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에스할름 이야기
신명주 2002.02.14
Exotic, Erotic, Exciting. 지혜안의 『에스할름 이야기(Eshalm Story)』가 화이트에 연재되던 당시의 광고문구다. 『에스할름 이야기』를 비롯, 지혜안이 화이트에 연재했던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지혜안은 소위 말하는 ‘성인물’에 참 잘 어울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들의 벗은 몸과 성적 접촉의 장면을 가장 아름답게 그릴 줄 아는 작가 중 한 사람이랄까. 『에스할름 이야기』의 배경은 13세기 덴마크의 한 장원이다. 오랜 볼모생활에서 돌아온 장원의 영주 루트․반․브뤼셀이 농노인 이본느와 우연히 마주친 후 그녀에게 한눈에 반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루트는 다음날 이본느의 혼인식에 나타나 영주의 권리인 초야권을 요구하고, 이본느는 그의 명령에 강제로 따르지만 루트를 증오하게 된다. 그리고 이본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루트와, 루트를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이본느 사이의 줄다리기가 이 작품의 중심축을 이룬다. 그리고 신비로운 현자 샤이안, 루트를 사랑하지만 남장을 하고 그의 옆에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나사렛, 얼굴의 흉터가 있는 떠돌이지만 이본느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헤센 등의 존재가 이야기를 다채롭게 한다. 『에스할름 이야기』는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외국 로맨스 소설과 거의 유사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남자주인공 루트는 현대 여성의 눈으로 보면 기겁할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제멋대로다. 거기에다 애초에 자신을 강간하다시피 한 상대와 결국 맺어진다는 설정도 결코 유쾌하지는 않고, 그런 불유쾌함을 덜기 위한 장치로 마련된, 루트가 변장한 존재였던 “헤센”이라는 설정도 다소는 억지스럽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지혜안의 만화는 눈을 즐겁게 한다. 어디서인가 작가가 “여자들도 남자들의 벗은 몸을 보면서 즐거워할 권리가 있고, 나 자신은 내 만화에서 그런 점을 추구한다”라는 요지의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지혜안의 만화를 보다보면 잘생기고, 실력 있고, 재산도 지위도 있는 카리스마 남자 주인공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여성 독자들의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그래서 상당히 여성 비하적인 설정이 자주 등장함에도 지혜안의 만화를 보면서 그렇게 불쾌해지지는 않는다. 거기에다 『에스할름 이야기』의 이본느는 암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꿋꿋함을 보여주는 외유내강형 여성이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음에도 루트는 떼쓰는 어린아이 같다. 결국은 관계의 주도권이 이본느에게 주어져 있다고 할까. 상, 하 2권으로 끝난 『에스할름 이야기』는 그렇지만 조금 더 길어졌더라도 좋았을 작품이다. 좀 더 방대한 설정과 이야기가 가능했을 작품이 지나치게 루트와 이본느에게 집중되어버린 느낌이랄까. 루트의 첫 결혼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설명이 불충분하고, 샤이안이나 나사렛도 좀 더 입체적이고 생생한 캐릭터로 만들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루트가 왜 헤센으로 변장하고 마을로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도 좀 더 설득력 있는 설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에스할름 이야기』는 애초에 표방한 세 가지, Exotic, Erotic, Exciting은 충분히 만족시켜 주는 작품이다. 독자가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데뷔 후 계속 자신만의 확실한 색깔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혜안은 지켜보고 싶은 작가다.
<에스할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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