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밀가루 커넥션
조정민 2002.02.14
20세기 마지막과 21세기의 처음에 걸친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을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ꡐ조폭ꡑ이다. 사실 조직폭력배 - ꡐ조폭ꡑ이라는 존재는 대중문화를 즐기는 보통사람들에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의 훌륭한 판타지였다. 물 건너 일본에서 심심지 않게 만들어지는 야쿠자 영화가 바로 그러하고, 조금 멀리 보면 명작으로 칭송 받는 영화「대부」역시 마피아를 다룬 조폭영화였다. 헐리웃제 액션 영화의 도대체 몇 퍼센트가 조폭과 그 주변인물을 소재로 한 것인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도 역시 지금까지 수많은 조폭영화가 만들어져 왔지만 새삼스레「친구」의 돌풍으로 그 주가가 오른 것이라는 사실 역시 누구나 알고 있는 바이다. 그리고 만화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조폭을 다룬 만화『차카게 살자』는 그 후속타로 등장한 영화「두사부일체」덕분에 법정공방까지 가지 않았던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쉬운 조폭이라는 판타지는 크리에이터들에게는 놓치기 아까운 소재거리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밀가루 커넥션』은 이름부터 영화「프렌치 커넥션」을 연상시키는, 글자그대로 범죄조직 - ꡐ조폭을 그린 만화ꡑ이다. 잡지「영 챔프」를 통해 이 만화의 연재가 시작되던 1999년 당시의 사회적인 붐이었던 ꡐ엽기ꡑ라는 코드에 충실하고자 했던 설정은 그래서 밀가루 음식들을 의인화 시켰고, 작가의 입을 빌자면 독자와 편집자를 당황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이 실험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시도는 제법 훌륭하게 먹혀 들어갔다. 최초의 약 2권 분량 정도의 연재분은 바로 그 ꡐ엽기ꡑ라는 코드 속에서 안주하는 듯 보인다. 음식물의 의인화라는 설정 자체가 폭소를 자아내는 한 방법이고, 실제로 개그만화에는 일본의『극락사과군』과 같은 전례도 있기는 하지만, 매회 무언가 황당한 캐릭터로 승부를 거는 지극히 개그만화다운 풍모 - 아니 애초의 성격이 개그만화였지만 - 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단행본의 권두에 실려있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프로필의 치밀함은 작가가 단순히 반짝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대충 형상화시킨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물론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작가 이익선의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필력이 적절하게 그러한 아이디어들을 구체화 시켜줌으로서 그러한 설정이 보다 깔끔하게 생명력을 얻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점점 연재가 진행 될수록 캐릭터의 엽기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게 범죄조직을 그린 극화로서의 재미가 더해진 점이 바로 이 만화의 재미있는 점이다. 2001년 한국사회를 뒤흔든 조폭영화붐이 어느 정도까지 이 만화에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순한 엽기만화에서 하드보일드한 액션극화로 탈바꿈 해 가는『밀가루 커넥션』의 모습은 우리네 성인만화도 뭔가 좀더 다양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ꡐ하얀 가루ꡑ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상소리가 난무하는 만화의 내용은 일견 천박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천박해 보이는 내용이 일반 대중이 판타지로만 간직하고 싶어하는 조폭의 리얼리티임을 생각할 때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는『밀가루 커넥션』의 캐릭터들이 우락부락한 8등신의 사실적인 극화체 캐릭터들 보다 더욱 설득력을 가지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꼭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밀가루 커넥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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