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만화규장각 2000.01.01
작가 박흥용은 도서출판 대원의 격주간 성인 만화잡지 「투웬티 쎄븐」에 연재된 이 작품『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으로 1996년 문화관광부 선정 한국만화문화대상 저작상을 수상했다. 2002년 바다출판사에 의해 3권의 단행본으로 복간된 이 만화는, 작가 박흥용의 이전 작품들과 같은 맥락에서 깊이 있는 자아 성찰과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연재 당시 게재 잡지의 상업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독자적 입지를 구축했으며 작가의 주제 의식을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朝鮮) 선조 때, 벼슬하지 못한 시골 선비의 서얼로 태어나 불평등한 사회를 비관하던 이 작품의 주인공 “견주”는, 어느 날 시각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침술의 달인이자 당대 제일의 검객으로 인정받고 있는 기인(奇人) “황정학”을 만나 그의 제자로 길을 따라 나선다. 이후 견주는 황정학과의 여정 속에서 형리를 죽이고 관군에게 쫓기는가 하면, 산적들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등 파란을 겪는 과정에서 한계를 극복하고 삶과 무예를 아우르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은 바로 이처럼 숙명적으로 주어진 불평등에 맞서 한 사람의 구도자로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비유적-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테면 이 작품의 제목인 “구르믈 버서나는 달처럼”에서 “구름”이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역사적-사회적 억압과 불평등을 상징한다면, 그것을 벗어나는 “달”은 치열한 고민과 참여, 그리고 자기 반성 끝에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고 초월적인 의지를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개체로서의 인간을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이 작품은 서얼, 기생, 장님, 도적, 방짜쟁이, 환쟁이, 그리고 역모의 수괴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제각기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모습들을 통해 오늘날의 독자들이 보고 그 역사적 배경을 뛰어 넘어 공감하게 만드는 매력을 갖는 것이다. 더불어 지극히 사실적인 시각에서 역사적인 문제를 조명하는 이 만화는, 계급과 권력에 대한 통찰을 앞세워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세밀하게 파고드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선(禪) 문답을 통해 지극히 철학적인 고민에 독자들의 참여를 요구하고, 또 그 와중에 등장인물들의 격정적인 감성을 자연스레 흘려보내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특히, 마치 여백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동양화를 연상하게 하는 연출은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자세하게 나열하기 보다 오히려 독자들에게 직관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유려한 펜 선과 함께 시각적으로 생소한 관점에서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는 모던한 기법으로 동양적인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한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한국 전통 무예의 외피(外皮)를 두르고 임진왜란 바로 직전의 혼란상황을 배경으로 한 까닭에 일견 무협물로 착각하게 하는 이 작품은, 그러나 주인공의 계급적 한계와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스스로 설정한 한계를 넘어선 “성장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경이나 등장인물들이나 그들 사이의 갈등 관계 같은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나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에 대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딱히 명확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은 채 종결되었으며, 따라서 이 만화는 작가 박흥용을 다른 작가들과 구별짓는 “과정을 중시한 이야기 구조”와 “관습적인 표현을 탈피한 자유분방한 스타일”, 그리고 “작가주의적 실험정신”이 대표적으로 나타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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