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섬데이 (SOMEDAY)
만화규장각 2000.01.01
‘언젠가’라는 단어는 묘하게 낙관적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체념이 물씬 풍기는 듯 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도 담고 있다.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스스로 지도를 만들어 가야할 때 무작정 갖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한다.『섬데이』는 대학4년 생이 겪는 고민과 사랑, 좌절 그리고 성공이 섬세하게 표현된 수작이다. 대학 3년 슈는 친구들을 따라 취업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반면 여자친구인 에리카는 영화사 취직이 결정되고 둘은 서먹해진다. 이 때 마이라는 매력적인 여자가 등장, 슈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엉성한 삼각관계는 에리카의 현장확인으로 깨어지고 마이는 옛 애인에게 돌아간다. 취업과 사랑에서 모두 좌절감을 맛본 슈는 우연히 빌딩간판회사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면서 진정한 자신의 길을 발견한다. 서먹했던 에리카와도 다시 화해하고 언젠가 꿈꿔왔던 행복을 갖게 된다. 하라 히데노리의 작품의 특징을 꼽는다면 절제된 감정표현이 될 것이다. 느린 화면처럼 인물의 미세한 표정변화가 말없이 하나씩 열거되면서 미묘한 감정처리가 정적이면서도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런 점에서 그는 ‘괴롭다’ ‘실망이다’ 식의 형용사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데 능숙하다. 때문에 『청공』과 같은 스포츠 만화보다는 『내 집으로 와요』, 『언제나 꿈을』, 『겨울이야기』와 같은 드라마 쪽에서 더 빛을 발하는 작가다. 이러한 심리묘사는 아다치 미쯔루를 떠올리게 한다. 그 역시 압축된 장면, 여백으로 인물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나타낸다. 하지만 아다치의 작품에는 근본적으로 웃음이 깔려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인물들, 고난에 처하더라도 “엥?” 한마디로 모든 것이 표현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히데노리는 웃음보다는 슬픔에 능하다. 특히 안타까움과 괴로움이 교차하는 모습을 잘 담아낸다. 때문에 한 장면에 감정이 압축적으로 나타내는 아다치와는 달리 그는 스펙트럼으로 펼쳐 보인다. 『섬데이』는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맘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한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의 진입, 말하자면 통과의례를 거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라 히데노리는 과장되지 않게 보여준다. 학교를 떠나 사회로 나아가는 취업 생들의 첫걸음은 자신감보다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게다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와 거리가 멀다면 더욱더 암담하기만 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실패에도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주인공의 모습은 충분히 설득력 있다. 단순히 ‘잘 될 거야’라는 만화 식 낙천주의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할까’를 끊임없이 찾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화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뉴스나 신문마다 취업 재수생 혹은 졸업생들의 취업난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어디든 들어가야 하는 다급함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사이에서 학생들은 고민한다. 그럴 때마다 ‘언젠가’의 내 모습을 그리며 한번쯤 길게 숨을 내쉬어 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에게 좋은 암시를 걸면서 말이다.
<섬데이 (SOM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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