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웅의 ꡔ레이븐ꡕ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소년챔프」에 연재되었고, 단행본으로는 6권까지 나온 상태다. 현재는 연재를 중단하고 더 이상의 단행본은 출간되지 않고 있다. 서영웅은 1994년 ꡔ못 말리는 수호천사ꡕ(월간 챔프)로 데뷔했으며 ꡔ굿모닝! 티처ꡕ가 「소년챔프」에 연재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ꡔ굿모닝! 티처ꡕ에서 보여주었던 짜임새 있는 연출과 일상에 기반한 스토리는 ꡔ레이븐ꡕ에서도 여전하다. 전작이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그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사건들을 유머 섞인 진지함으로 그려냈던 것에 비해 ꡔ레이븐ꡕ에서는 전쟁에 처한 인물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ꡔ레이븐ꡕ은 SF를 기반으로 하면서 판타지적 요소를 섞은 작품이다. 스텔라타 대륙이라는 가상의 공간 설정이 우선 그렇다. 여기에 그리폰이라 불리는 하늘을 나는 로봇은 주술적 힘인 마나(mana)를 가진 인간만이 움직일 수 있다. 강력한 마나를 지닌 인간은 미래를 볼 수도 있고 적을 마비시키는가하면 자신의 로봇을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 국가마다 각각의 다른 종류의 공중전투로봇, 육상전투로봇들이 등장하고, 각각은 장단점을 로봇들간의 전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은 SF에 속한다. ꡔ패트레이버ꡕ나 ꡔ건담ꡕ 시리즈의 만화에 등장하는 로봇들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라면 ꡔ레이븐ꡕ은 비슷한 아류의 작품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흔한 SF 로봇만화에 다른 점은 작가가 보여주는 전쟁에 대한 관점이다. ꡔ굿모닝! 티처ꡕ에서 학창시절에 겪는 소소한 일상의 사건들을 통해 사춘기 청소년의 성장을 사실적으로 그려서 여타 학원폭력물과 질적 차별성을 가졌다. 마찬가지로 ꡔ레이븐ꡕ 역시 전쟁을 경험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감정과 고통, 전쟁 자체가 갖는 의미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보여준다. 등장 인물들의 모습은 크게 미시적 측면과 거시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미시적으로는 직접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인간들의 모습과 거시적으로 배후에서 전쟁을 조종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대비시키고 있다. 인물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전쟁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있고, 그 관점들은 서로 충돌한다. 이들의 충돌하는 모습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어느 한쪽의 인물의 편을 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단순히 하늘이 나는 것이 좋아서 군대에 입대한 시스킨은 미시적인 전쟁을 경험하는 인물이다. 오로지 동료를 구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그에게는 전쟁의 대의명분이나 누가 옳고 그른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그에게 전쟁은 삶과 죽음의 칼날 위에서 곡예사처럼 공포의 순간이다. 이런 미시적 인물들은 모두 전장에서 직접 전투를 벌이는 인물들이다. 오리투스군의 육상로봇 재규어의 조종사인 니트, 약혼자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던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에 비해 거시적 차원에서 움직이는 인물들은 전쟁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권력욕으로 인해 전쟁을 일으킨 정치인 쿠레마이, 대륙통일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쿠레마이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는 재규어와 이들에 맞서 쿠레마이의 음모를 밝히려는 아이비스는 모두 각자의 행동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두 가지 유형의 인물들의 사건을 대칭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재미있는 점은 갈등을 겪는 인물들은 모두 미시적 차원에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죽음의 공포와 이로 인한 성격의 변화를 겪는 입체적 인물들이다. 미시적 차원에서 적과 아군은 단지 전투를 위한 구분일 뿐 누가 옳은지를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전쟁의 옳고 그림은 거시적 차원에서 결정된다. 시스킨의 갈등은 미시적 차원에서의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거시적 차원에서 전쟁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답해야 한다는데 있다. 그것이 전쟁 자체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ꡔ레이븐ꡕ은 연재를 중단한 이후로 단행본이 더 이상 나오고 있지 않다. 내용의 진지함 때문에 독자가 보기에 부담스러웠다는 것도 한가지 요인일 것이다. 하지만 학원만화와 판타지만화가 주종을 이루고 감각적 소재와 가벼운 내용이 주를 이루는 만화계에서 ꡔ레이븐ꡕ과 같은 가볍지 않은 SF만화는 신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