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춘몽 (春夢)
만화규장각 2000.01.01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다양함은 태어나면서 갖추어진 것도 있고, 살아가면서 형성되어온 것도 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갑자기 다가온 불행으로 인해 절망의 나날을 허덕이게 되는 이도 있다. 만화도 마찬가지이다. 독자를 웃기기 위해 연신 농담과 재치를 선보이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감정에 호소하여 짙은 감동을 받게 하는 작품도 있다. ‘만화’하면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유쾌함이지만, 『춘몽』의 경우처럼 진득하게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있는 것이다. 불행은 언제나 갑자기 다가온다. 암세포가 천천히 퍼질져서 심장을 좀먹을지라도, 인간이 암을 선고받았을 때는 갑작스런 불행이다. 스스로 암에 걸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다가 통증으로 암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교통사고를 당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사고를 당하는 사람은 없다. 깨어나서 보니 사고를 당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다. 이처럼 불행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들이 좌절하거나 괴로워하는 것도 미처 준비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테츠오에게 다가온 불행 - 아버지 사업의 실패, 빚쟁이들의 추적- 역시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상황들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한다. 빚쟁이들을 피해 몸을 숨겨야 하고,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어야 한다. 어제까지 따사로운 봄이였던 그의 세상은 이제 차가운 바람만 불어대는 한겨울이 된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헐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황당한 바램이나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비현실적인 꿈과는 다르다.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 오늘과는 다른 내일,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상황이 되길 바라는 현실적인 버팀목이다. 주인공이 빚쟁이들을 피해 새로 들어온 자취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도마뱀 한 마리. 모자걸이를 위해 박은 못에 끼여서도 생명을 유지하는 그 미물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언젠가는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되기를 바라며 삶을 지탱하는 모습은 주인공에게 묘한 감동으로 다가간다. 벽에 못이 박혀 테쯔오가 주는 먹이만 받아 먹으며 생명을 유지하는 도마뱀도 살아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는 시기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작품은 주인공이 헤어졌던 여자친구와 다시 결합하여 살아가는 것은 끝난다. 아내가 된 그녀를 뒤로 하고 출근길을 나서는 테츠오의 머리 위로 봄이 알리는 벚꽃이 날린다. 겨울의 시련을 통과하고 아름다운 꽃잎을 날리는 봄처럼 테츠오도 시련의 찬바람을 겪어내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봄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희망’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모든 만물이 새롭게 태동하며, 활기찬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밝음과 맑음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 봄이 오기까지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있어야 한다. 희망을 가질 수 있고, 봄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살아있는 자들의 특권이다. 희망은 거대한 사건이나 위대한 발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변의 사소한 일이나 평범한 일상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물론 인간의 몫이다. 『춘몽』은 흔히 생각하듯 그리고 대부분의 유쾌한 만화가 그러하듯이 한번 웃고 마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 속에는 어설픈 유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과장된 이야기로 독자를 조롱하지도 않는다. 대신, 단편이 주는 깔끔함이 있다. 주인공의 포기한 듯, 그러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해 삶을 이끄는 희망을 조금씩 찾아내 간다. 묘하게 감정이입된 도마뱀 한 마리는 주인공과 독자들에게 살아있음과 희망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보게 만들어준다. 독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이다.
<춘몽 (春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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