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짧은 기간이나마 만화가 원수연의 문하생으로서 본격적인 만화수업을 마치고 동년 6월 창간된 순정만화지 월간「요요」(현재 폐간)를 통해 『내 사랑 라니타』라는 작품으로 프로데뷔를 달성한 김숙희는 이곳 저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작가 프로필을 참고하자면 『올훼스의 창』과 『베르사유의 장미』에 푹 빠져있다 동인 서클을 결성, 프로만화가의 길로 골인하게 된 1970년대 초반 출생의 순정만화가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데뷔 패턴을 밟은 작가중의 한 사람이다. 데뷔후 10여 년 간, 많은 창작 활동 속에서, 『에필로그』나 『대통령의 침묵』, 『타로트 점괘』와 같은 중, 단편집을 통해 이른바 정통파 순수 순정물 이외에도 조금은 무겁고 특이한 소재들을 통해 비교적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재능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작가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주특기라면 마법나라의 말괄량이 공주의 이야기를 그린 『풍선은 하늘로』와 같은 가볍고 발랄한 아동지 취향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와 생활 주변의 평범한 일상을 잘 섞어 제공하는 순수 순정만화계열의 이야기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저학년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월간지 「밍크」에 연재중인 『롤러코스터』역시 그런 작가의 작품성향으로 보면 주류에 들어가는 정통파 학원 순정물 중의 하나이다. 『롤러코스터』는 그러한 이른바 정통파 순정 만화가들이 가장 흔하게, 또 즐겨 그리는 소재인 삼각관계라는 말로 대표되는 다층적인 연애심리, 즉 쉬운 말로 하자면 얽히고 ?힌 사랑이야기를 그린 전형적인 소녀 취향의 드라마이다. 미남 학생들의 대쉬를 한 몸에 받는 주인공 소녀 시아가 놓인 ‘공주님’적인 입장은 3:1이라는 상황이 좀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밀고 당기는 사랑싸움을 기본으로 하는 이런 류의 만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독자들의 대리만족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내용이기도 하고, 그 자체만으로는 신선함을 느끼기가 조금 어렵지만 그러한 ‘환상’을 그리는데는 안성맞춤인 예쁘장한 그림체는 때때로 볼 수 있는 컬러일러스트에서의 우수한 작화실력과 함께 대히트까지는 아니라도 안정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요소들을 제법 많이 함유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러나 흔히 10대를 가리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것을 빗댄 것만 같은 제목을 가진 『롤러코스터』에는 이런 작품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공주병 캐릭터나 왕자병 캐릭터와는 조금 격이 다른, 보다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15세의 나이에 세상과 담을 쌓아 버린 소녀 시아를 중심으로 한 사랑 이야기는 밝고 명랑한 왁자지껄한 비현실 보다는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간의 그림자를 느끼게 한다. 또 초장부터 모든 캐릭터의 정체를 다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흡사 추리물을 보는 것처럼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남성 캐릭터의 감추어진 진짜 모습들은 때로는 비아냥일 수도 있는 정통파 순정이라는 이름의 단순하고 평범한 사랑타령으로 덮어버리기엔 조금 아까운 느낌이다. 무엇이 어쨌던 간에 장르간의 파괴가 유행처럼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요즘, 그래도 그 나이 또래의 독자들을 위한 ‘정통파’작가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