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떴다! 킬러
만화규장각 2000.01.01
훗날의 사람들은, 2000년대 초반의 사회풍조 중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ꡐ조직물의 범람ꡑ을 거론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해할 수 없으리 만치 사람들의 관심과 화제를 끌어낸 장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혀를 쯧쯧 차는 문제 거리 이상이 아니었던 ꡐ주먹ꡑ들의 세계이다. 더군다나 이 소재가 ꡐ엔터테인먼트ꡑ의 부류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은, 어찌 보면 불가사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계통의 장르에서는 어느 정도 정해진 프로세스가 존재한다. 주역이 가진 카리스마는 주먹솜씨이기도, 때로는 의리나 인정 같은 인간적 장점이기도 하지만, 결국 요약하면 캐릭터성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독특한 환경이 그 전개에 있어 필연적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런 계통의 작품군 가운데, 한 가지 특이한 분야가 있으니 다름아니라 ꡐ멍청하고 능력 없는 놈이 톱의 자리에 오른다ꡑ는 패턴이다. 이런 경우 주역 캐릭터는 대충 두 가지 성향으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지저분한 화장실 개그로 대표되는 카세 아츠시(加?あつし)의 『카멜레온』과 같은 경우다. 주인공은 아무런 능력도 없이 욕심에만 밝으며, 잔머리만 굴려 상황을 그 때 그 때 모면하려고만 든다. 물론 그 얕은 수는 성공되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에게 화로 돌아오지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기적 같은 변수가 끼어 들어, 예상찮던 방향으로부터 화는 복으로 전환된다. 다른 하나의 노선은, 화이건 복이건 애초부터 주인공이 그것을 감지조차 못하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정작 아무 생각 없는 주인공을 제외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안달복달하면서 몸이 달아 움직이고, 그 행동들은 미묘한 균형을 이루어 결과적으로 주인공을 지켜주게 된다. 이 패턴을 잘 살려내고 있는 것이, 김병철의 만화 『떴다! 킬러』이다. 겉멋만 잔뜩 든 소매치기 마유광이 겪게 되는 희극적인 사건들은, 그 자신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에게 있어선 한없이 진지(?)하기 그지없다. 그를 전문적인 킬러로 착각하게 되면서 생긴 오해 가운데에서 마유광만은 가끔 마음졸이긴 하지만 제법 유유자적하게 자기 삶을 즐긴다. 이미 한참 전에 졸업했을 고등학생 생활까지 만끽하면서. 나름대로의 재미를 충분히 지니고 있는 이 만화에서, 작가는 아마도 기존의 패턴을 답습한다는 것이 마뜩찮았던 모양이다. 마유광은 이제 그저 그런 단순한 멍청이나 운이 좋은 것뿐인 존재가 아닌, 실은 비밀 조직의 행동 대장격인 킬러 나인이라는 신분이었음이 밝혀진다. 그러나 그런 능력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도, 서로가 뒤바뀌어버린 마유광도 킬러도 저마다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마이페이스를 유지한다. 그런 점에서, 어쩐지 인생에 대한 조소 어린 블랙 코미디가 느껴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나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아등바등 뛰며 서로간에 부딪히는 속에서 자기들의 균형을 만들어갈 뿐이고, 나 자신은 그저 내 길을 걸어가는 것뿐이다. 또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야말로 행복함이다. 아무 생각 없이 기본적 욕망에 충실하면서, 세상을 그대로 걸어가고 있는 마유광의 마이페이스야말로, 어쩌면 지금의 현대인이 가장 바라는 파라다이스로의 입구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무책임도 때로는, 아니 종종 기분 좋은 상태가 되어주는 것이다
<떴다!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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