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용의 『그의 나라』를 보고있으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것은 『고르고 13』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 사이토 타카오의 『서바이벌』이다. 마치 『엄마 찾아 3만리』처럼 가족을 찾아 각지를 떠도는 주인공의 고난의 역경이 지극히 소년만화다운 전개를 보여주는, 제목 그대로 ‘살아남는다’라는 의미에 충실하게 전개되는 소년 토오루의 자기 성장기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지난 세기말에는 Y2K의 공포를 배경으로 한 『서바이벌 2000』이라는 이름의 신작으로 잡지 「소년 선데이」지상에 잠시 부활하기도 하였다. 『그의 나라』도 언뜻 보기에는 『서바이벌』이나 매한가지인 재난만화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인재’(人災)를 그린 『그의 나라』와 ‘천재’(天災)를 그린 『서바이벌』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의 나라』에서 그려지는 공포가 보다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닫는다는 점에 있다. 1970년대와 2000년대라는,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차를 염두에 두고 두 작품을 비교하더라도 이른바 ‘서바이벌’이라는 부분에서의 디테일은 극화왕 사이토 타카오의 명성에 걸맞게 『서바이벌』쪽이 월등하다. 지진과 화산, 맹수와 쥐떼같은 자연재해적인 요소들이 토오루 소년을 덮칠 때마다 그 상황을 어떻게 탈출해 가느냐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 『서바이벌』에 비하면 『그의 나라』에서의 쌍판의 섬생활 부분은 마치 외국의 오락방송인 ‘서바이벌’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한가롭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나라』와 『서바이벌』은 엄연히 다른 만화이고 그리고자 하는 바도 다르다. 적어도 일본침몰이라는, 실제 상황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가정을 바탕으로 출발하고 있는 『서바이벌』에 비하자면 『그의 나라』에서 그려진 중동분쟁으로 말미암은 세계대전으로의 확대는 사실상 지금 현재 진행중인 그러한 사건이다. 바로 그 30여년의 시간차로 인해 실제로 내일 당장 세계대전이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위태로운 세상에 살게 된 ‘현실 속의’ 우리들에게는 1970년대에 토오루 소년이 겪은 『서바이벌』보다는 『그의 나라』에 쌍판쪽에 더 공감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쌍판이라는 캐릭터를 지켜보기란 조금 괴롭다. 『내 파란 세이버』에서 특기이기도 한 현실과 허구가 한 화면 속에 섞인 캐릭터의 감정묘사로 생명에 대한 성찰을 통한 한 시골소년의 자기 성장기를 멋지게 그려냈던 박흥용이 후속작 『그의 나라』에서도 그 특유의 감정표현 방식을 잘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허구 속에서 아예 두 사람의 인물 - 홍씨 백씨로 갈라져 버린 쌍판의 행동거지는 언뜻 보기에는 상당히 ‘만화적’이고 그래서 이 만화로 박흥용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어색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별 수 없이 돌팔매질로 사람까지 죽여야 하는 극단상황 아래서, 홍백의 두 색깔로 갈라진 쌍판의 자아가 대변하는 가상과 현실이 혼재하는 내면 세계는 보면 볼수록 사람을 오싹하게 만든다. 비슷한 극한 상황을 그린 일본만화 『드래곤 헤드』의 피범벅으로 그려진 심리와는 또다른, 문명의 멸망을 이야기하면서 성경이라는 아이템을 곳곳에 배치 한 것 역시 지극히 한국만화답다면 한국만화 다운 선택을 취한 조용하면서도 깨끗한 공포는 과연 ‘청년지’라는 베이스를 잘 찾았다는 느낌을 준다. 과연 그 끝은 어떻게 마무리지어 질 것인가. 2002년 4월 현재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연재를 계속중인 『그의 나라』가 역시 2002년 4월 현재 무섭게 진행중인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분쟁과 과연 어떻게 맞물려갈지 두려운 마음으로나마 계속 지켜보고 싶은 것은 결국 인간의 호기심이라는 못된 감정의 발현이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