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철도원 (鐵道員)
만화규장각 2000.01.01
다양한 매체의 발전은 하나의 원작을 가지고 여러 가지 형태의 표현물을 만들게 했다. 특히 근래에 들어와 서사구조를 가진 장르에서 나타나는 상호관련성은 다른 장르로 인해 자신의 장르가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만화의 가장 큰 산업적인 장점,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역시 하나의 원작으로 여러 갈래에서 이용한 사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든 경우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만화의 예가 많다. 전자의 경우 이현세의 『카론의 새벽』을 영화로 만든 『테러리스트』와 허영만의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가 동명의 드라마로 만들어진 것은 그 좋은 사례이다. 『삼국지』는 그 소설의 판본 수 만큼 만화로 만들어진 작품의 수도 많다. 이제 이야기 되어질 『철도원』은 소설을 원작으로 만화와 영화 모두 만들어진 경우이다.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아사다 지로의 베스트셀러 단편집 『철도원』에서 원안을 얻은 만화 『철도원』은 한겨울 눈 내리는 풍경과 함께 조용하게 시작한다. 어느 만화가 시끄럽게(?) 시작할 수 있겠냐만은, 작품이 지배하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시작과 끝이 동일하다. 정년퇴임을 코앞에 두고 있는 오토마츠의 조용한 등장과 함께 시작되고, 그의 죽음으로 조용한 분위기로 막을 내린다. 만화가 보여주는 순백의 세계는 특별하다. 원래 종이 자체가 가진 흰색의 느낌을 넘어 자연이 가진 눈(雪)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은 순전히 작가의 능력이다. 영화가 살아움직이는 자연의 영상을 사실 그대로 인간의 눈(目)으로 전달하는 대신, 만화는 칸이라는 공간 속에 자르고 오려 그려서 느낌으로 전달해야 한다. ‘철도원이니까 집안 일로 울 수가 없습니다’ 라는 오토마츠의 말은 자신의 역할에 너무나 충실한 주인공의 모습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눈 내리는 밤, 손님 한 명 타지 않은 열차지만 역에 나와 그것을 기다리는 오토마츠의 모습은 어쩌면 지난 시절, 당신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온 우리들 아버지의 모습일런지도 모른다. 돈 적게 벌어온다며 투덜대는 아내와 주말에 함께 놀아주지 않는다고 투정부리는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지켜온 우리의 아버지들. 『철도원』이 보여주는 묘한 향수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서정곡이다. 도시화가 가져다 준 편리함, 그 속에 과거의 것들은 묻혀져간다. 흐르는 시간 속에 사람들의 기억도 지워져가고, 자기 몫을 다한 것들도 사라져간다. 그것이 낡은 열차든, 정년을 채운 늙은 역장이든 다음 세대를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애뜻한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개개의 사정을 모두 알 수도 없거니와 굳이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어딘가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거니 생각하고서 살고 있는 것이다. 『철도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딘가에 이러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이야기를 누가 전해주느냐에 따라 개그가 되기도 하고, 진지한 토의가 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같은 줄거리를 가진 『철도원』이지만, 영화는 영화 나름의 분위기가 있고 만화는 만화만의 세계가 있다. 소설이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이야기였다면 만화는 만화가 나가야츠 타쿠미의 철도원의 삶을 그린다. 각각의 삶은 동일하지 않다.
<철도원 (鐵道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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