 표현으로 이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는 필자가 공저로 참여한 『애니메이션 시크리트 파일』에 실린 에필로그 글이 있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실 것!) 현재 한국어판 뉴타입을 비롯해 라이트노블 번역자, 게임업계 등에 녹아들어 있는 이들 중 상당수는 이 시기를 겪으며 성장해온 이들이 상당히 많다.

한편 장은선(살아가자) 씨가 명명한 ‘97세대’도 보기에 따라선 2세대 한국형 오타쿠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 97세대란, 「슬레이어즈」나 「달의 요정 세일러문」 등 만화영화 방영이 붐을 이룬데다 때마침 통신망 사정이 한 단계 좋아짐에 따라 팬덤의 형성이 기존에 비해선 가볍지만 한층 더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팬픽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으며, 청소년 보호법의 발동 등으로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에 대한 편견과 맞닥뜨리는 의식개변을 겪은 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1세대가 ‘컬쳐쇼크’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철저히 싸워 온 세대라면, 이 2세대(97세대)는 활동 환경의 호전과 악법의 제정이라는 불의의 습격(?)을 동시에 맞이하며 본의 아니게 만화·만화영화·게임계 쪽으로의 진지한 ‘각성’을 이룬 세대다.

두 세대의 활동 영역과 취향은 다소 다르지만, 공통적인 건 이들의 활동이 어느 정도 생산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신의 위치에 대한 고민과 고찰, 연구가 꾸준히 수반되었을 때에 가능한 것으로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하는 나름의 장벽과 그들이 이끌어내는 생산성이야말로 한국형 오타쿠의 기준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3세대는 과연 있을까? 아쉽게도 근래의 P2P 서비스 등을 통한 양적 경쟁에 익숙한 이들에게서는 ‘생산성’을 볼 수 없고 다만 지식의 축적 등이 아닌 작품을 본 분량으로 경쟁하며, 심지어 소비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와는 전혀 다른 입장으로 놓아야 한다고 본다. 글 처음에 언급한 논쟁글에 반응한 상당수 사람들이 이 위치에 놓인 입장에서 다소 자격지심에 가까운 반응을 퍼부었던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한편 혹자는 디씨폐인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집단을 오타쿠와 동일시하기도 하는데, 폐인(당연한 말이지만 이 폐인은 방구석폐인, 즉 히키코모리와는 다르다)과 오타쿠는 활동 영역과 주 관심사, 의사 표출 방법 등에서 지대한 차이를 보인다. 오타쿠 생활 백서(?)로 제법 인기를 얻고 있는 「현시연」의 한국판에 적힌 ‘일본에 오타쿠가 있다면 한국엔 폐인이 있다!’라는 문구는 그 점에선 다소 맞지 않는다 하겠다.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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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vol. 37호_01
글 서찬휘
만화 즐김이,
만화 이야기터 [만화인](http://manhwain.com/) 지기
만화 중심의 대중문화 언론 『만』(http://mahn.co.kr/) 개발 담당 겸 고정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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