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쿨 핫 (Cool Hot)
만화규장각 2000.01.01
『쿨핫』은 작가 유시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현대를 배경으로 한 만화 중 비교적 다양한 시각을 통해 여러 번 비평에 오른 만화이지만, 지금까지의 비평이나 감상에 있어서는 작품 내에서 다양하게 표현된 자아의 양상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화제가 공급되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작품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순간 강하고 고집스러운 자의식 너머로 느껴지는 "온기"가 그전까지 시선을 끌어오던 소외된 자아의 무게만큼이나 절실하게 다가오게 한다는 점에서, 『쿨핫』은 작품에 대한 애정이 곱씹을 때마다 더해지게 만드는 흔치 않은 만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복수의 캐릭터들이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서로 다른 관점을 통해 공유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그렇기에 작품 내에서 각각의 트랙을 구성하고 있는 캐릭터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 굉장히 다른 성격을 가진 듯이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실제 그들 개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대체적 "입장"에 있어서는 서로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는데, 한 마디로 줄여 그것은 "방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이루다"는 여성으로서 태어난 자신과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성을 가진 자신을 공존시키기 위해 철저히 그녀의 직감이 원하는 것만을 위주로 행동하는데, 어쩌면 지극히 단순한 성격이라고 하겠지만 그 성격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데 있어 단 한치의 양보도 없는 고집을 보여준다. "김동경"이란 캐릭터는 작품 인물 중 가장 뚜렷하게 방어 의식과 폐쇄성을 보여 주는 인물로서 인간관계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가지고 타인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어떠한 관계도 원치 않는 단절된 인간형이다. "선우람"과 같은 경우에 있어서도 그는 친절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장하여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데, "김동경"과는 달리 그의 방어적 자세는 그의 내부에 존재하는 자아에 대한 혐오감에서 비롯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아를 숨기는 것으로 인해 외부로부터 상처받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 자체에는 두 캐릭터 사이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이렇듯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자아는 세계 혹은 사회라고 불리는 것들로부터 늘 한 발씩 떨어져 있고, 자신을 침해하려는 어떤 요소들에 대해서든지 그들 각자의 방식으로 선을 그어 들어올 수 없게 방어한다. 그 결벽적으로 고립된 자아와 외부 세계에 대한 냉소는 유시진 작품의 전반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쿨핫』에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기에 그러한 배타성이 이 작품으로 하여금 많은 독자들의 시선을 끌게 한 요인이 되었다는 설명 또한 가능하게 만든다. 실제로 유시진 홈페이지(www.sijin.co.kr)에 올라와 있는 많은 양의 게시물 중에는 주인공들의 고독과 닫혀진 마음에 공감하는 이들의 글이 수도 없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쿨핫』이라는 작품 내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눈을 끌었던 "방어"나 "고립"에 대한 부분은 아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 전반에 흐르는 배타와 선긋기 속에 숨겨진 "따뜻한 시선"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냉소와 고독이 사조가 된 세상을 살고 있으며, 그러한 사상은 바로 이 순간 인터넷상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그들은 쉽게 사랑이나 인간의 교감에 대해 비웃음을 흘리고, 사랑이나 교감은 무지몽매한 이들의 헛된 꿈이라고 쉽게 치부한다. 그러나 이렇게 일상적으로 유포된 냉소에 감동을 느끼거나 공감을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이 그렇게나 주창하는 자아의 무게와 고독 안에 "대항하는" 치열함이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독에서 구원받지 못한다"라는 말을 불변의 진실인양 쉽게 내뱉는 사람은 많지만, 다수의 경우에 있어서 단지 그들은 그 말이 지니는 무게에 둔감하기에 그다지도 간단히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감적으로 인식해 내고 있는 것이다. 『쿨핫』이 주목받는 "작품"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만화 안에서 고립되고 팽창하는 자아의 무게가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심각하게 고독한 "자신"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이고, 자신을 짓누르는 모든 무게에 민감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인간은 고독하다" 라고 말할 때, 독자는 자신의 사상마저 송두리째 던질 정도로 공감해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고독한 자아들이 불완전하게나마 삶을 유지시키기 위해 최종적으로 구가하는 것의 근원은, 바로 현대 사회의 많은 이들이 외면하기 시작한 "온기"이다. 유시진은 바로 그 온기가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노련하게 파악하고 있는 작가이고, 그래서 『쿨핫』은 쓸쓸하고 자아의 내압을 견디지 못하는 자들을 매력적인 향기로 불러모으는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의 결말이란 전체를 아우르는 시선에 담긴 온기와는 별도의 문제이기에, "쿨핫" 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미래가 반드시 행복에 연결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결말이 되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성찰은 누구보다도 진지하다. 그 진지함의 근원에 "더 나은 방법"에 대한 가능성을 접어두지 않는 온기가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소중한 발견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쿨 핫 (Cool 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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