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선녀강림 (仙女降臨)
만화규장각 2000.01.01
과거 이명진이라는 작가가 한국만화계에 혜성처럼 등단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만화독자들에게, 유현이라는 여성작가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명진의 판박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고 3학년때 잡지공모전을 통해 데뷔하여 93년 「소년챔프」에 『제자리 찾아주기』란 단편으로 데뷔한 이후 『네오 에덴』(94년), 『원더맨』(96~97년) 등의 연재로 주목받다가 청년지「영챔프」를 통해 『선녀강림』(98년~)의 연재를 시작한 그녀는 만화의 성향에 있어서나 권당 2만부 정도씩 팔려나간 인기몰이에 있어서나 젊은 독자층에 절대적인 지지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에서까지 여자판 이명진으로 불릴 만하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인기가 있고 없고 책이 팔리고 안 팔리고 팬클럽이 존재하고 아니고를 다 떠나서, 『선녀강림』은 비록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라는 고전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면으로 보나 전형적인 일본만화의 아류로 보인다는 점에서조차 이명진의 판박이이다. 이명진의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에서 주인공의 친구역인 김태민의 첫 등장 장면에서 일본식 승려복이라는 터무니없는 복장을 하고 있었을 때 느꼈던, 양복입고 갓 쓰는 어색함이 똑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아쉽지만 그것이 진실이고, 『아앗 여신님』계열의 복사판이라는 식의 비아냥거림을 들어도 그다지 반박할 거리를 찾기가 힘든 것도 그 때문이다. 황미나의 루트를 잇는 소년만화 전문의 여성작가라는 점도 좋고, 장르의 중성화와 일탈이라는 파괴도 재미있다. 『굿time』의 김은정, 『호협애사』의 엄혜진과 더불어 신세대이기에, 여성만화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발랄하고 깜찍하면서도 남성들에게서는 찾기 힘든 위트 있는 개그도 좋다. 그러나 고3의 어린 나이에 프로로 데뷔하여 활동했다는 것은, 본인에게나 만화에게나 상당히 부담이 따르는 일이 아니었을까. 물론 단지 어리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림의 기술’이라는 것을 익히기에는 나이는 별 상관없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나이를 결코 헛 먹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폭발하는 감성과 센스를 앞세운 만화라 할 지라도 어느 정도의 독자적인 깊이와 철학은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든다. 물론 재미는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라면 - 물론 출판사로서는 그게 전부라도 상관없다. 재미있는 만화는 팔리니까. - ‘작가’로서 모처럼 얻게된 명성이 너무나 아깝지 않을까. 상당수의 신세대 만화가들이 예쁘장한 그림으로 무장하고 있으면서도 그 알맹이가 텅 비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이들이 고여있는 웅덩이와 같았던 한국만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간에 떠도는 ‘차세대 한국만화를 이끄는 기수들’ 이라는 표면적인 찬사를 그대로 납득하기에는 그 시스템 자체도 그 결과물도 너무나도 어설프고 얄팍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팬들의 인기는 물론 무시 할 수 없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이들에게 정말로 한국만화의 미래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질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선 솔직히 회의적이다. 물론 그 짐은 누가 메라고 한다해서 짊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21세기에도 ‘한국만화’라는 것이 독자적인 장르로 존재하고 싶다면 누군가는 그 짐을 걸터메어야 할 테니 말이다.
<선녀강림 (仙女降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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