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열혈강호 (熱血江湖)
만화규장각 2000.01.01
94년 6월 1일. 2년여전부터 한국 소년만화계에서 열심히 경쟁을 벌이며 만화계를 양분해 나가고 있던 두 출판사에 의해서 경쟁적으로 동시에 두 잡지가 창간되었다. 일본의 젊은 성인을 대상으로 표방한 ‘영’지를 그대로 본따서 만든 잡지는 바로 「영점프」와 「영챔프」. 그 중 도서출판 「대원」에서 만든 「영챔프」에는 여러 히트 및 장기연재가 점찍어지는 작품들이 눈에 띄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열혈강호』였다. 『열혈강호』는 전극진이 글을, 창작집단 AAW 출신인 양재현이 그림을 맡은 작품이다. 양재현은 AAW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주로 담당했으며, 동 출판사의 주간소년잡지 ‘소년챔프’에 ‘외로운 검객’(전 3권)을 연재한 경력이 있었다. 작품 형식인 측면에서 보자면, 『열혈강호』에는 그다지 특기할만한 사항은 많지 않다(다만, 무협물인데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인데, 이것은 작가들이 밝히기를, “말 그리는 게 어려우니까” 라는 명쾌한 답변이 있었다). 무협지치고는 파격적으로 개그컷이 많다는 것이 다소 특이한 듯 보일 수 있으나, 최근의 소년만화에서 무협을 다루는 방식을 볼때는 그다지 특이하다고 보기 힘들다. 초반 부분의 『열혈강호』는 김용 무협소설과 일본만화의 짙은 영향을 지울수가 없다. 남자주인공 한비광은 엄청난 내공과 형편없는 무공을 동시에 지닌 낙천적인 남자주인공이라는 측면에서 소오강호의 ‘영호충’이며, 개그컷으로 항상 여색을 밝히다가 어쩌다가 한번씩만 전투장면에서 진지해지는 모습은 일본만화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를 닮아있다. 또한 화풍과 연출방식에서도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여성 일러스트에서의 ‘옷 위로 비치는 유두’ 묘사 등은 ‘영’지를 표방한 출판사의 적극적 개입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확실한 것은 여성 캐릭터의 성적 상품성을 극대화하는 일본 대중 만화의 습성을 적극 도입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의 많은 ‘영’ 만화들도 이런 시도들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캐릭터의 스토리상의 매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여, 단순한 눈요기가 아닌 ‘캐릭터화’에 성공한 경우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열혈강호』에서, 위의 두 가지 영향의 축(중국 무협소설을 계승한 스토리와 일본만화의 영향이 강한 캐릭터성)은 비교적 성공적인 만남을 이루었다. 작품의 헤드카피인 ‘오렌지향이 나는’ 무협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캐릭터간 애정 관계를 이용한 ‘푼수성’ 만화적 개그를 효과적으로 심어넣은 것은 ‘김용’ 풍 무협물의 기본 얼개에 독특한 맛을 부여한다. 더군다나 일본만화로 대표되는 캐릭터화 중심 만화에는 김용풍의 무협 스토리를 묘사하는 만화가 없다시피 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의도가 있었든지 없었든지 간에 일종의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캐릭터화는 『열혈강호』라는 무협작품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특성이다. 단적으로, 이전에 다른 어떤 한국의 무협만화도 여주인공의 (현대식!) 수영복 일러스트를 전면에 내걸지 않았다는 말이다. 원래 무협이라는 장르에서는 다양한 캐릭터들 간의 알력이란 필수적이지만, 그것이 곧바로 팬시화 될 수 있도록 애초부터 고안된 경우는 드물었다. 그것은 AAW 시절부터 캐릭터 디자이너로 활동한 작가의 경력과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아니나다를까, 『열혈강호』의 경우 그 성공의 형태도 단순히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아닌, 게임, 일러스트집, 팬시상품 등 멀티소스 상품으로서의 발전이다. 즉, 『열혈강호』는 ‘히트 오락상품’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고, 매우 성공적이다. 그리고 그런 재미를 정직하게 부정할 수 있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열혈강호 (熱血江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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