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무당거미
만화규장각 2000.01.01
『무당거미』를 떠올릴 때, 필자는 어떤 종류의 섬짓한 한기(寒氣)를 느껴버린다. 척추를 타고 오는 그것은 무당거미 이강토의 산발한 듯 풀어헤친 머리와 신들린 눈빛에서부터 오는 것이었으며, 공포나 두려움과는 선을 달리하는 짜릿함을 감추고 있다. 그 감정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허영만의 만화에는 더러움이나 구질구질함이 리얼하게 살아있다. 혹여 오해가 있을까 싶어 첨언하지만, 이것은 결코 비하하려는 의미가 아니다. 예를 들어 그의 『각시탈』의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반쯤 미친 여인네가 낡은 그릇에 담겨진 고구마를 발로 밀며 먹으라는 장면에서는 정말로 흙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한 생생함이 남아 있다. 비참함과는 틀린 그것은, 『무당거미』안에서도 이강토가 걸치고 다니는 땀투성이 털외투라는 소품을 통해 살아나 있었다. 그런 리얼함 안에서 무당거미 이강토가 보여준 삶은 어떤 자극으로 다가왔던가. 가장 배고픈 스포츠라는 권투, 주먹으로 가격하고 또 가격 당하면서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원시적 스포츠 안에서 과학적인 계산성을 요구하는 권투. 『무당거미』야말로, 이런 권투에 대한 아스라한 아픔들과 힘겨움을 담고 있는, 가장 손꼽힐만한 수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만화에서 무엇보다 민감하게 와 닿는 부분들은, 그토록 선연히 빛나고 있는 독기(毒氣)이다. 그것은 잘 벼린 검처럼 날카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쉽사리 풀리지 않는 주인공의 ꡐ응어리ꡑ로부터 파생되었다. 가히 ꡐ세련된 귀기(鬼氣)ꡑ라 불러도 좋으리라. 이강토의 원한과 울분은 아무 때에나 의미 없이 남발하는 분풀이가 아니다. 풀어야 할 한 점을 향해 결집된 마음 속 응어리들은, 잘 정제되어 독살 맞게 한(恨)으로 퍼져나간다. 원작 속에서 이강토가 정말로 한을 풀어내듯 웃는 장면이 불과 한두 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해보자. 그 외의 순간들은 모두 음울한 무거움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응어리들이 일순간에 풀려져 흩어나가는 것은, 주인공의 권투 시합을 통해서이다. 무엇보다 사랑했던 여인 제이미를 잃고서, 토니 산타나를 향해 뻗어냈던 이강토의 일격이 바로 그러했다. 마찬가지로, 이 『무당거미』라는 만화야말로 작가 허영만의 일생에 있어서 손꼽힐 정도로 ꡐ신들린ꡑ 일격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그 마무리 부분에 있어서 도력(道力)이나 정신에너지와 같은 야릇한 소재를 등장시켰던 점은, 어쩐지 허영만 답지 않게 느껴져 고개가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또한 작가 나름의 작품세계가 발전되던 도상에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실제로 ꡐ스트레이트냐 훅이냐ꡑ의 에피소드에서 보여주듯이, 『무당거미』 전체를 관철하고 있는 권투 이론들은 절로 독자들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 정도로 치밀했다. 개인적으로는 ꡐ무당거미와 노랑머리ꡑ의 에피소드에서 이 작품이 끝나주기를 바랬었다. 어딘가 이 에피소드는 걸작으로 꼽히는 일본 만화 『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와 대비성을 느낀다. 정작 그 만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ꡐ내일ꡑ을 찾아내지 못했었다. 그에 비해 『무당거미』의 이강토는 아버지에 대한 회한(여기에는 비열한 음모를 꾸몄던 적에 대한 원한과 더불어, 생전의 아버지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서린 회한이 뒤섞여 있다)을 통해 더욱 비극적인 어두움을 지니고 있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이미 죽고 없어서, 더 이상 그가 용서받을 방법이란 없다. 그리고 노랑머리 지미와의 대전을 통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산산히 부서져버린 이후, 그 재조립 과정에서 이강토는 아버지의 사진을 통해, 그 자신을 스스로 용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찬란한 재생(再生)이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정서라 주장되면서도, 마이너스적 이미지로 대변되는 한(恨)이라는 한마디가, 결코 그것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으로 생각된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한이란 것은, 가슴에 품고 응어리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고 훌훌 털면서 가슴을 쓸어 내릴 대상인 것이다.
<무당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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