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에덴 (EDEN)
만화규장각 2000.01.01
인간은 죄가 너무 많다. 굳이 성경의 원죄(原罪)나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을 들추지 않더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지금껏 저질러온 죄에 대한 값을 피할 수 없다. 더 이상 편해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더욱 편해지기 위하여 자연을 거스른다. 더 이상 벌어도 필요없는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더 이상 지구와 신(神)은 세계에서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한 신의 노력은 계속되어왔다. 흑사병․암, 최근에 이르러서는 에이즈까지 끊임없는 바이러스의 침투와 홍수․가뭄․태풍 등 때마다 일어나는 자연재해는 인간의 죄에 대한 댓가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에덴』에 이르러 인간을 경질화시키는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는 멸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덴』은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와 인간이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또 다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묻고 답한다. 그 질문들은 때로 종교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며, 때로 이데올로기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과 닮아있다.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나 살아있으면서도 고민하는 모습도. 살아남은 자들의 향연 역시 살아남기 이전의 모습과 똑같다. 자신의 기억을 마음대로 지워버리는 인간, 살아남기 위해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 인류의 멸망 이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인간은 이기적이다. 욕심은 끝이 없고, 신을 닮으려는 욕망은 지속된다. 혹은 에리야의 이야기처럼 ‘자연의 섭리에 거역함으로써 「인간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게 아닐까?’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여타의 멸망한 지구(『드래곤 헤드』,『생존게임』등)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즉, 인간의 근원 혹은 존재에 대한 회의를 보이면서도 살고자 하는 욕구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그만큼 각자의 사정은 각별하다. 자신이 배반하여 눈앞에서 종족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와이클리프도, 형의 죽음으로 자신의 길을 잃어버린 겐지도 슬픔만을 짊어진 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원죄 이후로 에덴은 존재하지 않고, 인간은 언제나 가슴 아프다. 그러나 비록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인간의 생존은 계속되고, 세계(世界)는 유지된다. ‘일부의 인간이 권력을 쥐고 이익을 독점하면 평등을 바라는 자들이 무기를 쥐고 싸우려한다. 그러다 궁지로 몰려들면 자기들보다 약한 자들을 공격하게 된다.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서글픈 이야기지만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에덴에 쓰여진 대사는 처절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만들고 꾸민 대사가 아닌 지금 현실 그대로인 대사를 통해 독자가 느끼는 것은 섬뜩함이다. 자신이 현재 그런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섬뜩함. 피할 수가 없다면 부딪쳐야만 한다. 그게 살아남은 자들에게 부여된 삶의 몫이다. 『에덴』에는 결코 에덴이 존재하지 않는다. 태초의 괴로움과 슬픔이 없었던 공간, 그런 곳은 없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에게 남은 것은 기쁨보다는 슬픔이다. 가족이 죽고, 동료가 죽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미워하던 사람이 죽은 그 자리에 대신할 만한 것은 슬픔의 감정이다. 더 이상 사랑할 수도 없으며, 미워할 수도 없어서 무감(無感)해지고 나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슬픔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에덴으로의 변화를 원하고 있다.
<에덴 (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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