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빅오
만화규장각 2000.01.01
작품은 ‘이곳은 파라다임 시티,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기억’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곳, 그래서 자신의 과거를 돌려 받기 위해 강도가 되는 이도 있다. 과거를 얻기 위해 미래가 포기되어지는 곳. 특별한 도시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범죄와 그 악을 소탕하려는 정의의 수호자가 등장한다. 이처럼 『빅오』는 미국의 SF환타지에서 흔하게 되풀이되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범죄자는 역할은 벅이 맡고, 로저가 악을 소탕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작가는 진한 먹과 흰색의 명확한 흑백대비를 통해 어두운 세계와 밝은 세계를 구분시키고 있다. 특히 캐릭터의 표현에서 두드러지는 명암대비는 전체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복고풍으로 끌고 간다. 「배트맨」이나 「슈퍼맨」에서 보여지는 슈퍼히어로물의 냄새가 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도 한풀 꺾인 요즘 선과 악, 좋은 분과 나쁜 놈의 대립이 선명한 『빅오』의 스토리는 어찌 보면 고지식하기까지 하다. 모든 것이 다종다양해진 오늘날 독자들이 바라는 만화의 모습도 여러 가지이다. 환타지에 액션이 가미되는가 하면, 순정물인가 싶으면 역사물의 모습도 보여지는 등 장르의 구분이 불분명해졌다. 살아남는 것은 오직 재미,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지속시키기 위한 장치만 남는다. 문제는 그런 와중에도 최소한의 도덕률은 남아있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은 정당하다. 멋이 있는 것은 기본이고 시대의 정신에 비추어 언제나 그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따라서, 선(善)인 주인공에 대항하는 악(惡)의 등장도 필수인 법. 『빅오』의 빅골드에게 부여된 역할은 이처럼 필수조건이다. 단지 점점 개성화 되어 가는 악의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통적인 악(惡)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을 특징 있게 만드는 점이다. 작품은 때때로 기억(記憶)에 대한 소중한 의미를 짚어보게 만든다. ‘아무리 아름다운 추억도 언젠가는 잊혀지는 게 아닐까’라는 이야기는 시간의 의미를 넘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미도 찾게 만든다. 소중했던 사람도 흐르는 시간 속에 기억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 그것은 기억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의 폭력에 굴복해 소중한 과거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원하든 말든 지나간 일들을 잊어버리며 살 수 밖에 없다. 때로 그 잊어버린 시간들은 기억으로 되돌려지기도 하며, 어떤 시간들은 영원(永遠) 속으로 묻히기도 한다. 기억이 소중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과거(過去)가 단지 지나가 버린 시간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소비되어진 시간의 결과로 현재의 자신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억되는 시간은 특히 더 소중하다. 시간이 생존한 기억 속에는 무언가 다른 특별함이 섞여있다. 파라다임 시티에서 기억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기억을 사고 판다는 이야기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점점 더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그에 따라 오래된 것은 기억 속에 물러간다. 그렇게 우리의 모습마저 사라져간다. 우리가 기억하여, 막아야 할 미래의 모습을 『빅오』는 그렇게 보여주고 있다. 흔히 어린 시절에는 꿈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설사 나중에 이루어지지 못할 거창한 것일지라도 그것은 유년시기를 거쳐 푸른 젊은 날을 지탱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리고, 중년과 노년에 접어들면 남는 것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빅오』는 과거로의 회귀(回歸)라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그림체와 딱 그만큼의 기억에 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추억은 희석되지 않고, 언제나 그대로인체 남아있어야 한다. 아프면 아픈 만큼, 기쁘면 기쁜 만큼. 그것이 바로 자신이 현재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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