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신명기 (神明記)
만화규장각 2000.01.01
정상 중단될 경우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한다. 『천국의 신화』처럼 제도적으로 표현의지를 상실시키는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작가 스스로가 작품을 감당하지 못해 도중하차되는 경우 독자들은 실망감을 누를 길이 없다. 무엇보다 연재할 지면이 없어져서 독자가 작품을 볼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보다 허탈할 수 없다. 유시진의 『신명기(神명기)』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재 나온 단행본 2권까지로는 작품이 가진 깊이나 호흡의 길이를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이제 막 이야기가 시작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 분량으로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한다거나 주제를 찾아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분명한 것은 작가 스스로 ‘드디어 시작해 버렸다’로 인사말을 시작하고 있는 바와 같이 대단한 스케일을 보여줄 듯한 기세이다. 그 에너지를 모두 볼 수 없다는 것은 이 작품이 비운의 작품으로 남을 만한 이유가 된다. 스토리는 천계와 지계, 수계 등 세계(世界)의 배경에서부터 시작된다. 소멸과 생성, 파괴와 창조 등 존재에 대한 탐구도 사건의 발단에서 나타난다. 천족과 마족의 갈등, 타마라의 탄생 그리고 상제와의 불협화음 등을 통해 서서히 거대한 사건을 준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동천과 서천의 갈등은 보여주지 조차 않았으며, 황금수와 마즈다의 권위 등은 언급만 되어 있을 뿐이다. 원래 태초(太初)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가 있거니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가진 강한 선(線)이 이야기의 성격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러나, 세계의 근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작품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숙제를 남기고 무작정 유배에 들어가 버렸다. 애초에 모든 신화는 인간이 상상해 낸 신들의 공간이다. 그래서, 능력이 다를 뿐 외모에 있어서는 신과 인간의 구별이 없다. 신들 사이에도 인간들처럼 계급과 직책은 나누어져 있으며, 그에 따라 의무와 권리도 나누어지게 마련이다. 동․서양에서 공통으로 드러난 신화의 모습은 원형으로 추출되고, 이것은 인류의 재산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에도 전승된다. 『신명기(神明記)』 역시 그 계보 속에 들어간다면, 이제 오디푸스의 죄를 대속할 인물은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여러 인물 가운데 천족과 마족의 피를 함께 가짐으로서 태생부터 고통을 내재한 타마라가 가장 유력해 보인다. 비천한 신분이지만 그 능력은 출중하므로 시험을 헤쳐나갈 힘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타마라가 여성이라는 점인데, 이는 현실에서 가장 억압받는 계층을 작품 속으로 투영하기 위한 작가의 숨은 의도일지도 모른다. 가장 서럽고 핍박받은 자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작품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내놓는 예상일 뿐 작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명기(神明記)』가 안고 있는 한국 만화의 현실은 결코 신명나지 못한다. 작가 개인적으로는 연재중단의 아픔이 『신명기(神明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에 연재되던 『쿨핫』 역시 중도에 포기해야 하는 경험을 했다. 상상력의 나래를 미처 다 펼쳐보지도 못한 채 안으로 삭혀야 하는 작가도 피해자이며, 멋진 작품을 볼 수 있는 권리를 은연중에 박탈당한 독자도 피해자이다. 정작 가해자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신명기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작가 역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모종의 때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을 다하지 못한 채 잠정적으로 끝나버린 작품 『신명기(神明記)』는 한편으로 더욱 독자들의 뇌리에 남아있다.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작품으로 말이다. 어서 그 결말이 보여지기를 기대해 본다.
<신명기 (神明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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