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느티나무
만화규장각 2000.01.01
현대 도시 사회의 비인간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으리라. 도시에서 사람들은 톱니바퀴처럼, 퍼즐조각처럼 움직여야하며, 조그마한 일탈이라도 있을 경우에는 그에 해당하는 피해를 본인에게 이자까지 붙여서 간접적으로 되돌려준다. 사람들은 비록 물질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만신창이가 되면서 계속 톱니바퀴의 일부로서 살아간다. 몸의 피로는 쉬면 그만이지만 정신적인 피로는 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도시 사회의 탈출구로서 사람들이 꿈꾸는 것은 물질적 여유는 없어도 넉넉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전원 생활이다. 사장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화풀이하는 상사도 자식 과외비 문제로 바가지를 긁는 아내도 없는, 맑은 공기를 들이마쉬면서 가족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아서 일을 하는 그런 전원 생활. 특히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을 일구어 온, 그리고 그런 변혁을 겪어 온 40~50대들에게 있어서는 그런 전원 생활은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닌 단 20~30년 전에 스스로 겪어온 이야기이니 만큼 더욱 절실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 작품은 성인 잡지인 「빅 점프」에 연재된 것들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인물의 이미지와는 전혀 동떨어진 작품이다. 이 만화에서 폭력과 섹스 따윈 기대하지 말라. 이 작품이 성인잡지에 연재된 이유는 이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고된 사회 생활과 넉넉한 시골 사회를 겪어보고 이해할 수 있는 성인들뿐이기 때문이다. 『느티나무』는 추억의 이야기이다. 시골 학교 운동장 한켠에 느티나무가 서있고, 그 느티나무를 끼고 추억을 이야기하며 진행된다. 삶에 지친 성인들이 한번쯤 꿈꾸는 이상적인 전원생활. 말하자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 만화는 최고의 작품이 된다. 토속적인 시골 냄새와 인간적인 맛이 살아있는 그림도, 부드럽고 조용하게 넘어가는 스토리 진행도, 등장인물들의 시적 표현도 모두 일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97년 한국 만화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작가 오수는 스토리 작가 최금락과 그림을 그리는 황재모, 두 사람이 만든 필명이다. 86년 『돌배군』으로 유명한 신영식 화백 문하에서 만난 두 사람은 88년 『어느 개인 날 아침』으로 데뷔하면서 오수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되고 14년째 같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스토리 작가, 그림 작가로서 따로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역시 두 사람은 ‘오수’일 때 최고의 작품을 낸다. 오수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이큐 점프」에 8년 동안 연재하면서 잡지 최다 연재기록을 세운 『천재들의 합창』이겠지만, 사실 그들은 성인작가라고 부르는 게 어울린다. 특히 그 중에서도 성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서정성을 묘사하는 데 특히 뛰어나며, 그 능력은 본작 『느티나무』에서 극치를 이루게 된다. 엄밀히 말해 이 작품은 절대로 현실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작품이다. 값싼 중국산 농산물 로, 수곡추매가 인하로, 젊은이가 없는 현실 때문에 고통받는 농민들의 고통은 어디에도 그려져 있지 않다. 작가가 머리말에서 밝히듯, 이것은 전원 생활을 실제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작가가 자신만의 이상향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향에는 부정적인 현대 도회 생활의 반대만을 집어넣었다. 아름다운 추억이, 넉넉하고 여유로움이, 인정 많은 사람들이 있다. 마지막화 『설국』에서는 선계(仙界)로까지 묘사되기도 한다. 때로는 지나친 서정성에 거부감을 가지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뭐 어떠한가. 이 작품 속에서조차 세속적인 도시 생활을 잊지 못한다면 그 또한 불쌍한 일일테니.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낸 느티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면 되는 것이다. 그 그늘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가보자. 적어도 그 나무 아래에서는 맑은 공기가 당신을 감쌀테니까.
<느티나무>
작품 정보 보기
  
만화리뷰
비상하는 꿈은 아름답다 : <나빌레라>
김진철
2021.11.25
〈지역의 사생활99〉 : 대체 불가능한 발화의 공간들
이한솔
2021.11.24
관계는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 <도롱이>
최기현
2021.11.23
한낮의 태양 빛에도 발밑엔 늘 그늘이 있다 :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
주다빈
2021.11.22
나를 응원하는 세포들 머리 위로 똥글뱅이! <유미의 세포들>
김민서
2021.11.22
<민간인 통제구역>이 신인 만화상을 수상한 이유
최정연
2021.11.19
<더 복서> : 한국 복싱 만화의 뉴웨이브
김경훈
2021.10.26
아름다운 싸움을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격기3반〉
이한솔
2021.10.25
호구(虎口) 대 호구(護具) : <고교호구왕>
김진철
2021.10.20
축구에서 ‘깐부’가 필요한 이유 : <빌드업>
최기현
2021.10.19
재능은 아름답지 않지만 : <기프트>
김민서
2021.10.18
<오목왕> : 바둑알 하나가 가진 수천 개의 가능성
주다빈
2021.10.18
차별화된 한국만의 스포츠 만화, <가비지타임>
최정연
2021.10.13
요연한 보통 : <이토록 보통의>
주다빈
2021.09.27
지적 낭비의 즐거움 : <에이스 하이>
김경훈
2021.09.24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표상 : <삼별초>
김진철
2021.09.17
천천히 쌓이는 서사의 매력 : <식스틴>
김민서
2021.09.17
숨어서 보는 명작, <오늘의 순정망화>
최정연
2021.09.15
되풀이될지도 모르는 이슬람 여성의 이야기, <페르세폴리스>
최기현
2021.09.14
<왕세자 입학도> : 군자의 바른 마음으로
이한솔
2021.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