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체인지가이
만화규장각 2000.01.01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에, “작가의 아이디어가 궁해지면, 등장인물을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한다”는 것이 있다. 이것은 장기 연재작(특히나 삼각 관계 등을 다룬 러브 코미디 계통에서)에서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가 빈번하게 사용됨을 농으로 삼은 것이지만, 굳이 그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패턴화된 전개’라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만화가 발전해오면서 스토리상의 기법이나 연출 방식은 다양한 형태로 등장되어왔고, 그로 인해 대부분의 시츄에이션은 기존 작가에 의해 한 번쯤 쓰여진 경우가 많다. 그 중의 몇몇은 이미 그 흥행효과(?)가 검증된 것이고, 때문에 작가로 하여금 자신도 사용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들게 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영혼이나 인격이 뒤바뀐다’는 형식은 예전엔 시험적인 도전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에 와서는 그 유용성이 충분히 입증되어 있는 패턴이다. 때문에 『체인지 가이』의 첫 인상은 안이한 연출법에 의존한 작품이라 여기기 쉽다. 우등생이지만 허약체질에 순둥이인 최우수, 격투기와 싸움에 있어선 천재에 가까운 불량학생 강투지. 모범생과 싸움꾼이 생각잖던 계기를 통해 서로의 영혼이 바뀌게 된다--이런 구도는 자칫 적당주의적 노선에 안주하는 만화가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체인지 가이』는, 그런 손쉽게 걸려들기 쉬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육상경기와는 틀려서, 같은 위치에서 스타트한다 해도 그 골이 반드시 동일하다는 법은 없다. 그 중간도상에서 어떤 과정들을 거치느냐에 따라, 거두게 되는 성과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기상고의 짱--이 호칭에 대해 필자는 왠지 모를 어색함을 지울 수 없지만--이 된 강투지(내용물은 최우수)가 주변의 선입견에 당혹해하면서, 본디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격투 센스를 개발해나가는 과정은 설령 기존 등식에 영향받았을지언정, 성공적으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두 명의 주역 캐릭터에 대한 무게 배분에 실패했다는 것이랄까. 다름아니라 그리기 쉽고 사건을 전개시켜나가기 간편한 쪽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약하거나 임팩트가 적은 캐릭터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막힐 즈음에 갈등 구조를 복잡화하는 존재로만 사용되는 점이다. 체인지된 양자 가운데 ‘육체적 강함’을 지닌 강투지(최우수)가 겪는 사건의 폭과 분량에 비해, 최우수(강투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상대적으로 덜 배분되어 있다. 물론 이는 작가가 선택할 몫이며, 반드시 양쪽이 균일하게 다루어져야만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투지 못잖게 다양한 이야기를 전개시킬 가능성이 있는 최우수가 축소되어버리고 있다는 점은, 독자로서 못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굳이 돋보기를 들어 이 작품을 꼼꼼하게 점검하자면 흠을 못찾아낼 것도 없다. 격무도를 익히기 위해 강투지가 도장을 찾은 이래, 그의 주변엔 어딘가의 감정결격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외모와 헤어스타일을 지닌 소녀가 보인다. 그와 자주 얽히는 2인조 미소녀의 반응은 쉽게 속내가 읽힐만큼 전형적이다. 강자에 이어서 또다시 새로운 형태의 강자를 등장시키는 것으로 스토리를 타개하려는 최근의 전개방식 또한 독자의 고개를 젓게 만들지 모른다. (다른 말로 파워의 인플레 현상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체인지 가이』는 완벽하다는 수식어를 붙이기는 어려운 만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재가 시작되어 단행본 17권 분량에 달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독자의 지지를 얻으면서 재미를 이어가고 있다. 그 원동력은 무엇보다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부분에 있는 것이 아닐런지. 쉽게 짐작가는 전개라 여기면서도 정작 실제로 눈에 대하는 순간 즐겁도록 연출하는 능력, 그런 힘이 『체인지 가이』 안에는 깃들어 있다.
<체인지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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