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오! 한강
만화규장각 2000.01.01
한국 만화계에 있어서 허영만의 작품 활동은, 그 흐름을 순차적으로 짚어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의 1987년작 『오! 한강』은 특히나 하나의 분수령으로 삼을 만 하리라.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내면적 가치의 측면은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 만화에 있어서 대중에 크게 어필할 수 있고 또 가장 주류에 속하는 작가가, 이토록 언더 그라운드--국내 만화계에서 이 한마디가 가지는 의미는 실로 복잡하고 모순을 지니고 있지만--적인 만화를 그려내었다는 것만으로도 특기할만 하다. 고매한 사상가나 준엄한 평론가의 시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이 만화에는 불만스러울(?) 부분들도 있다. 이른바 민족적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이 만화를 뜯어보는 사람들로부터, 『오! 한강』은 사상적 타협을 시도한 어정쩡한 파생물이라 비판당하는 점을 생각해보자.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무거움(분위기가 아닌 내용물 측면에서)을 고려한다면 그와 같은 시각에서 조명하는 것이 당연시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되려 그런 고집으로 인해 『오! 한강』의 가치가 획일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크게 『오! 한강』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층계급에 속해 있던 이강토가 해방전후의 혼란을 거쳐 이데올로기의 격동을 겪는 시대. 사상가이되 사상가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예술가로서 순수할 수 있었던 이강토의 이야기이다. 후기에 들어서면 강토의 아들 선주를 중심으로 화두가 다루어진다. 미술대학생으로 광주항쟁을 겪고 군 생활을 거쳐, 제대후 민중예술이나 인천사태등과 접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참고로 코미디 터치로 풍자하고 있는 『대머리 감독님』에서도 그렇지만, 『오! 한강』 후반부를 훑어보자면 모 전직 대통령의 역사적 정체성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이 상당히 격렬하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자면, 이만큼 민감한 소재를 한국 만화계에서 당당히 거론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 농을 섞어 표현하자면, 『오! 한강』과 같은 만화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검열이나 소재의 제한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라 느껴질 정도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그 평가가 극단으로 양분될 소지가 있다. 한쪽에서는 불순하고 선동적이라는 소리가, 그 반대편에서는 이 만화가 건드리고 있는 노선이 미적지근하고 타협적이라는 비판이 가해진다. 그러나 전자의 미숙하고 성급한 평가도 그렇거니와, 후자의 비평에 대해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 비평은 만화를 즐기는 독자,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점을 과연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쩐지 ‘민중적’이라는 수식어가 하릴없게 느껴진다. 물론 사상적인 논쟁을 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그럴만한 소양도 없거니와 이 만화에 대해 평하고자 하는 글의 본래 의도와도 벗어난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 한강』 또한 만화의 하나라는 점이다. 이것은 형식이나 미디어 형태만을 주장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만화라는 어감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어리광서린 항의도 아니다. 허영만이 『오! 한강』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사상이며 가치관인지 검증하는 행위가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한 사람의 만화가가 그린 이강토의 일생, 선주의 일생으로 보는 것은 과연 그렇게나 의미없는 일인지 고민스럽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한없이 괴로웠던 시기, 대체 무엇이 사상이고 무엇이 이데올로기인가 하는 짐승같은 화두 속에서 몸부림쳤던 시대를 그려준 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런지. 일방적으로 답을 제시하며 독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등장인물들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몸부림치는 작품이기에, 읽는 이들은 안도와 부담을 더불어 느끼며 함께 고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 한강』은 이미 그 자체로서 충분하며, 거기에 필요 이상의 짐을 지우지 않았으면 싶다.
<오!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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