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청공 (靑空)
만화규장각 2000.01.01
스포츠만화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진다. 우선 눈에 보이는 라이벌, 즉 상대편을 이기기 위한 인고(忍苦)의 과정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만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주인공의 성장, 즉 승리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이겨나가는 모습을 담는 만화이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상호 보완되며 하나의 작품 안에 함께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떤 내용이 더 많은가에 따라서 만화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렇게 볼 때, 하라 히데노리의 『청공』은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 주인공 코이찌의 성장에 초점이 맞혀져 있다. 고등학생이 된 주인공은 어릴 때 친하게 지낸 동네 누나와 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폐부되었던 야구부를 다시 일으키게 된다. 외롭게 지내던 자신과 언제나 친구가 되어 주었던 사람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코이찌는 없어졌던 야구부를 다시 만들고, 부원을 모집한다. 어린 시절, 유끼누나의 응원 속에 효우 형과 함께 했던 케치볼은 코이찌의 기억 속에 가장 소중한 부분이다. 그 기억으로부터 코이찌의 야구는 시작된다. 따라서, 작품 속에서 야구는 단지 하나의 운동종목을 넘어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물이다. 흔히 보여지는 동료들간의 유대감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지켜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소중한 공간이다. 따라서, 주인공이 야구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승리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작가는 다른 작품들에서 이미 섬세한 심리묘사로 독자들의 감동을 사로잡았다. 『내 집으로 와요』에서 나타나는 남녀간의 밀고 당기기式 연애를 통해 감정의 세밀한 표현을 읽어낼 수 있다. 『썸데이』에서는 대학을 졸업하여 사회로 진출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나타난다. 『언제나 꿈을』에서는 만화가의 꿈을 정한 주인공이 그 꿈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민과 아픔 등이 담겨져 있다. 이밖에 『겨울이야기』에서는 재수생의 사랑이 『시소게임』에서는 아기자기한 남녀의 연애를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청공』에서 중요한 것은 여타 야구만화에서 보여지는 승부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주인공이 야구를 하면서 겪게 되는 고민과 힘겨움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주인공의 야구에 감동하는 효우와 유끼 역시 코이찌가 승리를 위한 야구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야구’를 하기 때문이다. 『청공』에서 야구는 세 사람의 우정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인 것이다. 감동을 위한 몇 가지 장치는 효우의 야쿠자생활, 그리고 효우를 기다리는 유끼와 그의 아기, 코이찌의 야구를 위한 효우의 희생 등으로 준비되어 있다. 거기에 야구부가 사라지게 되었던 사연들과 유끼를 닮은 나미코의 등장, 주인공을 중심으로 일치 단결되는 스포츠 리더십의 전형은 『청공』의 분위기를 극적인 드라마로 이끄는 요소들이다. 작가는 히또미를 등장시켜 주인공의 로맨스도 잊지 않는다. 남은 것은 3년이라는 고등학교의 시간 안에 주인공 코이찌를 전국대회의 무대로 이끄는 것이다. 우리가 스포츠만화를 찾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강한 승부욕을 드러내는 스토리에 기인한다. 『청공』은 이러한 모습에 약간 빗겨나 있다. 눈에 보이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기보다는 주인공이 자신의 믿음을 지켜나가는 모습에 중점을 둔다. 승리를 위한 전사(戰士)로서가 아니라 우정과 신뢰를 지켜나가는 친구(親舊)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청공 (靑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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