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기동이
만화규장각 2000.01.01
양영순은 1995년 데뷔작인 『누들누드』를 통해 성인만화의 새장을 연 작가다. 남성들이 우스개 소리로 한번쯤 했을 법한 이야기들을 은유와 패러디를 통해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성인남성들의 인기를 끌었다. . 『기동이』는 1999년부터 「스포츠조선」에 연재된 단편들을 모아 단행본을 출간한 작품이다. 각각의 단편이 끝나면 내용과 관련된 작가의 수필식의 짧은 글들이 실려있다. 기존의 작품들처럼 『기동이』에 나오는 인물들은 단순한 선들로 처리되어있다. 기동이와 그의 가족들의 얼굴모양은 몇 가지 특징만을 과장한 모습을 띠고 있다. 기동이와 아버지, 어머니, 누나는 모두 둥근 얼굴에 일자로 표현된 눈, 돼지코를 가지고 있다. 똑같은 기본 바탕에 헤어스타일의 변화를 통해 구분된다. 여성의 신체는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 잘록한 허리로 표현되고, 남성의 근육질의 몸매를 통해 섹슈얼리티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단순한 선으로 남녀의 신체적 특징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기법은 극화보다는 코믹 꽁트에 어울린다. 『기동이』는 진지한 내용을 담기보다는 명랑체의 만화를 통해 일상 속에서 한번쯤 생각해봤을 내용들, 그러나 차마 입으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짧은 꽁트를 통해 보여준다. 기동이는 3-4살짜리 꼬마아이다. 언제나 벌거벗은 채 고추를 내놓고 다니는 기동이는 어른들의 세상을 살펴보는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억압된 욕망을 순수한 형태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사회의 윤리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벌거벗음 그 자체가 이미 사회적 규범일탈에 해당한다. 기동이의 행동은 황당하다. 지하철 출구에서 잠든 거지의 돈을 훔쳐 과자를 사먹는 행동은 남의 돈을 훔친다는 개념 자체가 그에게 없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과자를 거지 여자아이에게 나눠주는 행동은 이해관계에 구애받지 않은 어린이의 순수한 행동이다. 기동이의 벌거벗음은 또한 작가의 남성적 시선을 보여준다. 『기동이』에 나오는 모든 에피소들은 남성적 시각에서 바라본 행동들이다. 수저를 의인화시켜 여자의 입속에 들어간 수저의 황홀한 표정을 보여주는 장면, 엘리베이터 걸에 대한 발직한 상상, 여고생의 루스삭스에 대한 페티시즘 등은 『누들누드』에서 보여주었던 성적(性的) 상상력의 연장(延長)선상에 있다. 특히 여자아이의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기동이가 자신의 고추를 만지게 하는 장면은 유아기 성적 특성을 보여주는 유쾌한 농담이다. 『기동이』의 또 다른 특징은 단편 뒤에 있는 작가의 글이다. 앞의 내용에 대한 짧은 단상을 쓰고 있는데, 만화와는 상관없을 법한 이야기들을 통해 오히려 만화를 다시 보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만화가 숨겨진 욕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면 뒤의 글은 욕망의 숨김없는 노출이다. 작가의 입을 빌려 써내려 간 욕망은 곧 우리들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욕망이다. 양영순의 작품들은 언제나 남성적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왜곡된 성을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의 만화는 언제나 억압된 욕망을 분출시킨다는 면에서 카타르시스가 준다. 이것이 양영순의 만화의 장점이다.
<기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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