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살례탑 (撒澧塔)
만화규장각 2000.01.01
살례탑은 작중 인물 살리타이의 이름을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살리타이는 주인공이 아니고 카리스마적인 악역을 맡은 몽고군 장수이다. 작가는 그의 확실한 캐릭터성과 카리스마가 연출하기 힘들다고 밝히면서도 그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밝히고 있다. 살리타이는 제목으로 쓰일 만큼 매력적인 악역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낸다. 그에 비하면 주인공 문빈의 존재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그는 업과 타의에 묶여 전란의 와중에 떨어진 현대의 학생일 뿐이다. 문빈, 즉 사경에게 일어난 시간 초월의 미스테리는 『살례탑』의 발단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해결이 기대되기보다는 ‘업’이라는 말로 은근히 무마된다. 팬터지 성격을 가진 작품의 특권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고, 굳이 문빈의 유래가 현대였어야 했는지 의아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이것을 『살례탑』이 가지는 매력으로 돌리는 것은 작가의 역량이 될 것이다. 적으로 만난 알탄하다스와 문빈은 고려와 몽고의 전쟁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연애사를 빚어낸다. 어쩌면 작가가 정말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이쪽 이야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살례탑』을 가볍게 즐기는 독자에게 이 둘 사이의 로맨스는 조미료가 아니라 또 하나의 메인 디쉬다. 이렇게 청춘 연애만화의 요소를 포함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살례탑』은 역사물이다. 이른바 순정만화로 불리는 장르에서 역사물은 끊임없이 시도되어온 분야다. 『살례탑』도 그 중 한번의 시도이고, 평범한 팬터지 역사물일 수 있다. 그러나 노미영의 『살례탑』은 ‘소년지의 영역을 침범해 온 여성 만화가’의 역사물이라는 특이한 내력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아마 『살례탑』 초반의 인기는 그런 특이점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화가 6권까지 진행되어 착실히 제 스토리를 밟고 있는 바탕에는 작가의 이야기 전개 실력과 깔끔한 그림체가 한몫 하고 있다. 노미영의 그림은 여자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그것은 분명히 칭찬의 의미를 띄고 있겠지만 남성 만화가의 그림과 여성 만화가의 그림이 대조되어 인식된 관념의 결과라면 여성 만화가들의 표현에 암묵적인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 남성 만화는 박력있는 필체, 여성 만화는 연약한 필체라고 굳어진 인식이 존재하는 독자와 비평가들이 존재하는 마당에 성별을 떠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미영에게 『살례탑』은 데뷔작이고, 아직 ‘소년지의 영역을 침범해 온 여성 만화가’가 아닌 작가 노미영 자신으로서의 각인이 부족하다. 그녀의 무게는 앞으로 더해질 일이다. 몽고와 고려의 전쟁을 다룸에 있어, 노미영은 고증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역사물을 다루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비교적 쉬운 길을 선택한 셈이다. 그녀 자신도 만화를 즐기면서 그리고 있다고 말하니까. 고증의 엄격함과 역사물로서의 분위기에 구애받지 않으려는 그녀의 자유분방함도 물론 매력이지만, 한 사람의 만화가로서 조금 더 성숙하고 진지하게 몰두하는 자세를 기대하는 것도 독자로서의 입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 자체에 압도당하면 즐겁지 못하고, 즐거운 대로만 그리다가는 기대에 짓눌린다. 사이에서 밸런스를 맞추려 아무리 노력해도 독자들의 기대치는 천차만별이다. 그만큼 역사물은 어렵다. 치수와 모양이 엄격하게 정해진 역사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되 규격을 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역사물은 보통 일이 아니지만 그만큼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노미영은 역사물에 도전했다. 6권으로 결말부에 접어드는 『살례탑』 이후, 그녀의 시도는 과연 무엇일지 기다려진다.
<살례탑 (撒澧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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