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시티헌터 (CITY HUNTER)
만화규장각 2000.01.01
도시를 헤매는 외로운 늑대 한 마리가 있다. 때로는 고독에 젖어, 때로는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이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그것도 잠깐, 미녀가 등장하면 그의 눈빛은 풀리고, 입은 벌어져 침이 흘러내린다. 연신 꽁무니를 쫓아다니다가 언제나 그녀들에게 따귀를 맞지만, 오늘도 불굴의 의지로 이 도시를 헤매고 있다. 호조 츠카사의 『시티헌터』가 처음 국내에 들어왔을 때(90년대 초반, 해적판) 그 열기는 대단했다. 이제까지 한국만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내용. 걸핏하면 자신의 무기를 내미는 남자주인공의 열혈 애정공세도 물론이거니와 그를 감시하는 여주인공의 무시무시한 1톤 망치가 보여주는 세계는 지금껏 어린애들 코 묻는 돈이나 뜯어내는 만화의 모습과 다른 것이었다. 소년과는 구별된 또 다른 독자층을 위한 만화, 유쾌한 폭력(暴力)과 성(性)을 소재로 한껏 무장된 만화가 바로 『시티헌터』였다. 작품은 보디가드로부터 청부살인 등 프로페셔널을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에바 료와 그의 조수 카오리를 주요 인물로 하여 매회 다른 에피소드로 구성되는 옴니버스 형식을 띄고 있다. 가끔씩 앞선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하여 주인공들과의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특히, 료의 고객이 되는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여자여서 료와의 로맨스가 줄을 잇는다. 특별한 공식은 그 여성들이 처음엔 료를 싫어하다가 사건이 해결되는 시점에서는 언제나처럼 료에게 반해 있다는 점이다. 딱지를 맞다가 결말에는 언제나 주인공다운 매력덩어리로 돌아가는 료의 모습에 독자들은 묘한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질투의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는 카오리가 있다. 주인공 사에바 료는 직업도 그렇거니와 전형적인 마초의 상징이다. 총을 다루는 놀라운 솜씨와 강인한 체력의 완벽한 조화로서 사건을 종료시키고 나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언제나 미녀들의 육체들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작품은 주인공에게 그 이상의 선을 넘지 못하게 만든다. 한번 사냥꾼이면 계속 사냥꾼인 채로 살아가게 한다. 그러나, 한번 더 살펴보면 작품 속에서 료가 보여주는 남성의 능력은 그가 매일처럼 외치는 성적인 기능과는 다르다. 여자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그의 겉모습 뒤로 예리한 헌터의 눈빛이 있다. 겉으로는 여성에 대한 무한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그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신사의 모습 그 자체이다. 그래서, 료가 가진 남성의 매력은 마초의 그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악한(惡漢)에게 가차없고 여성에게는 부드러운 전형적인 기사도에 있다. 작품의 전체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상품화와는 상관없이 주인공인 료가 가진 매력은 그러하다. 료 만큼 카오리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남성적인 외형과 털털한 성격 너머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순정(純情)을 간직하고 있다. 90년대까지 지루하게 자리잡고 있던 순종적이고 조용한 여성캐릭터와는 정반대의 모습인 외형과 자신이 사랑하는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는 지고지순함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해적판을 통해 사에바 료라는 이름보다는 우수한으로 더욱 잘 알려진 시티헌터는 그 만큼 폭넓은 인기를 보여주었다. 2000년에 35권이 완결이 되고나서도 료와 카오리의 인연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열망은 2002년 완전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판하게 만든다. 대원에 이어 다시 학산에서 나오는 것을 통해 작품이 얼마만한 인기를 구가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보디가드, 킬러, 스파이...위협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시티헌터』 속에 위협적인 분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가진 상처를 가리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도시의 사냥꾼만이 있을 뿐이다.
<시티헌터 (CITY H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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