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용오 (勇午)
만화규장각 2000.01.01
하나를 얻기 위해서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일례로 남녀관계에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친구와의 우정을 포기해야 경우가 흔하다. 소년이 성장함에 따라 성인의 권리를 얻는 대신 어린 시절의 권리는 당연히 포기되어야 한다. 포기되어지는 것과 얻어지는 것의 함수관계가 일정하지는 않다. 어느 것이 손해인지 혹은 어느 것이 이익인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 수 있는 법이다. 성장과정에서 벌어지는 포기와 획득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라도, 사회에 나가 이루어지는 계약관계에서 경우에 따라 아무런 포기 없이 원하는 바를 획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적절한 대인관계와 적절한 어휘사용, 그로부터 생겨나는 절대적인 믿음에 의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을 믿게 하는 기술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부여된 재능이 아니다. 한눈에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교섭인이라는 직업도 존재할 수 있게 만든다. 즉, 타인에게 믿음을 주는 재능이 없는 자는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게 된다. 『용오』에게 부여된 신의 재능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교섭인의 일은 때로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다. 때로 국가 주요인사(人士)의 목숨을 담보로 하기도 하며, 때로 엄청난 돈이 걸리기도 한다. 목숨이나 돈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지라도 그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명예나 자존심이 교섭 대상의 되는 것도 당연하다. 프로중의 프로가 그 빛을 발할 때는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줄 때이다. 용오의 교섭이 깔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불필요한 말은 자제하고, 절제된 행동으로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다. 교섭인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그는 프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끝없는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은 위험과 어려움은 제거되고 좋고 아름다운 것들만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얼마 뒤 환상이 깨어지고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그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좋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위험과 어려움을 피해서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교섭이 아니라 타협을 하며 살고 있다. 반면, 용오가 부딪히는 세상은 위험과 어려움은 가득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면 좋고 아름다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죽음으로부터 어렵사리 구출해 온 사람이 고마움을 표시하는 눈물이 있고, 죽음도 불사하며 지켜낸 지구의 평화가 있다. 타협이 아니라 교섭이 일구어낸 세계다. 돈과 시간과 심리, 교섭時에 필요한 절대요소들이다. 용오는 이 요소들을 적절히 배분하는 치밀한 계획 아래 교섭을 진행시킨다. 언제나 위험에 둘러싸여 있는 용오에게 가장 소중한 재산은 사람이다. 사람으로부터 정보가 흘러나오고, 사람을 믿고 일을 한다. 배신을 하는 것도 사람이고, 구출해야 하는 것도 사람이다. 교섭의 절대요소들이 필요한 것은 인간(人間) 때문이다. 교섭인은 세상이 복잡해지고 다양해질수록 필요한 직업이 될 것이다.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조차 믿기 힘들어지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믿음을 심어줄 수 있는 재능이야말로 선택받은 자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재능이 쓰여져야 할 곳은 인간을 해(害)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인간을 구(求)하기 위한 곳이다.
<용오 (勇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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